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대한민국의 저력을 느낀다
매주 금요일 심야에 별 일없으면 K2TV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즐겨 본다.
어제 ‘혹한기 스탠딩 스페셜’이라는 부제로 열린 그 프로를 끝날 때까지 보고나니 새벽 2시가 가까워졌다.
그야말로 밤이 깊었는데 무슨 청춘이라고 하얀 가운을 입은 ‘수질검사요원’ 박지선까지 등장하는 젊은이들의 심야프로를 즐겁게 보는지 내 자신이 우습기도 하다.
하지만 그 프로를 보면서 요즘 ‘아이들’의 정서적 흐름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그 청춘들의 고민이나 열정들에 ‘동참’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 내가 ‘젊어지는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착각마저 들게 해주기에 ‘중독성 높은’ 그 프로를 매주 보게 되나보다.
직업이 뭐냐고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재수생’이라고 하면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환한’표정의 열아홉 총각이나 하는 일이 뭐냐고 묻자 ‘공부’라고 말하는 앳된 아가씨의 표정에서도 ‘세계 경제대국 11위권’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느껴지는 것 같다.
‘청년 백수’가 넘쳐나는 혹한의 시절이라지만 그래도 ‘무서울 것 없는 저 청춘’들이 ‘스탠딩 콘서트’에 열광하는 그런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이다. 한결 같이 여유 있고 순한 표정들이다. 그러면서도 당당해 보인다. 꿀릴게 하나 없는 듯해 보인다.
그들의 부모세대인 지금 40,50대들의 ‘청춘시절’엔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혹한기’여서 거의 대부분의 청년들은 춥게 지냈었다. 지금 저렇게 ‘혹한기 스탠딩 스페셜’이라는 우리 때엔 상상도 못했던 콘서트에 수 천 명이 참가해 몇 시간을 내내 선 채로 박수치고 환호하며 즐길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지금 20대들은 축복받은 세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들의 ‘천만가지 고민’이야 말할 수 없이 괴로운 것이겠지만 어느 시절이나 고민 없는 청춘은 없었다. 그렇기에 일단 저렇게 ‘좋은 시설’과 ‘음악성 높은 가수’들의 공연을 ‘돈 안내고 구경’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대한민국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봐야한다.
특히 소프트한 분위기의 유희열이라는 MC의 재치 있는 진행과 그에 호응하는 젊은 방청객들의 환호를 보면 어느 새 구세대인 나도 프레시맨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게다가 등장하는 가수들도 한결같이 ‘음악성’좋은 ‘선수’들인데다가 화려한 무대매너가 다른 가요 프로그램과는 ‘격’이 다른 것 같다.
어젠 월드컵 축구평가전 보고 나서 채널을 돌렸더니 한창 무대가 달궈져 있었다. ‘한 번도 가기 싫다’는 군대를 ‘제 잘못’으로 두 번씩이나 다녀온 싸이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무대 위를 쿵쾅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올해로 벌써 데뷔 10년차라고 한다. 도저히 ‘연예인스럽지 않은’ 용모 덕에 싸이가 처음 TV에 나왔을 때는 ‘조폭이 키우는 아이’라는 소문마저 났었다.
그 이후 알고 보니 싸이는 부모가 모두 옛날 명문고인 K고, K여고 출신이고 싸이의 결혼식엔 지금 국무총리를 맡고 있는 정운찬씨가 주례를 섰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런 가정적 영향 탓인지 언젠가 싸이는 자신의 자녀들은 ‘판,검사를 시키고 싶다’는 ‘애절한 소원’을 말한 적도 있었지만 무대 위에서 저렇게 열광하는 팬들의 환호를 받는 동안엔 그런 생각은 잠시 잊었을 것도 같다.
어쨌거나 싸이는 ‘얼굴은 별로지만 머리는 좋은 가수’로 시대에 맞는 노랫말로 히트 친 곡이 몇 개 있는 비교적 ‘존재감’있는 가수여선지 관중들의 호응이 대단하다.
싸이가 열창하는 동안 슬며시 등장한 ‘기부천사’ 김장훈은 44세라는 나이가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반바지 패션에 말총머리로 묶은 헤어스타일로 ‘청춘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끌어냈다.
언젠가 인터뷰 기사에서 김장훈이 자기는 아무리 늙어도 ‘가요무대’같은 데는 절대로 안 나갈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게 떠올랐다. ‘나이 앞에 장사 없다’지만 김장훈은 ‘꺾일지언정 휘어지진 않겠다’ 뭐 이런 심정으로 ‘파이널’까지 ‘영원한 오빠’로 남겠다는 그런 마인드의 소유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결혼도 안 한 채 월셋집에 살면서도 수십 억 원을 불우이웃 돕기에 쾌척하거나,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 유수의 신문에 ‘독도는 대한민국 땅’이라는 광고를 수 억 원 들여서 게재해, ‘대한남아의 쾌거’를 보여주는 의협심 넘치는 ‘오빠’같다.
열 살 차이 나는 싸이와 김장훈 무대에 이어 쿨의 이재훈이라는 가수의 열창이 있었고, 나중엔 쿨 멤버 전원이 뛰어나와 함께 열창하는 무대를 보여줘 3D TV도 아니지만 TV화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에 나온 출연가수 중 기억에 남는 가수로는 돌잡이 아들까지 데리고 나와 ‘꼬맹이천재 힙합 가수’의 출현을 보여준 부부 가수 드렁큰 타이거와 윤미래가 생각난다. 부부가 ‘최첨단 노래’를 열창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제 겨우 돌을 넘은 아기가 마이크를 갖다 대니 옹알이수준은 벗어난 힙합을 따라하는데 배꼽 잡았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모친이 "우리 딸은 가장노릇을 하는 효녀"라며 딸 자랑을 해 뭉클하게 했던 ‘걸 그룹’ 씨야, 그리고 요즘 한창 ‘여심을 흔들고 있다는’ 바비 킴, 스위스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루시드 폴 등도 기억에 남는다. 바비 킴의 애절한 허스키 보이스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노래 같다.
새벽 1시 넘어 까지 하는 ‘완전 심야방송’을 누가 보나 싶지만 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따라 붙는 광고가 MBC 9시 뉴스데스크보다 3배쯤 많은 것만 봐도 시청률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심야의 ‘청춘 음악’ 프로그램에서 ‘원기’를 수혈 받고 젊어지는 듯한 그 기분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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