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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0>정신병 걸린 아들을 외면한 아인슈타인

스카이뷰2 2009. 12. 10. 11:49

      

 

                  정신병 걸린 아들을 외면한 아인슈타인

 

아인슈타인이라는 세계적 유명인사와의 이혼으로 후유증이 컸지만 그래도 밀레바는 세련된 도시 취리히에서 두 아들과 함께 나름대로는 중년의 귀부인의 품위를 잃지 않고 그런대로 한동안은 평온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의과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던 차남 에두아르트가 심한 정신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그녀는 고단한 아들 병수발뒷바라지로 점점 피폐해져간 삶을 살아야 했다.

에두아르트는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내 인생을 망쳤다'며 분노에 가득 찬 장문의 편지를 아버지 아인슈타인에게 보냈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로서는 뼈저린 내용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들이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그런 편지를 보낸 거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화한 결혼생활을 했던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얼마나 극심한 정서적 불안을 겪었는지를 헤아려 보면 에두아르트의 그런 원망은 어린 시절부터 누적되어온 매우 현실적인 고민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요즘도 부모의 이혼을 지켜본 '결손가정'의 아이들이 심각한 정서적 방황을 겪는 걸 보면 사람살이는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달라진게 없는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아들은 아버지가 가족을 방치해 모든 생활에 그림자가 생겼다는 말도 했다. 명민했던 소년은 아버지의 부재에서 비롯된 정서적 갈등 탓에 서서히 폐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에두아르트는 겨우 초등학교 2학년 때 독일의 고전인 괴테와 쉴러의 작품들을 읽었을 정도로 조숙하고 총명한 아이였다. 세계적 고전을 두루 독파했던 아인슈타인의 어린시절 복사판 같았다. 

 

에두아르트는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을 망쳐놨다'는 말처럼 아인슈타인 부부의 이혼은 총명했던 한 소년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방을 음란한 사진으로 도배했고, 무의미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으며 심한 발작을 일으킨 끝에 취리히 근처 부르크휠츨리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 역시 짧은 대학시절 동안 연상의 연인과 사귀었다. 아마도 아인슈타인의 ‘연상녀 취향 DNA’가 아들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 듯하다.

 

남편 복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병원비 부담 탓에 밀레바는 늘 아인슈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총명했던 아들이 맑은 정신의 끈을 놓아버린 채 병원 침대 신세를 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밀레바에겐 더할 나위없는 시련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기력이 닿는 날까지 아들이 입원한 병원을 부지런히 찾아갔다. 그렇게나 아들들과 헤어지는 걸 슬퍼했던 아인슈타인은 오히려 그 불쌍한 아들을 다신 찾아가지 않았다.

그는 1933년 이후에는 아픈 아들을 본 적이 없다. 매정한 아버지 아인슈타인은 친구 미셸 베소에게 편지에서 아들을 포기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 아이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프네. 나는 더 이상 의학에 기대를 걸고 있지 않네. 자연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네.”

 

아인슈타인은 아들의 정신질환은 밀레바 가계의 유전자 탓이라며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정신질환이 있는 아들을 갖는 고통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쎄 젊은 시절 불장난에서 저지른 결혼의 '원천무효'를 선언하고 싶었던 심정에서 했던 말이었겠지만 좀 어처구니 없는 변명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역시 아버지라는 천륜을 끊을 수는 없었기에 비록 돌보진 않았지만 그만큼 심적 고통이 극심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에두아르트는 어머니 밀레바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무려 17년을 더 요양원에 입원했다. 1965년 그가 죽자 어릴 때부터 가장(家長)을 자임해왔던 형 한스는 지역신문에 그의 부고를 실었다.

살아생전에 끝까지 아들을 돌봤던 엄마 밀레바의 이름은 쓰지 않고 단지 '고(故)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교수의 아들’이라고만 썼다. 아들의 병수발로 인생을 애달프게 보낸 모친 밀레바가 알면 섭섭해 할 일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