‘미수다’ 루저녀와 된장녀
한 여대생이 텔레비전 심야방송에 출연해 털어놓은 ‘개인의견’을 놓고 어제 오늘 인터넷 상에선 ‘루저녀’라는 신조어가 탄생하는 등 난리법석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닌 데 너무 호들갑을 떠는 듯하다.
매주 월요일 방영하는 심야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에 11월 9일 출연한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들’을 싸잡아 ‘루저(loser, 샐패자)’라고 말하면서 사단이 난 것이다. 온라인 뉴스는 말할 것 없고 강호제현 블로거들이 저마다 목청을 돋우며 ‘문제의 여대생’을 질타하고 있다. 심지어 그 여대생을 제적하라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좀 어처구니가 없는 현상같다.
세계 각 나라에서 한국에 와 살고 있는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매주 유창한 한국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토크쇼 프로그램인 미수다는 이번 주에는 한국의 ‘퀸카’ 여대생들과 외국미녀들의 ‘수다 배틀’로 진행돼 꽤 재미있었다.
문제의 ‘루저’ 발언은 사회자가 키 작은 남자와의 데이트나 결혼을 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 여대생이 자신의 키가 170cm이어서 최소 180센티 이상의 남자를 만나고 싶다는 소견을 밝히는 대목에서 터져 나왔다.
키는 경쟁력이다, 키가 작은 남자들은 루저(실패자)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그 여학생을 보면서 방송프로그램의 ‘설정’치고는 너무 직설적이라 말썽이 생길 것 같았다.
그 여학생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참석한 대부분의 한국 여대생들은 키 작은 남자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21세기 대한민국 여대생들의 의식구조의 한 단면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사회자가 돈 많고 잘 생기고 어쩌고 최상의 조건은 다 갖췄지만 키가 작은 남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막장 진행’을 하는 것도 한심했지만 '키가 작으면 오만정이 떨어진다'고 대답해버린 ‘순진한 여대생’들의 ‘멍청한 답변’에 아마 적잖은 사람들, 특히 ‘키 작은 젊은 청년’들이 분노를 느꼈을 법도 하다.
문제의 ‘루저 발언’이 인터넷 상에서 큰 물의를 일으키자 그 여학생은 자신의 미니 홈피를 통해 ‘방송작가가 써준 대본대로 말했을 뿐’이라며 사과의 의사를 밝혔지만 그녀의 홈피는 폭주하는 비난 댓글로 문을 닫을 지경이 되었다고 한다.
해당 방송사측은 외려 그 여대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써준 대본이 아니라 여대생들과 토론 끝에 한 것이어서 그녀 자신의 ‘발언’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핑퐁 게임’의 진실을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날 방송에선 비단 ‘키 작은 남자’에 대한 토론 뿐 아니라 데이트 비용, 부모님으로부터 학자금을 당연하게 받는 한국 여대생에 대한 외국인 미녀들의 ‘성토’까지 대체로 한국 여대생들이 한심하다는 쪽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였다.
‘루저녀’ 파동을 지켜보면서 몇 해 전 있었던 ‘된장녀 사건’이 떠올랐다.
가만 보니 루저녀의 사고방식은 된장녀의 사고방식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키 크고 옷 잘 입고, 그랜저 3000cc 이상을 몰고 다니는 의사’ 정도를 괜찮은 신랑감으로 꼽는 여대생 ‘된장녀’들의 일상이 매스컴에 소개되면서 그때도 인터넷 상에서 난리 법석이 일어났었다.
지난 월요일 ‘미수다’에 출연한 한국 여대생들은 대부분 ‘명품 백’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녀들은 ‘명품 백’예찬을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하 백만 원이 넘는 명품 백을 학생 신분으로 갖고 다닌 다는 건 그렇게 ‘보편적 현상’은 아니지 싶다. 그날 TV에 나온 ‘영양(令孃)’들은 그야말로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모양이나 내면서 간판이나 따러 대학 다니는 ‘대갓집 규수들’같은 말을 해 상대방인 외국 미녀들을 놀라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 상대적으로 외국인 미녀들은 한결같이 검소한 ‘짠순이’같은 발언만 했다.
물론 그것도 ‘대본’에 의한 연출이었겠지만 그런 식으로 방송을 내보낸 제작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그렇게 한가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나 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여대생들의 99%는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원하는 곳에 취직해 ‘커리어 우먼’으로 성장하는 것을 꿈꾸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여대생들의 ‘다부진 현실 감각’을 방송제작진들이 너무 모르는 것 같았다. 그날 방송에선 ‘루저’같은 소리나 하고 있는 ‘철부지 여대생’상을 보여줬으니 방송사는 그 하나만으로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인터넷 상에선 ‘인민재판 식’으로 ‘루저 발언’한 여대생을 매도하는 흐름이 있는데 이런 것도 어찌 보면 ‘구태’같다. 그녀가 그런 발언 한 자체는 그리 산뜻한 것은 아니었지만 곧 자신의 홈피에 경위를 설명했고 사과의 말씀까지 올렸으면 ‘관용의 정신’을 발휘해줘야 할 것이라고 본다. 원천책임은 분명 방송사 제작진에 있는데 대본대로 말했다는 어린 출연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듯한 태도는 온당치 않다.
‘키 작은 남자’를 ‘루저’라고 말한 건 결코 잘한 건 아니지만 대본에 써 있는 대로 했건 개인의 소신을 말했건 지금 저렇게 야단법석을 떨며 몹쓸 인간 취급한다는 그 자체가 오히려 더 문제가 있다.그냥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치부하면 될 일을 너도나도 나서서 비난한다는 건 조금은 촌스런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철모르는 한 여대생의 의견이 그렇게 온 인터넷을 뒤집어놓을 정도로 소란스러워져야할 '깜냥'은 아니라는 얘기다.
요즘 인터넷 ‘여론 재판’의 가장 큰 문제는 하찮다면 하찮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발언에까지 일일이 발끈하면서 난리법석을 떠는 바로 이런 집단 패닉현상을 꼽을 수 있겠다.
지난 번 ‘2PM 사태’처럼 문제를 너무 ‘침소봉대’해 그런 발언을 한 사람을 곤경에 몰아넣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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