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일 해줘서 고마워요!’-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회사 이야기

스카이뷰2 2011. 2. 7. 17:43

 

                                           근속 52년째인 하야시 히사코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오야마회장.

 

 

  

     ‘일 해줘서 고마워요!’-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회사 이야기

 

 

1959년, 벚꽃이 활짝 핀 어느 늦은 봄날 15세 소녀 하야시 히사코는 엄마 손을 잡고 ‘일본이화학공업’이라는 분필 공장에 첫 출근했다.  히사코는 정식 출근하기 전, 2주 동안 ‘견습직원’으로 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 기간 동안 히사코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점심때는 누가 어깨를 두드려줘야 식사시간이 된 걸 알 정도였다. 히사코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30세의 젊은 사장 오야마 야스히로는 히사코를 정식 채용하기로 했다.

 

사실 히사코는 지적장애가 있는 소녀로 다니고 있는 학교를 졸업하면 오갈 데가 없어 결국 ‘시설’로 가야했다. 시설에 간다는 것은 평생 타인의 돌봄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연명해 나가야하는 ‘식물인간’같은 삶을 의미했다. 이런 히사코를 딱하게 여긴 양호선생님이 분필공장 오야마 사장에게 소녀의 일자리를 부탁했던 것이다. 오야마 사장은 처음엔 물론 거절했다. 기업주의 입장에서 볼 땐 당연한 일이었다. 성한 사람들도 많은 세상에 하필 장애인을 직원으로 써야한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양호 선생님은 한번 거절당했다고 포기하진 않았다. ‘삼고초려’라고 세 번째 방문하는 날 선생님은 취직은 안 돼도 좋으니 이 아이에게 일해 볼 기회라도 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사정 끝에 히사코는 15세 어린나이에 ‘당당히’ 일본이화학공업의 사원이 됐다.

그로부터 무려 52년이 흐른 2011년 현재 66세 할머니가 된 하야시 히사코는 ‘최장기 근속 사원’으로, 회사를 지키는 산 증인이 되었다

 

공장 한 구석에 앉아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다. 50여 년 전 히사코의 성실성 하나만 보고 정식 사원으로 채용해준 당시 30세의 젊은 오야마 사장은 이제 80세의 호호 할아버지가 되었다.  66세 할머니 직원 하야시 히사코는 인내심이 엄청 강해보이는 무던한 인상이다. 머릿수건 사이로 삐져나온 흰 머리카락을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릿수건 안으로 애써 밀어 넣으려했다.

 

얼마나 다니셨냐는 물음에 작은 목소리로 51년 동안 다녔다면서 다섯 손가락을 쫙 펴 보인 뒤 다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펴 보였다. 언제까지 다니고 싶냐고 묻자 “옆 사람들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 때까지”라고 답했다. 그녀는 60세 정년을 마친 뒤 5년을 더 재고용돼 일했다.

 

완전 백발인 오야마 회장은 하야시 히사코의 손을 부여잡고 “일 해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계속 잘 부탁해요”라고 말했다. 참 아름답고 대견하고 자랑스런 장면이다. 뭉클한 감동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시청자에 불과한 입장이지만 그 장면을 보면서 코끝이 시큰해졌다.

 

단순한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 흔히 볼 수 있는 사주와 사원의 관계가 아닌 50여년 세월 속에 맺어진 끈끈한 세월의 무게와 인간에 대한 예의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장면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밤,우연히 틀었던 KBS TV의 스페셜 프로그램 ‘일 해줘서 고마워요!’에서 본 이야기다.

 

현실에선 그리 흔치 않은 동화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엄연한 일본의 현실이다. 아마도 이런 사소한 이야기가 세계 제2의 강대국 일본의 저력을 말해주는 것 같다.  현재 이 회사는 오야마 회장의 아들이 대를 이어 사장직을 맡고 있다. 아들 역시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장애인 직원들을 정성껏 돌봐주고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지적 장애인이 한 회사를 50년 넘게 다니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일하는 행복을 느끼며 자립할 수 있다는 것!

일본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회사라는 이 일본이화학공업은 전체 직원 74명의 소규모 회사다. 전체 직원의 70%가까이되는 55명이 장애를 갖고 있으며 그중 20여명은 IQ50도 안 되는 중증장애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가루가 날리지 않는 분필’은

‘하자’가 전혀 없는 완제품이다.

 

오야마 회장에 의하면 장애인사원은 ‘엄격한 완벽주의자’들이어서 정상 직원이 만들다 생긴 아주 미세한 흠결도 찾아내 가차 없이 ‘불량품’판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르쳐준 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거의 기계처럼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다.

화면에는 장애인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그들이 퇴근 후에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도 보여주었다.

 

 부모와 함께 살며 여전히 ‘어린 아기대우’를 받는 한 청년도 어느새 10년 장기근속 표창장을 받고 흐뭇해한다. 아들의 그런 모습을 보며 부부는 너무도 대견해하면서 아들이 ‘첫 월급’을 집에 가져왔을 때가 ‘생애 최고로 기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엄마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이 회사엔 입사한지 10년 넘은 장기근속 장애인들이 꽤 많았다. 그 가운데 한 청년은 독감에 걸려 아무리 열이 많아도 회사만큼은 ‘죽어도’간다고 말한다. 왜냐면 자신이 빠지면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일본의 가정에선 어린아이에게도 ‘남에게 절대 폐 끼치지 말라’는 가정교육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왔다. 바로 그 산 증거를 보게 된 셈이다.

회사에서는 연말에 ‘크리스마스 파티’겸 ‘송년회’를 하는데 장애인 직원의 부모도 함께 참석하는 게 관례로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송년 모임에 부부 동반 혹은 혼자서 온 부모들은 자녀들이 장애인임에도 ‘월급 받고 일 한다’는 사실에 너무 대견하고 감격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한 부모는 “1년중 제일 기다려지는 최고로 즐거운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송년 모임에선 근속 장애인들 대부분이 갖가지 명목을 붙인 ‘상(償)을 받는다. 가령 현장 노력상, 발전상, 인사상, 등등... 상을 받은 직원들은 티 없이 맑은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한 청년에게 꿈이 뭐냐고 묻자 쑥스러워하면서도 “회사에서 ‘반장’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박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무한한 애착을 갖는다는 게 대번에 느껴지는 대답이다. 그들은 무슨 술수를 쓸 줄도 모르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려 있어서 보는이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을 갖게 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요즘 ‘대대적인 취업난’을 겪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상인도 취직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저렇게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거의 ‘종교’처럼 거룩하고 엄숙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들 장애인들이 스스로 ‘일하는 행복’을 느끼며 10년 20년 30년 그리고 심지어 5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일본이화학공업의 오야마회장은 뜻밖에도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적 장애인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인생을 살진 못했을 것이다. 그들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겸손한 표정으로 자신의 회사에 대해 얘기하는 오야마 야스히로 회장은 2009년 일본 최고의 경영인에게 주는 시부사와 에이치상을 수상했다. 1937년 설립한 일본이화학공업은 장애인 직원 복지에 애쓴 공로로 2007년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선정됐다.

부전자전이어선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애인 직용을 채용하고 돌보는 아들사장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소감을 말해 감동을 주고 있다. “불경기지만 단순하게 10년 후에도 저 직원들과 함께 웃으며 일할 수 있는 회사면 좋겠다.”

 

이 스페셜 프로그램을 보는 동안 일본이라는 나라는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깊이 절감했다. 요즘 일본이 부채(負債)가 많다, 일본이 예전 일본이 아니다, 심지어는 어느 이상한 여성의원이 내놨던 책제목처럼 ‘일본은 없다’는 둥,되도 않는 소리들이 나돌고 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일본국엔 별 이상 없는 것 같다“ 최소한 우리보다는 걱정이 덜한 나라로 보인다.

 

오히려 우리 대한민국이야말로 스스로를 살펴보며 반성해야할 시점인 것 같다. 여지껏 살아오면서 저렇게 장애인을 50년씩 일하게 해주는 회사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소리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들어본 일이 없다. 장애인 문제는 둘째 치고 ‘비정규직 문제’조차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 못해 청소아줌마들이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그런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아닌가!

일본이화학공업의 ‘기적’같은 이야기를 보면서 대한민국은 이제 국가 전체적으로 재점검해봐야 할 거 같다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