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51초 침묵한 오바마 감동연설을 보고

스카이뷰2 2011. 1. 14. 18:37

 

                                 대통령 전용기에서 보좌관에게 연설문에 대해 묻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보좌관 같아 보인다.

                                           애리조나 주 투싼에서 열린희생자 추모식에서 묵념하고 있는 대통령내외.

                    

                   51초 침묵한  오바마 감동연설을 보고

 

어제(13일) 오후 우연히 미국 TV FOX뉴스를 틀었더니 오바마 대통령과 부인 미셸 여사가 웬 콘서트 장 비슷한 곳에서 참석한 사람들과 일일이 포옹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냥 의례적인 정치인의 제스처가 아니었다.

몹시 상심한 듯한 표정의 사람들에게 다가가 등을 어루만지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어린 손길로 어루만져주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미셸 여사는 어떤 한 사람과는 무려 2분 이상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미국 대통령 부부가 그렇게 정중한 예를 갖춰 공들여 국민과 포옹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마침 TV 화면 아랫부분에 애리조나대학 농구경기장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이어서 그 대학 총장이 사회를 보는 모습도 나왔다.

그 프로그램은 지난 8일 애리조나 주 투싼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식 중계방송이었다. 연사들이 나와 울먹이면서 그날의 ‘악몽’을 얘기했고,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인디언 복장 비슷한 차림새의 ‘심령술사’처럼 보이는 50대 남성이 무슨 깃털 같은 걸 갖고 나와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는 모습이었다. 화면에는 ‘전통 심리치료사’라는 설명이 나왔다.

관자놀이에 관통상을 입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민주당 기퍼즈 여성의원을 구명하는데 큰 공을 세운 그녀의 인턴보좌관이 우람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울먹이면서 말하는 장면도 퍽 인상적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나온 스포츠 머리의 동양계 의사는 기퍼즈의원을 살려내 '신의 손'이라고소개되었다. 피터 리라는 그 의사는 한국계 이민 1.5세로 이번 추모식에서  '영웅'으로 불렸다. 추모객들은 그에게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야말로 '자랑스런 한국인'이었다. 애리조나대학 총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추모연설을 한다고 소개하자 장내는 떠나갈 듯한 박수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찼다. 마치 콘서트 장에서 톱스타의 출연을 반기는 듯했다.

 

그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단상에 올라선 오바마 대통령은 평소 ‘귀여운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이 처음으로 눈을 떴습니다"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오바마의 그 말은 '시'처럼 들렸다. 추모객들 중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꽤 보였다.  관중석을 꽉 채운 추모객들은 대통령에게 환호의 함성을 보냈다.

 

열렬한 호응을 받았지만 대통령은 매우 엄숙하면서도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깍듯하게 조의를 표하는 아주 보기 드문, 우수가득한 표정이었다. 우리 나이로 이제 쉰 한 살이 된 그는 나이에 비해 훨씬 원숙한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는 거의 성자(聖者)같은 표정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힘주어 말하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짧은 영어실력으로도 웬만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쾌한 문장들이었다.

 

이번 연설문의 초고는 오바마가 밤을 새워가며 작성했다고 한다. 연설담당 보좌관 코디 키넌과 대통령전용 비행기 안에서도 여러 차례 상의 끝에 30여분 분량의 ‘명 연설문’을 작성했다.

평소 글솜씨가 대단하기로 유명한 오바마는 비단 글재주만으로 쓴 글이 아닌 그야말로 ‘가슴’으로 애도하며 국민의 아픔을 진심으로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오바마의 연설은 마치 희생자를 비롯한 미국국민 모두에게 바치는 ‘조화(弔花)’ 처럼 느껴졌다. 오바마에겐 사람을 위로해주는 천부적 재능이 있어 보였다.

 

오바마대통령은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면서 “거친 비방대신 상대방을 존중하는 새로운 정치적 예의의 시대로 들어가자”며 간절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대학농구장을 꽉 메운 1만 4천여명의 추모객들은 박수와 함성으로 응답했다.  

 

자신의 ‘보스’를 구하는데 몸을 사리지 않았던 인턴 보좌관 대니얼 에르난데스가 “자신은 영웅이 아니다”라고 연설한 것을 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손짓까지 하면서 “당신은 진정한 영웅이다”고 찬사를 보냈다. 추모객들은 또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다.

 

그런 ‘대통령남편’을  영부인 미셸 여사는애정어린 눈빛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그 모습 역시 참 아름다워 보였다. 연설이 끝난 뒤 이 대통령부부는 뜨거운 포옹을 하며 서로를 격려했고, 추모객들은 일제히 기립해 우레와 같은 긴박수를 보냈다. 그야말로 대통령과 국민이 혼연 일체가 되는 모습이었다. 미국이 왜 세계 최고의 국가인지를 알 것 같았다.

 

그 장면을 보면서 국민으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는 대통령’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든든한 것인지를 처음 느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생한 이 흑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호오(好惡)는 극명하게 엇갈려 미국 사회가 분열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는 시간같았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32분간의 연설 마지막 대목에서 ‘최연소 희생자’인 9세 소녀 크리스티나 그린을 추모하면서 1분 정도 ‘침묵’으로 격해진 감정을 추스르는 모습을 보여줬다.추모식장의 연설문인데도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고 절제된 표현이었다는 평을 받았다. 미국의 유력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을 중단하고, 10초 후 오른쪽을 쳐다본 뒤 20초 후 심호흡을 했으며, 30초 후에 눈을 깜빡이기 시작했다. 무려 51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어금니를 깨물고는 연설을 다시 이어갔다.”

 

화면에는 아홉 살짜리 곱디고운 어린여자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그 표정만으로도 여러 사람에게 기운을 심어줄 런 표정이었다. 크리스티나는 9‧11테러가 발생한 날 태어나,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적의 메시지를 전하는 아기로 큰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막내딸과 동갑인 이 소녀를 추모하며 “그 아이의 기대에 걸맞은 삶을 살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그 아이가 상상했던 만큼 좋은 것이기를 원한다”고 말해 열렬하고도 긴 박수를 받았다.

추모객들은 오바마의 연설이 끝나자 모두 기립해 한 5분 정도(?) 대통령에게 ‘길고 긴 박수’를 보냈다.

 

 얼핏 보면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모습과 유사했지만 그 추모객들은 동원된 사람들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해 ‘진심으로’ 자신들의 ‘대통령’에게 ‘뜨거운 박수’로서 애국하는 마음의 일체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뉴욕타임스(NYT)는 13일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을 집중 조명하면서 대통령으로서는 물론 두 딸아이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NYT는 또 오바마 대통령이 "만약 이런 일이 내 딸들에게 일어났다면 누구와도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크리스티나의 부모에게 전화하는 것을 망설였으나, 결국 전화를 걸었고 연설 전에 이들을 직접 만났다는 한 측근의 전언을 소개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취임 이후 연설에서 주로 정책에 초점을 맞춰온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전 국민과 감정적인 소통을 했다면서 "2년간의 재임기간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고 촌평했다.

이번 ‘애리조나 추모연설’로 오바마대통령의 ‘재선가도’에 청신호가 켜진 것 같다. 각종 매스컴에선 오바마의 연설을 극찬했고, 연설문 작성 뒷이야기를 소상히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애리조나로 향하는 전용기에서도 마지막까지 자신이 직접 작성한 연설문을 다듬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날 AF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 연설에 대해 취임 후 `가장 큰 정치적 상승(the biggest political boost)'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날 연설이 보수진영으로부터도 찬사를 받고 있다고 소개한 뒤 지난해 말부터 국정지지율을 회복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폭스뉴스의 글렌 벡이 "그가 했던 연설 가운데 아마도 최고일 것"이라고 치켜세우는 등 그동안 `저격수'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잇따라 칭찬대열에 가세했다.

 

이번 추모식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미셸 여사가 보여준 ‘진정성 깊은 애도’의 모습은 비단 그들이 ‘최고 권력자 부부’여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들의 겸허하면서도 신실한 심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기에 추모하러 모인 미국인들은 한마음으로 대통령내외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 미국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