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 16년만에 이종사촌 누나와 근친재혼한 아인슈타인
이혼 직후 한때 밀레바는 아인슈타인이라는 성을 버렸지만 나중에 아인슈타인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다시 그 성을 사용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때까지도 아인슈타인에 대한 애정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인간 아인슈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아인슈타인으로 상징되는 ‘물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그녀의 이루지 못한 애틋한 꿈을 말해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을 사랑한 만큼 밀레바의 물리학에 대한 사랑도 대단했다.
어쨌든 아인슈타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수많은 여인들 중 현재까지 공식적으로는 밀레바만이 아인슈타인의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는 것이 그녀에겐 큰 자부심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1948년 8월 73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인생을 병원에서 홀로 조용히 마감했다.
그래도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인슈타인의 아내 자리를 빼앗아간 엘자보다는 12년이나 더 오래 지상에서 살다갔다. 아마 보통사람이 아닌 아인슈타인과의 결혼 생활은 엘자에게 극심한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어쨌든 전처 밀레바는 후처 엘자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복수’를 한 셈이다. 중국 속담에는 ‘원수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 진정한 복수다’라는 말이 있다. 슬픈 밀레바를 위로해줄 마지막 조사(弔詞) 같다.
1919년 6월 2일 아인슈타인은 엘자와 베를린에 있는 호적 등기소에서 드디어 결혼했다. 1903년 1월 스위스 베른의 등기소에서 밀레바와 단출한 결혼식을 올린 이후 16년 만에 아인슈타인은 또 한번의 결혼식을 한 것이다.
결혼식은 단지 형식일 뿐 이미 아인슈타인은 엘자와 그녀의 두 딸과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엘자의 아버지는 아인슈타인의 아버지와 사촌 간이었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아인슈타인의 어머니와 친 자매였다.
그러니까 아버지 쪽으로 치면 엘자는 아인슈타인의 육촌 누나지만 어머니 쪽으로 보면 이종 사촌누나인 셈이다. 복잡한 근친결혼이다. 우리네 상식으로는 그렇게 썩 권장할 만한 결혼 상대는 아니다. 아니 권장은커녕 용인되기 어려운 근친결혼이지만 그쪽 동네 사람들에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나보다.
자기들끼리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야 천하남이 그 결혼에 대해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정서로는 어쩐지 좀 그런 혼인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혼맥 같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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