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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62)아들의 재혼을 기뻐한 아인슈타인 엄마

스카이뷰2 2010. 2. 12. 10:30

 

    

       아들의 재혼을 기뻐한 아인슈타인 엄마

 

아인슈타인의 모친 파울리네는 1912년 아인슈타인이 성인이 되어선 처음 만난 사촌누이 엘자 아인슈타인과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그렇잖아도 마뜩치 않았던 며느리 밀레바를 쫓아낼 절호의 기회로 생각했는지 아들이 새 연인과 맺어지도록 옆에서 거들었다. 며느리가 정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차라리 안보고 살면 그만일 텐데...

 

굳이 자신의 조카이자 아인슈타인의 이종 사촌 누나이면서 딸이 둘이나 딸린 이혼녀와의 결혼을 권장했다는 건 21세기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유대인의 율법에선 그런 혼인도 별 이상한 게 아니라면야 뭐라 할 이유는 없겠지만. 100년전 어느 가정의 결혼 모습치고는 좀 황당하다. 

 

더구나 천하의 아인슈타인 아닌가! 통속적인 잣대로 볼때 아인슈타인 같은 세계 최고의 석학이라면 엘자보다 멋있고 젊은 아가씨들과 만날 수도 있을 텐데...어쩌면 이런 생각이야말로 구태의연한 구시대적 사고로 지탄받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요즘 혼인 풍속도에 비춰 볼 때 그런 근친결혼은 곤란하다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입증이 된 상태다.

 

아인슈타인의 모친 파울리네는 아들이 자신의 조카인 엘자와 결혼한 직후 아들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미 위암 말기로 투병 중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서재를 개조해 어머니를 모셨다. 여동생 마야와 간호사가 그녀를 간병했다.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아인슈타인은 무척 괴로워했다. 드디어 '철없던' 아인슈타인 박사가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엄마의 자랑스러운 첫 아들이자 외아들로 사랑을 흠뻑 받고 자랐지만 첫 부인 밀레바와의 문제 이후 어머니와 많은 갈등을 일으켰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그는 스스로를 불효자로 여겼다. 아인슈타인의 모친은 아들 집으로 옮긴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어머니의 존재가 사라진 뒤에야 그 존재가 자신을 지탱해주던 ‘중력’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무척 애통해 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간의 유대는 대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울리네 아인슈타인은 아들의 순탄치 않은 첫 결혼 생활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천재아들’의 교육에 남다른 관심을 쏟으면서 일희일비했던 ‘젊은 엄마’파울리네는 배우기 싫어하는 아들에게 바이올린을 억지로 배우게 한 극성엄마였다. 아들교육에 좋다는 일은 어떤 일이든지 마다하지 않았다. 100년 전 그 엄마의 교육열은 21세기 한국 엄마들보다 뒤지지 않았다.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적 영향력의 회초리를 놓지 않으려 했던 대단한 엄마였다.

 

그런 점이 오히려 아인슈타인의 첫 결혼에 악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었다. 밀레바와의 결혼을 놓고 아인슈타인은 수없이 엄마와 갈등했다. 오죽하면 아들은 엄마의 험담을 연인에게 적어 보냈겠는가. 그녀가 아들의 인생은 아들 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했더라면 자신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스트레스는 덜 받았을 텐데...

 

아인슈타인의 모친은 자신의 조카 엘자와 아인슈타인의 재혼에 크게 만족했다. 자신과 닮은 점이 많은 조카 엘자가 새 며느리로 들어오자 그녀는 매우 기뻐했다. 이제 맘에 맞는 며느리와 함께 살만해졌지만 세월이 허락지 않았다. 그녀는 엘자가 며느리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1920년 2월 아들 내외가 임종한 가운데 6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기 2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