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다이 쓰나미 피해 현장 (다음-로이터 사진)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인류애
어느 새 사흘이 지났지만 지진의 공포는 여전히 남의 일 같지 않다. 일본! 대한민국 국민에겐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나라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옛날 일들을 되새길 때가 아니다. 오직 ‘지구촌 한 가족’이라는 ‘인류애’로 대재앙을 당한 일본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우선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일본 동북부 지역 센다이(仙台)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번 지진과 쓰나미는 말 그대로 상상이상의 재앙이었다. 지난 금요일 오후 3시쯤부터 우리나라 매스컴에서도 보도되기 시작한 쓰나미의 독한 질주는 ‘검은 악마’처럼 평온했던 인간의 대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진도 9의 지진과 쓰나미는 원자폭탄 피해보다 더 심한 것이라니 뭐라 표현할 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TV화면으로 광란의 검은 폭포 아래로 승용차 트럭 승합차들이 급격히 추락해 떠내려가버리는 광경을 보면서 무슨 재난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자그마한 장난감처럼 보이는 수백 대의 자동차들 안에 행여 사람들이 타 있었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이건 일본의 일이 아니다. 우리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당하고 있는 엄청난 정신적 쓰나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재앙은 어디에나 닥칠수 있는 것이다.
큰 선박들도 종이 돛단배처럼 교각에 부딪쳐 마구 구겨지면서 떠내려가는 광경은 이제까지 상상도 못했던 전율스러운 장면이다.
그저 ‘어머! 어머 아이고’ 이런 외마디 소리밖에 나오질 않는다.
늙은 어부처럼 보이는 한 남자는 자신의 뺨을 계속 꼬집으면서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면서 울먹거렸다. 자신은 살아났는데 딸은 파도에 떠 밀려 가고 말았다고 눈물짓는 중년 여성의 슬픔은 국경을 초월한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그 와중에 난민 대피소 마룻바닥에 앉아 품안에 안은 어린아기에게 조심조심 ‘이유식’을 떠먹이는 젊은 엄마의 모습에서 인간의 마지막 희망을 볼 수 있는 듯했다.
쓰나미 속에 표류하던 67명의 유치원 꼬마들이 탄 배를 간신히 인양해 어린이들이 모두 구조되었다는 소식엔 왈칵 눈물이 났다. 그냥 어린애처럼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얼마나 다행인가. 아무 말 없이 절대자 앞에 무릎꿇고 감사드리고 싶었다. 자연의 대재앙 앞에선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이번 일본 지진과 쓰나미를 보면서 절실히 느꼈다.
1945년까지 일본에서 20여년간 살다 오신 어머니는 어린 시절 내게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해주셨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본인이 두려워하는 세 가지 대상이다. ‘지신(地震),카지(火災)오야지(父)’. 지진이 제일 첫째로 꼽힌 건 그만큼 지진이 무서운 자연의 현상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빈번히 일어나는 지진 탓에 건물은 주로 목재로 지었기에 자연히 화재가 많이 발생했을 것이다.
당시 어린 나로선 우리나라는 지진은 별로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크게 안심 했던 기억이 난다. 15 년쯤 전인가 광화문의 한 호텔 커피숍에 앉아 있는데 별안간 의자가 흔들렸다. 지진이었다. 당시 느꼈던 공포는 지금도 오싹하다.
그날의 지진체험이 내가 직접 겪었던 유일한 지진공포감이다.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절절매기만 했던 그날을 떠올리니 이번 일본 대지진으로 일본인이 겪은 공포심은 어느 정도일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하지만 어림없는 이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살아있다는 자체가 극도의 공포로 느껴질 정도로 죽음보다 더 무서운 지진에 대한 공포감을 견디는 수밖에 없었던 일본인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전하고 싶다. 특히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느꼈을 공포감은 어른들보다 더 극심했을 걸 생각하니 가엽기만하다.
NHK-TV에선 가정집에서 지진을 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그마한 꼬마가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면서 ‘무서워 무서워’를 연발하자 아버지인 듯한 남자도 떨리는 목소리로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울컥했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 것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장 심하게 쓰나미 피해를 당했다는 미야기현이라는 곳에선 시신만 2천여구가 발견됐고, 연락두절 상태인 실종자 수도 3만 명이넘는다니 희생자는 수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지역은 마을 전체가 통채로 사라져버렸다니 전쟁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 벌어진 듯하다.
이제 겨우 나흘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쓰나미의 습격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물론 물적 피해도 조사가 불가능할 정도로 더 심각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어쩌면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피해보다 더 비극적인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매스컴에서 보도된대로 이렇게 엄청난 재앙 앞에서도 침착하게 질서를 지키면서 상점 앞에서도 조용히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들의 그런 침착한 모습에서 일본과 일본인의 재기(再起)가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원폭피해로 폐허가 된 일본을 불과 20여년만에 세계 강대국 대열에 올려놓았던 저력의 나라다.
이제 일본과 일본인은 다시 시작해야하는, 다시 일어서야 하는 나날들을 맞이하고 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요구되겠지만 일본인들은 그들의 국민적 상징깃발이라고도 할 수 있는'야마토(大和) 정신'아래 하나로 뭉쳐 재건에 성공할 것이다.
그런 일본인들을 위해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구조대들이 속속 피해현장에 도착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며 마음으로나마 깊은 박수를 보낸다. 숙연해진 마음으로 이번 쓰나미로 세상을 떠난 모든 일본인과 우리 재일동포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도종환 시인의 ‘지진’이라는 시를 재앙을 당한 일본인에게도 보내고 싶다.
< 지진 -도종환 >
우리가 세운 세상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다
찬장의 그릇들이 이리저리 쏠리며 비명을 지르고
전등이 불빛과 함께 휘청거릴 때도
이렇게 순식간에 지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줄 몰랐다
우리가 지은 집 우리가 세운 마을도
유리잔처럼 산산조각 났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고 폐허만이 곁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황망함 속에서 아직 우리 몇은 살아남았다
여진이 몇 차례 더 계곡과 강물을 흔들고 갔지만
먼지를 털고 일어서야 한다
사랑하는 이의 무덤에 새 풀이 돋기 전에
벽돌을 찍고 사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씻겨야 한다
종을 울려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숲과 새와 짐승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좀 더 높은 언덕에 올라 폐허를 차분히 살피고
우리의 손으로 도시를 다시 세워야 한다
노천 물이 끓으며 보내던 경고의 소리
아래로부터 옛 성곽을 기울게 하던 미세한 진동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건 모두 배워야 한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단 말은 그만 하기로 하자
충격과 지진은 언제든 다시 밀려올 수 있고
우리도 전능한 인간은 아니지만
더 튼튼한 뼈대를 세워야 한다
남아 있는 폐허의 가장자리에 삽질을 해야 한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가치로 등을 밝히고
떨리는 손을 모두어 힘차게 못질을 해야 한다
세상은 지진으로 영원히 멈추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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