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교토대학 전경.(교토대 홈피에서)
2년 만에 또 노벨상 받은 일본과 헛물켠 한국
금년에도 일본은 또 노벨 화학상 부문에 2명의 학자를 배출했다. 홋카이도대학 스즈키 아키라(鈴木 章,80)명예교수와 네기시 에이이치(根岸英一,75) 미국 퍼듀대 특별교수가 미국의 리처드 헤크(79)델라웨어대 명예교수와 함께 공동 수상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인 노벨 화학상 수상자는 7명으로 늘었다. 미국 60명, 독일 28명, 영국 26명, 프랑스 8명에 이어 5위를 차지했고, 아시아에선 말할 것도 없이 ‘압도적 1위’의 명예를 차지했다. 화학상 뿐 아니다.
그 어렵다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인 학자도 8명이나 된다. 2년 전, 89세의 노익장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미국 시카고대 명예교수와 교토 산업대 마스카와 도시히데(盆川敏英,70) 교수.
고에너지 가속기 연구기구 고바야시 마코토(小林 誠, 66)특별영예교수 등 3명의 일본인 학자가 한꺼번에 물리학상을 받았다. 같은 해 시모무라 오사무 (下村 蓨,82) 미국 보스턴대 명예교수는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들 중 고바야시 교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외국에 가본 적이 없다는 말을 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2008년 일본 열도는 물리, 화학분야에서 노벨상수상자를 4명이나 배출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긴급 호외가 발행되었고, 각 TV방송에선 그 학자들의 연구실과 집을 방문해 연구원들과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일제히 방영했다.
올해도 일본의 매스컴은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얌전하고 품격 있는’ 방송을 진행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NHK 뉴스 캐스터마저 흥분해서 환호하는 장면을 보여줄 정도였다. 요미우리(讀賣)신문 등도 일제히 호외를 발행하며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침체돼 있던 일본에 모처럼의 희소식”이라고 반겼다.
NHK 화면에는 홋카이도 대학 스즈키 명예교수가 학교건물에 들어서자 제자들이 열렬히 박수를 치는 장면과 그의 집 현관에서 공손히 인사하는 노처(老妻)의 모습을 연달아 보여주었다. 여든 살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해 보이는 노교수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 일본 젊은이들이 이과에 더욱 관심을 갖고 많이 진출하길 바란다”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자들에게 타이르듯 다정한 어감의 목소리였다.
미국 명문대인 퍼듀대 네기시 교수는 ‘일제 강점기’의 초등학교 시절 2년 동안 기술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산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은 노벨 과학상을 이제까지 15명이나 탔는데, 한국은 아직 수상자가 없는 이유를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자 ‘근대화 역사의 차이’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일본은 태평양전쟁 후 바로 과학입국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 왔다. 산업도 빨리 발전했다. 노벨상을 탈 수 있는 토양이 일찍이 형성됐다. 축적의 힘이다. 하지만 한국은 약 30년 늦었다. 그럼에도 그 속도가 빠른 만큼 노벨 과학상을 탈 여건은 됐다. 시간문제다.”라는 말로 ‘소학생시절’ 잠시 살았던 나라에 대해 우호적인 덕담을 내놨다.
일본의 언론들은 노벨상 화학상을 받은 ‘비결’을 ‘오이에게이(お家藝)’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독특한 기예’라는 뜻이다. 유기화학분야는 일본이 전 세계를 이끌었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분야라는 ‘자부심’가득한 말이다.
일찍이 일본은 1920년대부터 유기화학분야를 육성하기 시작했다.1917년 설립한 ‘이화학연구소(약칭 리연∙리켄)에서 집중적으로 연구한 분야가 바로 입자물리학과 아울러 유기화학 분야였다. 종전 후 196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화학공업의 핵심인 유기화학분야에 ‘고급인재’들이 몰렸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 대학에서도 화학과에 인재가 몰렸던 것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이렇게 국가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동시에 ‘세밀한 기술’에 소질이 있는 일본인의 특성이 결합되면서 노벨상을 연거푸 받게 된 것이다. 이번 노벨상 수상은 경기침체와 각종 국가적 기강해이 사건으로 ‘일본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자조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던 나라 전체의 분위기는 확 반전되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너무너무 기쁘다. 일본의 새로운 희망이다”는 소감을 말했다. 그야말로 ‘거국적인 경축분위기’로 일본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일본에 비해 대한민국은 어떤가! 노벨상이 전부는 아니지만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2010년 현재 노벨 평화상 딱 한 개만 받은 게 전부다.
그것도 10년 전인가 DJ대통령이 평양에 날아가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한 공로로 받은 상인데다 그 상금은 대통령 개인통장으로 들어갔기에 ‘거국적 영광’은 조금 빛이 바랬다는 게 세간의 평가다.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 의학상 이런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나마 고은이라는 노(老)시인이 8년째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게 전부다.
금년엔 ‘거의 수상이 확실하다’는 보도가 인터넷에 계속 실시간으로 뜰 정도로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엉뚱하게도 남미 페루의 소설가 바르가스 요사(74)가 선정됨으로써 또다시 ‘헛물’을 켠 셈이다.
이솝 우화의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는 해마다 10월 언저리에는 ‘노벨상 타령’을 열심히 하다가 결국 받지 못하게 되면 ‘여우처럼’ 그깟 노벨상이 대수냐며 그 상을 폄하하지만 한편으론 ‘국민적 실의(失意)’에 빠지고 마는 ‘악순환’을 되풀이 하고 있다.
노벨상 문학부문 ‘단골 후보자’인 늙은 시인은 올해도 ‘만약’수상을 대비해 ‘한복’까지 차려입었고, 그의 집 대문 앞은 예년처럼 취재진과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는 건 좀 우스운 풍경 같다.
더구나 올해는 그가 살고 있는 안성시가 ‘고은 시인 노벨상 후보’라는 축하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니...
김칫국부터 마신 형국이랄까. '노벨상 타기'가 무슨 스포츠도 아닌데 우리는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처럼 ‘하나가 되어’ 노벨상을 연호하는 게 영 탐탁지 않다.
그 시인과는 수인사도 없는 사이지만 DJ가 평양 방북 때 주석궁인지 어딘지에서 열린 만찬연회장에서 김정일과 함께 박수치고 노래 부르며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올라 그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곱지가 않다.
그래도 명색이 시인인데 ‘아사자(餓死者)’가 속출한다는 북한에 가서 흥청거린다니...이런 거부감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그가 유력한 노벨상 후보라는 기사가 온라인에 떴을 때 그에 대한 ‘댓글’의 90% 이상이 ‘악플’이었다는 걸 감안해 보면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더라도 과연 진정한 ‘거국적 환호’가 있었을까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어쨌든 2010년에도 대한민국은 노벨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있듯이 옆 동네 나라에선 여봐란듯이 저렇게 쑥쑥 잘 타내는 이과 분야 노벨상을, 그리고 그나마 가냘픈 기대를 걸었던 문학상마저 우리는 또 허탕 쳤다는 현실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몇 해 전 가을, 일본 도쿄의 긴자(銀座)에서 그 해 노벨상 화학상을 탄 학자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다.
아내와 함께 걸어가는 노학자는 ‘노벨상 수상자’다운 품위를 갖춘 온화한 표정이었다. 노부부는 TV에서 볼 때보다는 젊어 보였다. 아마 노벨상 수상이 캠퍼(camphor) 주사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노벨상을 탄 학자와 은성한 거리, 긴자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멋진 도시’의 풍경을 연출하는 모습은 보기에 좋았다. 그 순간 문득 ‘일본’이라는 나라가 대단한 나라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소소한 풍경이 바로 일본의 저력이라고나 할까.
우리에게도 서울 명동거리를 노벨 물리학상이나 화학상을 받은 한국인 학자가 인파에 묻혀 조용히 걸어가는 순간을 우연히 목격할 날이 곧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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