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빵꾸똥꾸’가 뭐 길래

스카이뷰2 2009. 12. 28. 11:58

         

                                                '빵꾸똥꾸'를 유행시킨 꼬마 주인공 진지희(다음 뉴스사진)

 

 

 

 

 

‘빵꾸똥꾸’가 뭐 길래

 

 

 

‘빵꾸똥꾸’가 요즘 최고 유행어라고 한다. 요 한달 사이 ‘빵꾸똥꾸’는 장안의 화제로 급부상한 것 같다. 인터넷 포털에서도 이 말에 대한 뉴스가 수북하다. 인기검색어 1위를 당당히 차지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오늘 아침신문에 ‘연말 핫 이슈 빵꾸똥꾸’란 제목이 떴겠는가.

 

처음 ‘출처불명’의 이 말을 듣는 순간 꽤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 딱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왠지 생경하고 거북하고 닭살 돋는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요샌 하도 ‘듣보잡’ 수준의 ‘신조어’들이 튀어나오고 있어서 또 하나의 그런 류의 신조어로 알았다. 알고 보니 MBC의 ‘지붕 뚫고 하이킥’이라는 일일 시트콤드라마의 못된 꼬마주인공이 ‘성질’부릴 때 주문처럼 툭하면 뱉어 내는 말이었다. 내가 몰라서였지 ‘출처’는 분명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 드라마 속 신조어가 그처럼 ‘최고유행어’로 뜬 것은 역시 ‘관권개입’이 문제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다른 어린이 시청자들이 모방할 가능성이 있어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양식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린 데서 사단이 난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붕 킥’의 내용 중 “왜 때려, 이 빵꾸똥꾸야” “먹지마! 어디 거지같은 게 내가 사온 케이크를 먹으려고” 라는 대사가 방송법 제 100조 1항을 위반했다며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면 늘 그렇듯 ‘찬·반’그룹이 극명하게 갈려 난리가 났다.

‘친관적(親官的)’ 입장인 한나라당 어느 국회의원은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비분강개하며 그 용어에 대해 강경하게 성토했다.

 

 

“기가 막히고 가슴이 떨려서 (요즘 프로그램들을) 볼 수가 없었다. 야비하고 난잡하고 추잡한 말들이 난무한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주인공 여자아이가 초등학생으로 설정됐는데, 정신분열증에 걸린 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한나라당 최구식의원)”

 

 

국회의원이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데 비해 텔레비전 오락프로그램에 긴 머리 뒤로 묶고, 흰 수염 기르고 나와 웃기는 말을 자주했던 개그맨 스타일의 나이든 소설가는 ‘반정부 인사’가 다 되어 이렇게 성토하고 나섰다. 65세 된 ‘원로급’작가치고는 너무 호들갑스런 반응을 보인 것 같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어린이 출연자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빵꾸똥꾸’라는 말에 경고 조치를 내렸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러다 통금도 부활하는 것이 아닐까”(이외수)

 

가수 서태지는 크리스마스이브 날 자신의 홈피에서 팬들에게 보낸 카드에 “메리메리 빵꾸똥꾸”라고 써서 일부 연예담당 기자들로부터 ‘재치있다’는 어설픈 평도 들었다. 그게 무슨 재치 있는 표현인지 되묻고 싶을 정도다.

 

어떤 개그맨은 “이젠 ‘방귀대장 뿡뿡이’도 방송에서 못 볼까 걱정이다”라며 ‘관권개입’을 비판했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하지만 ‘뿡뿡이’는 그런대로 귀여운 구석이라도 느껴지지만 ‘빵꾸똥꾸’는 산뜻하거나 귀여운 느낌은 주지 못한다는 걸 그 개그맨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어이없는 관권’을 행사해 비난을 많이 받고 있는 방통위 심의위원들은 ‘학부모 시청자들이 애들 교육상 안 좋다는 민원을 하도 많이 해와’ 할 수없이 규제했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그런 핑계라도 둘러대야 할 만큼 ‘항의’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그 시트콤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 같은 네티즌들도 이쯤 되고 보니 ‘사태의 코믹성과 심각성’을 대충은 알 것 같다. ‘빵꾸똥꾸’는 방구와 똥꼬의 합성어로 별 뜻이 없는 의성어라는 친절한 인터넷의 ‘지식해설’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박장대소를 하게 된다.

 

예전에도 이런 류의 ‘방송을 통한 비속어 유행’이라는 현상은 죽 있어 왔다.

이젠 다 잊어 버려가고 있지만 우리 어릴 때도 지금은 고인이 된 서영춘이나 이기동 이런 코미디언들이 만든 ‘유행어’가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급속히 퍼졌고, 부모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런 말을 쓰지 못하도록 꾸지람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시절 ‘비속했던 유행어’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마 이번 ‘빵꾸똥꾸 사건’도 그 맥락이 비슷해 보인다. ‘사람 사는 세상’은 시공을 초월해 늘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져 왔기에 그런 ‘비속한 유행어’들은 어느 시대에곤 존재해왔고 사라져갔다.

 

그 옛날 백제의 ‘서동요’도 나라에선 못 부르게 단속했던 동요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을 비롯한 재빠른 미디어들로 인해 예전에 비해 유행하는 속도가 ‘광속(光速)적’으로 퍼져나가기에 ‘국가 단속’도 별 효과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유행어 확산 현상과 단속에 대해 찬·반 인사들의 ‘호들갑스런 반응’을 보니 오히려 코믹한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제아무리 기세등등한 ‘빵꾸똥꾸’라해도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잊혀지는 법이다. 그렇게 너도나도 나서서 찬반토론을 벌일 것까지도 없는 것이다. 어린이에게 미치는 악영향도 생각보단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냥 그러나보다 내버려두면 될 것을 ‘야단법석’을 피우니 그런 유행어의 속성상 더 기승을 벌이며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별것도 아닌 걸 건드려 ‘동티’를 만든 방통위의 ‘관권(官權)’도 우습지만 무슨 민주투사들이라고 ‘혼신’으로 저항의 어록을 남기려는 듯했던 소설가나 연예인들도 우습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방송이 도를 넘는 ‘위력’을 가진 미디어로서 행여 수준이하의 세계를 보여주며 국민의 정신건강에 해를 입힐 수도 있다는 점이다. ‘빵꾸똥꾸’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부분에 ‘방송의 위력’이 잘 못 행사되면 그 부작용은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다.

제발 방송제작관계자들이 ‘상식과 실력’을 겸비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