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니합창단(뉴시스사진)
오바마의 ‘고향후배들’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오바마의 ‘고향후배들’인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했던 ‘송년의 시간’은 행복했다. 자칫 시답지 않은 감상에 빠지기 쉬운 연말 저녁, 머나먼 아프리카 케냐에서 날아온 30여명의 어린천사들의 힘차면서도 다정스러운 합창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으로 ‘허송세월’한 2009년의 대미를 그런대로 잘 마무리한 듯한 기분이었다.
이 ‘까만 천사들’의 공연 티켓을 직접 사러갈 정도로 열성을 부린 것은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텔레비전의 위력’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 밤, 집에서 우연히 보게 된 KBS1방송의 케냐 지라니 합창단에 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울컥해지는 ‘감동’을 선사했다.
세계 3대 슬럼가 중 하나라는 케냐 고로고초 마을에 사는 어린이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져가며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한국인 목사님이 그 어린이들을 거두어 ‘노래’를 가르쳐 ‘합창단’까지 만든 이야기였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최악의 빈민굴 아이들이었지만 ‘노래’는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한국인 목사님이 아니었다면 그 어린 것들은 그저 부모의 가난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꿈’없는 시시한 인생을 살아가야 했었다.
도레미파의 ‘음계’조차 모르던 그 아이들에게 국제콩쿠르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재창 음악감독은 그야말로 구세주같은 존재였다.
김 감독의 헌신적인 지도아래 아이들의 노래실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해 드디어 2006년 ‘지라니 합창단’이라는 어엿한 이름표를 달고 ‘데뷔’하게 된 것이다. 한국 공연도 올해로 세 번째라고 한다.
TV를 보고나서 인터넷 검색창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을 쳐보니 마침 연말에 우리 동네 극장에서 그 아이들의 공연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우리 동네 극장에 온다는데 ‘예의상’봐줘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감동적이었다. 특히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콧날이 시큰해질 정도로 충직하면서 아름다워 보였다.
그 아이들이 사는 다 쓰러져가는 집 슬라브 울타리에 ‘오바마’라고 쓴 스펠을 보면서 문득 ‘오바마의 고향후배들’인 그 아이들에게 케냐인 아버지를 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오바마는 그 아이들의 힘든 삶을 지탱해주는 첫 번째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앞이 보이지 않는 힘든 삶속에서 등대처럼 빛나는 ‘희망의 근거’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렇게 해서 ‘후원금’을 내는 심정으로 직접 공연티켓을 끊었고 구경하러 간 것이다. 속된 얘기지만 ‘어린이 합창단’공연을 ‘내 돈’내고 구경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감동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조명이 꺼진 무대로 촛불을 들고 한명씩 입장한 아이들의 합창 ‘화음’을 듣는 순간 울컥해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동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 아이들의 때 묻지 않은 얼굴 표정과 생기 넘치는 힘차면서도 아름다운 목소리의 합창은 지난 한해 힘들었던 모든 시간들을 따스하게 위로해주는 듯했다.
그들을 ‘후원하러 간’것이 아니고 내가 그 아이들로부터 ‘후원’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추운 겨울 꽁꽁 언 가슴 밑바닥을 녹이는 그런 감동의 소리에 아마 적잖은 관객들도 뭉클했을 것 같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이나 ‘맘마미아’같이 귀에 익은 영화 음악을 비롯해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고향의 봄’ ‘군밤 타령’ ‘도라지타령’등을 우리 말로 부르는 모습도 귀여웠다.
케냐 전통 복장 차림으로 나와 부른 구슬픈 멜로디의 아프리카 민요에선 ‘가난해서 슬픈 아프리카의 정서’를 공감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든 ‘적빈(赤貧)’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가난을 딛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저 ‘검은 어린천사’의 모습에서 아프리카의 희망을 어렴풋이나마 예감할 수 있었다.
케냐 지라니 어린이합창단을 보면서 우리 어렸을 적 ‘선명회’라는 기독교어린이 합창단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던 일들이 떠오른다. 지금 젊은 신세대들이야 믿어지지 않는 소리겠지만 60년대~70년대 대한민국의 ‘경제수준’은 지금 저 아프리카보다 더 낮았었다. 60년대 우리 국민소득이 82달러였을 때 가나를 비롯한 아프리카 몇몇 나라는 국민소득이 200달러에 가까웠었다.
지금이야 웬만한 중산층 가정이면 해외로 가족여행 가는 건 아무 것도 아니지만 60,70년대 당시엔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러니 ‘선명회’합창단에 들어가면 세계 각국을 ‘여행’할 수 있다는 ‘복음’은 6,70년대 당시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겐 마치 지금 저 지라니 합창단 어린이들과 같은 수준의 꿈같은 이야기였다.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은 그동안 뉴욕, 시카고 등 미국 공연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를 돌면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학 합창단 지도교수도 지라니 합창단 공연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오바마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에서도 조만간 ‘초청공연’을 갖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잖아도 지라니 어린이 하나하나의 얼굴 모습에서 사진으로 본 오바마의 어린시절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케냐인 아버지의 DNA’ 덕분이겠지. 만약 오바마가 지라니 합창단의 존재를 ‘보고’받는다면 아무리 바빠도 기꺼이 백악관 뜰로 그 ‘고향후배’아이들을 불러들일 것 같다.
지금은 비록 형편이 어렵다지만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한 ‘저력의 케냐’이고 보면 지라니 합창단 출신 어린이들이 성장한 십 수 년 이후엔 어쩌면 케냐도 ‘대한민국의 기적’과 같은 경제기적을 세계에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난한 케냐 어린이들이 ‘합창’으로 ‘삶의 희망’을 일궈냈다는 스토리는 어떤 해피엔딩의 영화보다 더 재밌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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