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마음의 힘, 블로그와 '디카 직찍' 오에 겐자부로 사진

스카이뷰2 2010. 12. 22. 00:16

 

 

 

                            

          사인 해주 기 위해 필통에서 필기구를 꺼내는 오에 겐자부로씨.(디카로 직접 찍어 블로그에 처음 올린 사진.)
 
                                    

               

       마음의 힘, 블로그와  '디카 직찍' 오에 겐자부로 사진   

 

저물어가는 한 해를 앞두고 이  한 장의 사진이 내 마음에 정체모를 아련한 그리움을 선사한다. 조금은 센티멘털한 연말증후군이라고나 할까.  몇 해전 서울에 온  오에 겐자부로 씨가 김우창 교수와 대담을 마치고 사인을 원하는 청중들을 위해 녹두색 필통을 열고 필기구를 꺼내는 '순간'이 나의 디카 렌즈 속으로 들어왔다.

 

마음씨 좋은 호호백발 할아버지 같은 이 노(老) 작가를 만나기 위해 광화문 교보문고 강연회장에 달려가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컴퓨터 사진 보관함에서 우연히 찾아낸 이 사진은 블로그를 시작한 지 얼마 안된 2006년 5월 처음으로 직접 디카로 찍어서 올린 것이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때까지 '컴맹수준'이어서(물론 지금도 그 수준^^*)사진을 찍어서 올린다는 '작업'은 너무 어렵고 힘들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최초의 '작품'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명작가 사진으로 장식하고서는 마치 대단한 '업적'이라도 해낸 듯 혼자 뿌듯해 했다. 겨우 4년 전 일인데도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블로그라는 새로운 '장르'에 입문한 이후 나는 블로그 세상에 엄청 경이로움을 느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새는 줄 모른다고 그 때 블로그는 거의 내 일상의 전부를 차지하다시피 했다. 

 

신문에서 일본인 작가 오에 겐자부로씨가 방한해 고려대 김우창 명예교수와 대담을 한다는 알림기사를 본 순간 '쾌재'를 불렀다. 블로그에 매달려 매일매일을 보내던 시절이어서 '신선한 소재'가 눈에 띠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그래서 디카까지 들고 교보 강연회장으로 달려갔었다. 노작가와 노교수의 해박한 대담은 모처럼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듯했다. 게다가 난생처음 '블로그용 사진'을 직접 찍는 그 기분 또한 꽤 괜찮았다. 그 시절의 '열정'이 떠올라 오에 겐자부로씨의 사진을 올린 것이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은 '나이'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 가버렸는지도 모르게 나의 젊은 날은 날아갔고, 어느새 따분한 기성세대 대열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내가 그 짝이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세월의 흔적이 내 머리카락에, 내 얼굴에 사정없이 내려앉았지만, 그냥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이 여려지는 것 같다. 아무 것도 아닌듯한 말이나 현상, 사람들의 여러 가지 표정이나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강아지의 눈망울 등 일상에서 수시로 접하는 하찮다면 하찮은 모든 것들을 보거나 들으면서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뭉클한 감정이 드는 지 모르겠다. 누선이 약해져선지  조금만 슬픈 애기를 들으면 눈물이  저절로 난다. 뭐랄까, 생명과 결부된 ‘진정성’을 접하면 가슴이 시려온다고나 할까. 그만큼 ‘생명’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그 대상이 하찮은 것일수록 더 애틋함이 더했다.

 

요즘처럼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계절엔 왠지 조바심이 나고 안절부절 못해지는 감정의 기복에 곤혹스럽다. 나만 그러나 했더니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같은 이야기를 한다.  ‘뭐 인생이 그런 것이지’라고 초연한 척하려 해도 그 것도 잘 되지 않는다. 요새 유행어로 ‘2% 부족한 그 무엇’이 가슴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그날이 그날처럼’ 큰 굴곡 없이 살아온 것만으로도 크게 감사해야 하는데도 마음 한 구석은 비어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무얼 해도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고나 할까? 어쩌면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땐 이 지상에 나 혼자 남은 듯한 기분마저 든다. 아주 고약한 감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그것’과 조우했다. 요새 인터넷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블로그’와의 만남이 나를 거듭나게 해 준 것이다.

 

심드렁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던 어느 날 우연히 ‘블로그’와 만났다. 아주 다채롭고 화려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강호제현’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의 묘기로 ‘일합’을 겨루는 볼거리 넘치는 ‘도장’이었다. ‘요리에서 정치까지’ 없는 게 없었다.  

 

이렇게 블로그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 날 불현듯 나도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부터 일요일만 빼고 매일 블로그에 한 꼭지씩 글을 써서 올렸다. ‘블로그’라는 존재가 내 인생을 바꾸어놓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하고 싶은 ‘말’들을 문자로 형상화해서 세상에 외칠 수 있다는 건 참 경이로운 일이었다. 마치 가수가 노래를 부르거나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과 비슷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과의 ‘소통’을 한다는 건 일종의 살아있는 인간의 ‘본능’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블로그’에 뜻을 세우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일단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관심을 갖고 부지런히 구경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 기가 질렸다. 그들은 너무도 화려했고 ‘블로그의 달인’들은 세상에 넘쳐났다. 뒤늦게 뛰어든 내가 한없이 작게 여겨졌다. 이제까지 내세울 것은 없지만 별로 꿀릴 것도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해온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우리같이 글줄이나 간신히 올릴 줄 아는 ‘올드 세대’들에겐 그야말로 ‘그림의 떡’같아서 좌절감이 앞섰다. 그러다 문득 ‘내용물’로 승부를 보자는 ‘생뚱맞은(?) 야심’이 들었고, 그 순간부터 나는 ‘블로그 매니아’가 되고 말았다. 요즘 신세대들과 경쟁할 자신은 애초부터 없었다. 단지 웬만큼 인생을 살아내 온 ‘남들이 다 가진 평범한 저력’, 그러니까 ‘나이가 주는 힘’으로 한번 해 보자는 엉뚱한 배짱까지 생겨났다.

 

거의 ‘블로그 중독 증세’까지 나타났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블로그 걱정이 들어 얼른 컴퓨터 앞으로 복귀했다. 세상에 지나다니는 말 하나하나에서도 ‘블로그 감’을 사냥하느라 늘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늦바람이 더 무섭다’고 내가 꼭 그런 꼴이었다. 그야말로 자나 깨나  블로그 생각만했다. 사람이 변변치 못하다 보니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하루에 한 건씩 ‘껀수’를 올린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엔 한 20여 명 안팎의 방문객수를 기록했다. 그나마도 신기했다. 그러다 어느 날 최초의 ‘정기구독자’가 생겼을 때 그 기쁨이란!...

방문객이 점점 늘어났다. 어느 날은 하루에 29만 클릭을 기록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그후에도 종종 하루 10만 클릭을 기록하곤 했다. 

정기구독자도 늘어났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은 물론이고 도쿄, 호주, 태국, 스웨덴 등지에 사시는 교민들까지 ‘정기구독자’가 되었을 땐 정말로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었다.

 

블로그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마음의 힘’이 생겼다. 두려울 게 별로 없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이 탓에 여러 가지로 움츠러들기만 했던 심드렁해진 일상에 ‘애인 같은 블로그’가 나타나면서 ‘운명’이 바뀐 기분이 들었다.

그야말로 블로그, 너는 내 운명’의 경지에 이르렀다. 블로그와 함께 울고 웃다보니 그렇지 않아도 쏜살같이 날아가는 시간이 전광석화처럼 지나가버렸다.

 

블로그 테크닉이 전혀 없는 컴맹푼수라 그냥 우직하게 ‘오리지날 에세이’만을 써서 올렸다. 영화나 소설 그리고 시사에 이르기까지 그날그날 내가 쓰고 싶은 이슈를 정해서 ‘1인 편집회의’를 거쳐 바로 글쓰기에 돌입한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글쓰기에 몰입하다보면 세상 시름은 다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하다보니 현재  550개가 넘는 ‘오리지날 에세이, 칼럼’들이 나의 블로그에 쌓이게 되었다. 방문객수도 누적합계 350만 클릭이 넘었다. 어떤 보석이 있어 블로그만큼의 기쁨을 주겠는가 싶었다.  이렇게 ‘블로그’는 내 ‘생활의 중심’을 차지한 채 나에게 마르지 않는 ‘에너지의 근원’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2%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주는 존재라고나 할까.

 

그동안 쓴 블로그 중에는 가슴 뭉클한 사연도 꽤 있다. 재작년인가 5월의 어느 날 비오는 종로거리에서 ‘생업’이 걸린 문제로 슬픈 시위를 하던 ‘시각장애인들의 시위현장’을 목격하고 ‘비 내리는 서울, 슬픈 시위대’라는 글을 올렸었다.  

다음 날 뜻밖에도 그 시위에 참가했던 ‘시각장애인’이 ‘고맙다’는 답글을 보내주셨다. 누구의 도움으로 이 ‘답글’을 쓴다면서. 그 걸 보는 순간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힘없는 소외계층들을 위해 미력이나마 도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 진실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월드컵 국가 대표팀의 ‘푸른 말’같은 선수들을 호텔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뒤 그 길로 집에 오자마자 글을 올린 것을 비롯해, 일본의 노벨 문학상 작가 오에겐자부로 씨의 강연장에 ‘디카’를 들고 가서 그의 사진을 찍고, 친필 사인을 받아 우리 블로그에 ‘영상’을 처음 선 보인 일! (무척 힘들게 올렸다. 워낙 컴맹수준이라서.^&^)

 

아직 여전히 추운 입춘 날 교보 빌딩 앞에서 스크린 쿼터 반대 ‘1인 시위’를 하던 안성기와 장동건을 만났던 일, 인기 록밴드 그룹이라는 ‘크라잉 넛’의 콘서트에 난생 처음 갔다 온 뒤 그 젊음의 열기를 블로그에 고스란히 올렸던 것 등은 모두 블로그 덕분에 맛 볼 수 있었던 생명력 충만한 체험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타법으로 글을 쓰다보니 손가락에 이상이 생겨 잠시 쉬기도 했다.

 

무엇보다 문학분야의 책만 주로 만든다는 '문학세계사'라는 권위있는 출판사에서 내가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편집해'스카이뷰의 블로그 속 세상읽기'라는 책을 내준 건 가장 큰 '망외소득'이었다. 게다가 블로거로서는 처음으로 TV에 단독 출연해 '블로그 이야기'를 40분이나 강연했다. 낫살이나 먹은 사람이 좀 부끄런  얘기지만 다음에서 '슈퍼 스타 블로그'로도 선정됐고,우수 블로그로도 뽑혔다.  

 

블로그로 인해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있었다.   그들과의 만남은 새로운 세계를 구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음 둘 곳 없어 삭막해진 인생살이가 힘겹다고 느끼시는 여러분들’에게 새해에는 ‘블로그 질’을 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 역시 새해에도 ‘블로그 씨와의 데이트’를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영원한 애인’같은 블로그가 있어 마음 든든하다. 언제까지나 나를 지켜줄 마음의 친구!

블로그! 니가 있어 참 좋다.(성균관스캔들에서 이선준도령이 김윤식에게  한 "김윤식 니가 있어 참 좋다, 패러디^&^)

 

*PS: 이 글은 제가 처음 블로그에 입문한 2006년에 쓴 것과 최근 저의 블로그 활동을 연말 정산(?) 형식으로 다시 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