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퍼드 대학 풍경(스탠퍼드 홈피에서)
기성세대가 본 타블로, 타진요, 타진알 현상
지난 금요일 밤, 우리집 마루에서 TV리무콘을 이리저리 누르다가 우연히 'MBC 스페샬'이라는 프로를 봤다. 대체로 금요일 밤엔 볼만한 프로가 없어서 그냥 채널을 고정시켰다. 타블로라는 유명한 청년가수가 미국 스탠포드 대학을 찾아가 자신이 스탠퍼드대 출신이라는 걸 입증한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은 자고나면 '신인 가수'들이 쏟아져 나와 나같은 기성세대는 신세대 가수들은 누가 누군지 거의 모르는 형편이다.하지만 쉰세대여선지 연예인들이 '명문대'출신이라면 대견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스탠퍼드 대학의 학사, 석사 과정을 3년반에 졸업했다는 '타블로'라는 가수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 가수의 '히트 곡'은 무엇인지 전혀 모르지만 '스탠퍼드 대학 영문학 석사'출신이 조국에 와서 가수로 뛰고 있다는 소리에 한국 연예계도 학력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학벌이 연예인의 재능을 보증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연예인들에겐 명문 출신이라는 '보호막'이 든든한 백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질적으론 예전에 비해 많이 풍요로워졌지만 '고용없는 성장'탓에 청년실업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세상에 '연예계 진출', '스타 탄생''흥행대박' 뭐 이런 류의 '환상'이 젊은이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다. 젊은이들의 그런 심리를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환영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요새는 심지어 초등학생 둘 중 한명은 '연예인이 꿈'이라는 조사까지 나왔다. 연예인을 백안시 하는 건 아니지만 어린 사람들이 '롤 모델'을 '신기루'같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따라하고 싶다는 건 건강한 사회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그 TV프로그램을 보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면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스러웠다.
요점은 타블로라는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청년가수가 '학력위조'로 연예계에서 잘 나가고 있는데 그런 '불의'를 좌시할 수 없어서 '타진요'라는 모임이 인터넷에서 결성되었고, 회원수는 13만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타진요'가 뭔가 했더니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요샌 워낙 축약단어가 활개치는 세상이어서 뭐 그러나 보다 하지만 왠지 좀 거북한 뉘앙스다. 더구나 회원이 13만이 넘는다니!
타블로라는 가수의 학력에 대해 관심을 쏟는 젊은이들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연예인들의 학력위조 사건은 3년전 '신정아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예일대 석사출신임을 내세워 신정아라는 여성이 한국 미술계를 휘젓고 다니다가 거짓이 폭로되었고,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장관이 신정아의 애인이라는 '불륜 드라마'같은 스토리가 밝혀지면서 장안의 폭발적 화제를 모았었다. 그 과정에서 이화여대 근처도 가지 않았던 윤석화를 비롯해 장미희 정덕희 그리고 유명한 남성 연예인들 몇몇이 망신을 당했다.
그때 타블로는 '리스트'에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터넷에 들어가 '진상'을 살펴보니 2008년 한 네티즌이 타블로 학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단은 벌어진 것 같다. 급기야는 '타진요'라는 카페까지 결성된 것이다.
이 '앤티 타블로들'로 구성된 '타진요'에 대항하기 위해 '타진알'이라는 모임도 생겼다. '타블로의 진실을 알려드립니다'의 약자라고 한다. 요즘 '젊은 문화'의 한 현상은 이 '약자(略字) 문화'같다.
근 2년 가까이 타블로는 '타진요'의 '맹공격'을 받았고, 얼마전에는 '맞고소'를 하면서 공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그런 와중에 MBC가 타블로와 함께 '모교'라는 스탠퍼드에 마이크를 들고 간 것이다. 방송국측은 '타진요' 리더에게 동행을 요구했으나 '석연찮은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한다. 처음엔 그 타진요 멤버가 스탠퍼드에 같이 가자는 제의를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라는 또 다른 앤티 타블로 그룹이 방송국이 타블로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방송 보류 가처분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타블로 스페셜 프로그램은
화제를 모으면서 방영된 것이다. 시청률도 동시간대 전체 1위를 차지해 '타블로 사태' 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상한 건 타블로가 학력위조를 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타진요' 주요멤버들이 방송에 나오긴 했지만 모두 실명이 아닌 넷 상의 닉네임을 썼고, 얼굴은 모조리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가면을 쓴 것처럼. 왜일까?
개인적으로는 타블로나 타진요 멤버들이나 모두 일면식도 없는데다가 누가 옳고 그른지 '사건의 진실'은 전혀 모른다.
단지 타블로는 그 실체가 천하에 공개되었지만 그를 공격하는 '타진요'는 '가면'을 쓴 것처럼 얼굴 가리고 목소리 변조해가면서 방송에 나와 타블로를 공격한다는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페어 게임'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건 초등생 수준에서도 지적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왜 방송사측에선 '타진요'의 '가면 출연'을 허락했는지 모르겠다. 굳이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공정사회 구현'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하고 싶다. 맞는 사람은 허허벌판에 서있는데 때리는 사람은 숨어서 공격한다? 공정을 갖다붙이기 전에 이런 상황을 지상파 방송에서 버젓이 허용한다는 자체가 문제라고 본다.
스탠퍼드 측 관계자들은 '타블로가 확실히 우리 졸업생이다'라는 증언을 했고,"우리 졸업생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학교측이 타블로가 졸업생이라고 확인해주었으면 그걸로 '진실 게임'은 끝나야 하는 게 순리다.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런데도 '가면 출연'한 '타진요'들은 그래도 의구심이 든다면서 '끝까지 밝혀낼 것'이라고 한다.
아마 방송을 본 웬만한 시청자들은 타블로의 '결백'에 흔쾌히 동의할 것 같다. 그만큼 내가 보기엔 타블로의 말이나 스탠퍼드 관계자들 그리고 주변의 선후배의 말이 일치된다는 점에서 더 이상 '의문'을 표하는 것은 온당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자신들의 신분이나 모습은 베일로 가린 채 무방비 상태의 한 사람을 집단적으로 공격하는 건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 '타블로 사태'를 보면서 지난해인가 방송국 토크 프로에서 일어났던 '루저녀'여대생 사건이나 더 거슬러 올라가서 유명 연예인들의 '악플'에 의한 자살사건들이 생각났다. 루저녀도 말 한번 잘못했다가 결국은 학교를 휴학해야할 정도로 네티즌들의 심한 공격을 받았다. 이렇게 인터넷의 눈부신 속도전과 익명성, 파죽지세로 퍼져나가는 광풍같은 전파력은 순식간에 한 인간을 나락으로 밀어뜨린다. 참 큰일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첨단 인터넷 국가'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서비스가 좋은 나라는 없다고 한다. 모든 현상엔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인터넷 발전의 이면엔 관리하기 힘든 '광기서린' 집단적 공격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의 한 언론인은 '한국 네티즌 문화형태는 잘 알 수 없지만 대단한 살상능력을 갖춘 괴물같다'는 글을 썼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격인 스탠퍼드 대학 관계자들도 '타진요'의 존재를 소개하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무튼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무차별적으로 터져나오는 '인민재판'성격의 '인터넷 단죄행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 '타블로 사태'에 대해 젊은층에 인기가 높다는 소설가 이외수씨도 타블로를 적극 두둔하면서 네티즌들의 '무차별적 공격'을 힐난했다. 기성세대들의 이런 식의 인터넷 동참이 확산돼 청소년층의 왜곡된 인터넷 문화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아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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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는 10월 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내가 타블로를 두둔했을 때 내 홈페이지에 와서 그토록 난리 법석을 떨었던 무리들, 조용하시네요. 사과 같은 건 안 하시겠지요"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이어 "오늘(1일) 타블로에게서 온 DM(Direct Messages, 트위터 팔로워들이 주고받을 수 있는 쪽지 기능)이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선생님, 진실을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10월 2일 오전 "가을이 되면 모든 나뭇잎에 단풍이 들어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잣나무는 가을이 되어도 단풍이 들지 않기 때문에 나무가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기도 합니다. 물론 자기는 단풍이 드는 나무입니다. 만약 당신이 잔나무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라는 글을 남겼다.
이 말은 타블로가 지난 1일 'MBC 스페셜=타블로 스탠퍼드를 가다'에서 한 측근에게 한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날 방송에서 타블로의 측근은 "타블로가 정말 힘들어 하고 있고 사람들앞에 나서는 것도 두려워하고 있다"며 "(타블로가)컵이 있는데 이 컵을 컵이 맞다고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당황스럽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편 이외수는 지난 7월 타블로의 학력 위조 논란이 불거지자 "한 때 문희준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을 하던 악플러들, 문희준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지금은 타블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악플러들, 친절한 금자씨가 전합니다. 찌질이들아, 너나 잘하세요"라는 등의 글을 올려 타블로를 적극 두둔한 바 있다.(스포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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