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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보다보다 이런 축구관전은 처음이다

스카이뷰2 2011. 1. 26. 16:17

 

                           그라운드의 독재자 주심의 이 판결은 오판임이 드러났다. 이 페널티로 우리는 결정적으로 진거다(다음 자료사진)

          

    한일전, 보다보다 이런 축구관전은 처음이다

 

 

오늘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잔 탓에 다른 날보다 늦은 오전 11시쯤 인터넷을 켰다. Daum 뉴스 란 왼쪽 상단에 ‘승부차기에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야말로 쿵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곧 이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니, 그러니까 어제 우리 대표 팀이 한 점을 더 넣었다는 얘긴데...

 

스포츠 뉴스를 클릭했더니 세상에! 연장전 막판 심판의 경기종료 휘슬이 울리기 바로 직전 우리 팀 황재원선수가 ‘기적’의 한 골을 뽑아내 2대 1로 뒤져 거의 지는 경기로 끝날 참에 2대2 동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감격의 순간을 우리가족은 ‘외면’했었다. 연장 후반 10분까지 보다가 울화가 치밀어 “이러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TV를 꺼버렸던 것이다. 자칭 축구마니아인 우리집에서 이렇게 ‘관전 포기’를 결행(?)한 것은 보다보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런 얘기하면 좀 미신스럽지만, 경기 시작 직전 대기실에서 박지성과 일본팀 주장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는데 왠지 박지성이 힘이 빠진 표정이었다. 이란 전 때 얼굴을 축구화로 밟히는 ‘사고’를 당하고도 이 악물고 뛰었던 우리팀 기둥 박지성이 저렇게 기운이 없어보이는 걸 보고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지워버렸다. 원래 박지성은 ‘포커페이슨데 뭐’.하지만 일본팀 주장 선수는 왜 그렇게 쌩쌩하게 보이는지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아마 ‘한일전’ 콤플렉스 탓일 것이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한국 일본의 축구팬들이라면 아니 축구를 별로로 여기는 사람들이라도 일단 ‘한일전, 일한전’이라면 일단 이겨야 하는 걸로 무의식 속에서부터 ‘승리본능’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론 경기 시작 전 양국 국가가 울리는 순간 도열해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훑어보며 속으로 ‘승부’를 예측하는 버릇이 있어서 언제나 이 국가연주 순간을 아주 각별한 관심을 갖고 보곤 한다.

 

어제 우리 팀은 왜들 그렇게 기운이 없고 조금은 슬퍼보이는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내가 "어 우리 애들 표정이 안 좋아요"라고 말했을까.

게다가 일본선수들은 험상궂은 인상의 골키퍼부터 주장선수나 혼다 선수 그밖에 이름 모르는 선수들이 무슨 조폭 같기도 하고,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그 말썽 많은 ‘기미가요’를 웅얼웅얼 부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짐이 불길했다.

 

결국 나의 이런 ‘불길함의 감지’는 게임 초반부터 들어맞는 것 같았다. 작년에 월드컵 평가전 때 도쿄에서 보여줬던 우리 팀의 강건함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작년 그날 박지성이 선취골을 넣고 스타디움의 일본관중들 앞을 묘한 표정으로 뛰어가던 그 자랑스러웠던 순간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아무튼 우리가 비실대니까 상대적으로 일본애들은 펄펄 날았다. 게임이야 항상 상대적이니까 당연한 거지만 화가 났다.

 

그래도 박지성이 영리하게 유도해낸 패널티킥을 기성용이 멋지게 성공시켰을 땐 하이파이브까지 하며 우리집 마루는 마치 응원석처럼 변했다. 하지만 꽃미남 기성용이 골세레모니로 보여준 동작을 보며 거부감이 얼핏 들었다. 아직 어린 선수니까 ‘반일 감정’을 그런 식으로 표출한 것이리라 이해는 해줬지만 영 매너 면에선 ‘아니올시다’ 였다.

 

어쨌건 표면적으로 우리는 1대0으로 이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펄펄 날아다니는 일본선수들을 보며 아니 쟤네들이 언제 저렇게 잘하게 됐지하면서 영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페널티로 득점했지만 일본은 재빠른 솜씨로 우리 골망을 흔들어 버리는데 아연실색했다.

특히 혼다의 페널티 슛을 우리 키퍼 정성룡이 막아내는 듯하다가 결국 일본 선수에게 골을 허용하면서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분명 페널티가 아니건만 그라운드의 독재자인 주심은 우리랑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일본에게 페널티의 기회를 주냐말이다. 일본에선 그 주심의 오판을 인정하면서도 '신의 판정'이라고 해 우리를 끝까지 약올렸다.

그 다음은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우리보다 일본이 더 잘 해보이는 것을 영 참아내기 어려웠다.

 

우리가 못했다기보다 일본 애들이 더 잘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가 몹시 힘들었다. 결국 연장전 전반과 후반 10분까지 보다가 아무래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TV를 꺼버린 것이다. 실제로 경기를 보는 동안 가슴에서 둥둥 고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거의 호흡하는데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 아마 이래서 축구 경기를 보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켰다는 뉴스가 나오나보다.

 

TV를 끄고 나서도 분이 안 풀렸다. 내 좁은 소견으론 대한민국 팀이 이번 아시안 컵에 출전하면서 너무 ‘건방’을 떨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야심한 시각, 우리 집 마루는 대한민국 축구대표 팀 성토장으로 변했다. “무슨 왕의 귀환이니 뭐니 까부냐 말이야!” “일본애들이 무섭긴 무서워, 어느새 저렇게 실력을 키웠냐 말이지” 이런 성토를 하느라 새벽 3시까지 잠을 못 잔 것이다.

 

그런데! 늦은 아침 인터넷 뉴스에 나오는 ‘승부차기’소식을 봤으니... 잠시 동안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에고 불쌍한 우리 국대팀! 이러면서... 하지만 어제 우리 팀의 이청용을 비롯한 ‘재간둥이’들은 왜 그렇게 맥을 못췄을까. 아니, 어떻게 승부차기에서 연속 세 골을 실축하냐 말이다! 이건 정말 용서가 안 된다. 승부차기란 원래 기싸움인데 왜 경험미숙의 신참들을 앞세웠냐 말이다.

 

그러고 보니 조광래 감독이 한일전을 앞두고 큰 소리친 것까지 괘씸(?)했다. 조감독은 “선수시절부터 지금까지 일본을 두려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배신감은 더 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우리 대표팀이 그렇게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무승부’를 만들어 낸 그 ‘투혼’만큼은 높이 사고 싶다.이제 노장티가 역력한 이영표의 듬직한 경기력에서 게임 종료순간에 벼락같은 동점골을 뽑아낸 황재원선수까지 모두모두 열심히 했다. 

 

정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왜 우리는 일본한테만은 이렇게 지면 마음이 약해지고 슬퍼지는 걸까.  

그냥 단순한 축구경기였고, 경기란 이기고 지는 건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니만큼 그리 주눅들 일은 아니건만 젊고 패기만만했던 우리 젊은 선수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것 같아 영 마음이 편칠 않았다.

 

아무튼 이번 한일전을 거울 삼아 이제는 ‘일본을 두려워한 적이 없다’는 둥 이런 흰소리는 그만하고 오로지 묵묵히 실력을 배양하기를 대한민국 축국국가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박지성 선수! 정말 대견하다! 그대가 부재하는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은 상상하기가 어렵다는 걸 말하고 싶다.

어제 한일전으로 100경기를 뛰었다니 정말 장하다!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다.

그대가 은퇴를 하고 싶다는 심정은 백번 이해한다. 단지 대한민국을 위해서 조금 더 숙고하기를 바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