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슬픈 동방신기 VS 기쁜 수잔 보일과 ‘NHK 홍백 가합전’

스카이뷰2 2010. 1. 1. 17:19

 

        동방신기

 

                          수잔보일, 야자와 에이키치

                                                     

 

        슬픈 동방신기 VS 기쁜 수잔 보일과 ‘NHK 홍백 가합전’

 

하던 일을 대충 마치고 마루로 나와 텔레비전 화면에 눈길을 돌렸다. 매우 슬픈 표정의 청년들이 아주 애절한 멜로디의 일본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화면에 자막으로 나오는 일어 가사도 센티멘털한 소녀들이 좋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혼자 중얼거리다가 맨 왼쪽에 서서 열창하는 청년을 보고 그때서야 그들이 대한민국 톱클래스 아이돌그룹 ‘동방신기’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알아본 그 청년의 이름을 검색창에 알아보니 시아준수로 나왔다. 내친김에 일일이 그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을 ‘대조’해봤다.

 

 

동방신기의 열혈 팬들이 들으면 몹시 서운해 할 소리겠지만 2009년 ‘NHK홍백가합전’이라는 프로그램에 동방신기가 출연하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워낙 사람 얼굴을 기억 못하는 ‘재주’가 있는 나로선 그 청년들이 누군지 금세 기억해내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네가 이별의 말조차 하지 않고 나가버린 그 날부터 이 거리의 풍경이나 향기가 변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너의 전부가 되고 싶어서 주고 받았던 약속도 지켜지지 못한 채 추억으로 바뀌어가지~”

 

대충 이런 노랫말로 시작하는 ‘Stand by U ’라는 곡은 알고 보니 동방신기가 내놓은 28번째 싱글 앨범 수록곡이다. 어제 처음 텔레비전을 통해 그 노래를 들었지만 ‘쉰 세대’인 내 정서에도 ‘필’이 꽂히는 듯했다. 아주 느낌이 좋은 서정적인 이별의 노래 같았다.

 

일본 팬들에게도 굉장히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작년 한 해 동안 동방신기는 음반 판매고에서 쟁쟁한 현지 일본 아티스트들을 제치고 당당히 3위를 차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아라시와 에그자일에 이어 싱글과 음반, DVD 등의 총 매출액이 무려 903억원! ‘돈’이 ‘존재의 파워’를 알려 주는 자본주의 음반시장에서 동방신기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것도 같다.

 

그런 ‘자본주의적 위업’을 쌓고 일본 NHK연말최고행사라는 홍백가합전에 2년 연속 출연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들인데 저토록 슬픈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다. 물론 노래 자체도 슬픈 발라드 곡이었지만 아무래도 ‘노예계약 파문’이후 소송중이라 그들의 표정이 그처럼 어두웠던 것 같다. 오죽하면 일본 언론들도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않고 멤버들끼리 서로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의욕이 없어 보였다"는 보도를 했을까.

 

NHK의 연말 ‘간판 프로그램’인 이 ‘홍백전’은 60주년기념스페셜답게 무려 4시간 30분이나 진행한 와이드 프로였다. 일본 노래 팬은 아니지만 연말엔 가끔 이 ‘홍백전’을 보곤 했다.

우리나라 TV의 ‘연말 가요대제전’과는 달리 홍팀 백팀으로 나눠 진행하며 마지막에 ‘승자’ ‘패자’를 점수로 가르는 방식이다.

 

어제(12월 31일)는 60주년 스페셜이어선지 프로그램 중간에 ‘어린이 홍백전’까지 끼워넣었다. 예닐곱 살에서 열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 가수들’이 어린이 용 ‘엔카’를 부르는 모습은 깜찍하고 꽤 귀여웠다.

우리의 연말가요제전은 언젠가부터 주로 젊은 아이돌 그룹 위주로 진행되는 반면 NHK ‘홍백전’은 세대를 아우르는 ‘총출동 형식’이어서 그들이 ‘흘러 간 인기 유행가와 가수’를 어떻게 대접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지난해 여름인가 영국의 노래자랑에 출전해 어눌해 보이는 용모와는 달리 ‘청아한 노래 솜씨’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수전 보일도 ‘초대가수’로 나와서 그녀의 ‘18번’인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을 ‘영어’로 불렀다.

 

우리나이로 마흔 아홉이 된 그녀는 여전히 천진하면서도 ‘기쁜 표정’으로 솜씨 좋게 노래를 불렀다. ‘일본에 대한 첫인상이 어땠냐’는 사회자의 질문엔 그저 ‘와우’하며 소박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녀를 ‘초청가수’로 도쿄까지 불러낸 일본인들의 ‘센스’가 돋보였다.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왔다갔다 하면서 가끔씩 화면을 봐주는 ‘불량 시청자’였지만 그래도 ‘볼거리’는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슬픈 동방신기’도 보게 된 것이다. 오늘(1일) 보도에 따르면 동방신기는 곧 팀이 ‘해체’될 운명이라고 한다. 그들의 가창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제 프로그램 중 눈길을 끈 가수는 그 유명한 야자와 에이키치(矢澤永吉)였다. 현재 일본 최고 아이돌 그룹이라는 아라시의 노래가 끝난 뒤 남녀 MC가 너무 놀란 듯 호들갑을 떨면서 ‘VIP’의 전혀 예기치 못한 출연을 ‘생중계’라도 하듯 알리는 가운데 등장한 인물이 바로 야자와였다.

 

일본 록 가수의 ‘최고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야자와도 어느새 환갑을 갓지난 원숙한 나이로 접어들었지만 그의 ‘건들거리는 멋’과 노래솜씨는 여전했다.

일본 체신청에서 ‘야자와 기념우표’까지 발매한 왕년의 톱스타 야자와는 ‘영원한 맨발의 청춘’처럼 일본 젊은이들의 ‘우상’같은 존재라고 한다.

 

어제 아라시 멤버들도 ‘야자와 선배’앞에선 거의 ‘호랑이 앞의 고양이’처럼 90각도로 ‘경배’를 바치는 모습이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야자와가 “인생은 토너먼트가 아니다. 인생은 리그전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는 대목에서 그를 ‘존경’하고 ‘숭배’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것도 같다. 그 자신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그의 그런 발언은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팀 해체라는 ‘슬픈 운명’을 맞은 ‘슬픈 동방신기’에게 야자와 에이키치의 ‘인생은 리그전’이라는 어록을 알려주고 싶다. 무엇보다도 시골에서 무지렁이처럼 살아온 마흔아홉 살 ‘푼수 떼기 아줌마’ 수잔 보일이 노래하는 동안만큼은 ‘여왕처럼’ 기쁜 표정이 된다는 사실도 해체되는 동방신기 청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아직 앞날이 구만리 같은 동방신기 멤버들에게 그런 ‘슬픈 표정’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말해주고 싶다. ‘Boys be ambitious!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