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
詩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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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이 ‘긍정적인 밥’이라는 시 한편을 낚았다.
꽤 괜찮은 행운이고 행복이다. 울컥한다.
강화도 바닷가에 홀로 산다는 한 ‘가난한 시인’이 밥의 존엄함에 대해 쓴 이 시가 나를 기운나게 한다.
우리를 살리는 밥에 대한 긍정적이고 겸손한 시인의 마음이 느껴져 좋다.
밥! 성스러운 우리 삶의 활력소! 우리 삶의 원동력!
피땀 흘리며 썼지만 생계비론 턱없이 모자란 시 한 편이 그래도 쌀 두말이나 팔 수 있다니...
단돈 삼 만원은 적어보이지만 쌀 두말이라면 굉장하지 않은가.
자식같이 귀한 시집 한권이 비록 삼천 원 짜리 국밥 한 그릇 값이지만
그 국밥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을지 시인은 고민한다.
시로 밥을 만들어 먹는 가난한 시인의 밥에 대한 경건한 마음과
엄숙한 시선이 평범한 시민인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밥을 위해 세상의 아버지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집밖을 헤맨다.
밥을 위해 세상의 어머니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집안을 서성인다.
밥을 위해 세상 모든이들은 그들의 하루를 열심히 살아나간다.
밥은 우리의 생명이다. 밥은 우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다.
시인이 드린 공에 비해 시원찮은 수입임에도 한숨대신 감사하는 마음은 바로 밥힘에서 비롯한다.
요 근래 이렇게 절절한 시 한편을 본 적이 없다.
늦게나마 함민복이라는 시인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다.
어떤 소설가는 ‘이 순간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근사한 일 중 하나가 함민복을 읽는 일’이라고까지
극찬했다고 한다.
이 ‘긍정적인 밥’ 시 한 편만으로도 그 소설가의 찬사가 허언은 아닌 듯싶다.
오늘아침 우연히 발견한 이 시 한편으로 갑자기 부자가 된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스산한 늦가을 아침이 감동적인 시 한편과의 조우로 따사로워진다.
살맛이 난다. 밥같은 시다. 고마운 시다.
<함민복 시인의 약력>
△ 1962년 충북 충주 출생
△ 1982년 수도 전기공업고등학교 졸업
△ 1986년 월성원자력발전소 퇴사
△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로 등단
△ 1989년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졸업
△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
1993년 ‘자본주의의 약속’, 96년 ‘모든 경계 에는 꽃이 핀다’ 등 출간
△ 1998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 2003년 첫 산문집 ‘눈물은 왜 짠가’를 펴냄
△ 2009년 세 번째 산문집 ‘길들은 다 일가 친척이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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