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겸손한 오바마의 ‘새우등 인사’

스카이뷰2 2009. 11. 18. 09:40

 

오바마대통령이 아키히토일왕에게 90각도로 인사하고 있다.(시사통신사진)

 

 

                                겸손한 오바마의 ‘새우등 인사’

 

일왕에게 90각도의 '새우등 인사'를 한 오바마대통령에 대해 말들이 많다.

오바마의 인사법에 처음으로 태클을 건 사람은 무명의 블로거였다.

LA 타임스 블로그를 통해 ‘대통령의 인사자세’가 저자세라는 걸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 이후 미국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에서도 매스컴과 블로거들이 저마다 ‘오바마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한결같이 ‘굴욕’ ‘저자세’쪽의 보도가 대세인 듯하다. 그렇게 보는 것도 일리는 없지 않지만 내가 보기엔 오바마의 ‘겸손하고 착한 성품’이 다소 작용했던 것 같다.

 

백악관 측에선 이런 논란을 잠재우려는 듯 ‘프로토콜(protocol)’에 의한 것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다면서 정치쟁론화 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발표했다.

어쨌거나 오늘(18일) 저녁 서울에 오는 오바마로선 자신의 인사법을 놓고 대한민국 블로거들까지 ‘야단법석’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 모르고 있을 것이다.

 

오바마의 일왕에 대한 ‘새우등 인사’는 내가 보기에도 다소 의외였다.

왕궁 현관에 왕비와 함께 서 있는 아키히토 일왕에게 90각도로 매우 정중한 인사를 하는 오바마의 모습을 TV를 통해 보는 순간 ‘구설에 오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두 가지 영상이 떠올랐다.

 

하나는 연전에 본 일본 영화 ‘내일의 기억’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려 회사를 그만 두게 된 주인공 남자가 자신의 직속상사에게 ‘딸이 결혼하는 날까지만 다니게 해달라’고 간청하면서 90각도의 새우등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자식을 위해 허리 굽혀 부탁하는 모습은 눈물겨워 보였다.

 

이 ‘새우등 인사법’은 일본에선 워낙 보편적인 것이어서 일본인들 자신은 그다지 이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슬픈 부정(父情)’이 느껴지는 ‘아버지의 새우등’이었다.

또 하나는 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는 일본 대하드라마 ‘아츠히메’에서 일본에 문호를 개방하라는 압력을 행사하러 온 미국 측 사절단과 ‘막부’사이의 ‘인사예절’에 대한 갈등 장면이다.

 

미국 사절단이 ‘쇼군’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새우등 인사’를 거절하자 막부측은 궁여지책으로 높게 쌓아올린 단상 위의 의자에 ‘쇼군’을 앉게 하고

사절단을 ‘굽어볼 수 있게’한다. 국가 간의 ‘자존심’을 건 기세싸움이었다.

 

1858년경 일본에선 ‘쇼군’앞에서 감히 뻣뻣이 서서 이야기한다는 자체는 아무리 미국인이라도 매우 불경한 것이었나 보다. 어쨌거나 이런 장면들이 ‘오바마의 등’과 겹쳐지면서 문득 오바마가 ‘조손가정출신’이라는 것까지 떠올랐다.

 

다 알려진 대로 케냐인 아버지가 ‘오바마 모자’를 하와이에 남겨두고 하버드대학에 박사 공부하러 간 뒤 오바마는 결국 외할아버지 집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오바마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는 오바마가 하와이 최고 명문고교에 진학하기까지 외조부모의 ‘헌신(獻身)’의 삶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매우 총명한 어린이’였던 오바마는 할아버지를 ‘골탕 먹이는 악동’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보는 ‘통찰력’이 남달리 뛰어났던 오바마는 ‘할아버지의 허세’는 ‘세상에 실패한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걸 일찌감치 간파한다.

 

오바마는 ‘백인 조부모’의 지극한 보살핌 속에 ‘예절 바른 청소년’으로 성장해 결국은 오늘날 ‘미국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저렇게 대성하게 된 것이다. 어쩌면 조부모의 예절교육이 오바마로 하여금 ‘할아버지 같은’ 올해 77세의 일왕에게 허리 굽혀 절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오바마는 대중 강연을 하는 도중 유년 시절 모친과 함께 일본 관광 온 ‘추억담’을 꺼내면서 그때 먹었던 ‘말차 아이스크림’이 지금도 생각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런 화법도 상대를 ‘배려’하는 오바마 스타일이 아닌가 싶다.

 

오바마는 엊그제 중국 상하이에서도 대학생들로부터 열광적인 환대를 받았다. 차세대 리더들인 그 중국대학생들에게 오바마는 첫 인사말로 ‘상하이 방언’을 사용해 큰 박수를 이끌어냈다. 그는 자유와 평등이 있어서 나같은 사람도 대통령이 되었다고 말함으로써 은근히 중국정부당국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이런 연설스타일이야 스피치라이터들의 ‘작품’이고, ‘프로토콜’의 일부일수도 있겠지만 ‘따스한 남자’ 오바마의 겸손한 심성이 기저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물론 미·일 간의 원활한 협력이 요구되는 시절이어서 외교적 제스처를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행위였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오바마의 ‘착한 천성’이 배어있는 인사법이라고 보고 싶다.

 

오늘(18일) 저녁 서울에 오는 오바마 미국대통령은 단순히 미국 대통령에 그치지 않는 ‘불세출의 존재’인 것 같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인데도 총명한 오바마를 생각하면 공연히 흐뭇하고 대견한 마음이 든다.

오바마 대통령! 웰컴 투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