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차범근 축구상을 받은 초등생 박지성의 모습이 너무 귀엽다.
박지성이 골을 넣은 후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고있다.02년 6월14일 인천문학경기장
월드컵 D조 한국-포르투갈전, 경향신문 자료사진
굿바이 박지성! 포커페이스와 진정성 어린 은퇴사
그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앳된 선수가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상대선수 서너 명을 제치고 힘찬 왼발 슛으로 현란한 결정 골을 성공시켰다. 그리고는 영화감독처럼 잘 생긴 외국인에게 달려가 와락 얼싸 안겼다. 참 멋진 순간이었다.
무명(無名)의 박지성과 한국 축구계를 뒤집어놓은 히딩크 감독이 보여준 명장면이다. 2002년 유월 어느 날의 일이다. 지금도 그날의 함성이 이명처럼 들리는 듯하다.
‘붉은 악마’라는 생소한 이름의 사상 초유의 응원전문클럽이 등장하고 온 나라가 월드 컵 열풍으로 들썩이던 때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월드 컵이 열리던 그해 우리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우리가 그렇게도 잘했던 사실이 현실 같지 않다. 그만큼 우리는 상상 이상으로 잘했다.
우리 대표팀 선수들은 저마다의 온갖 기량을 보여주며 국민에게 크나큰 ‘행복감’, ‘성취감’,‘자신감’을 선사했다. 우울증을 앓던 환자들의 증세마저 호전될 정도였다. 아무리 ‘주최측 프리미엄’이 붙었다 해도 그때 우린 정말 잘했었다. 온 국민이 하나가 되어 세계에 ‘축구 강국’대한민국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1년 1월 31일, ‘그날’의 앳된 선수 박지성은 어느새 서른이 넘은, 의젓한 주장선수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은퇴한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얼마 전부터 떠돌았던 ‘설(說)’이 현실로 찾아온 것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9대0의 참패를 당하며 세계 축구계의 조롱거리였던 대한민국이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로라하는 축구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과시하는 가운데 우리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이 저렇게 스스로 물러나겠다는‘은퇴 선언문’을 읽고 있는 것이다.
서운하고 울적하다. 개인적으로 아무 인연이 없지만 박지성은 어쩐지 남 같지 않은 친밀감이 느껴지는 선수다. 이제껏 대한민국 축구국가 대표 선수들이 ‘은퇴’하는 모습을 매스컴을 통해 지켜봐왔지만 박지성 만큼 각별한 존재는 없었던 것 같다.
박지성은 잘생긴 꽃미남도 아니고 재치 있는 언변가도 아니다. 오히려 어눌한 말솜씨에 그 흔한 웃음한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 아주 무뚝뚝한 유형의 선수다.
우리가 잘 나갈 때도 박지성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포커페이스를 굳건히 지켜왔다.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해 한국 선수로는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 화려한 성공을 거뒀지만 여전히 박지성은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로 매우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연간 수익이 수십억원이 넘을 정도로 ‘성공’했는데도 재거나 뽐내는 기색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더 믿음직스러웠다.
늘 과묵한 표정으로 우리가 좀 못했거나 심판으로부터 눈에 띠게 불리한 판정을 받고 패했을 때도 박지성은 “그것도 축구 경기의 일부다”라는 명언으로 오히려 뒤집어진 우리들의 속을 위로해주곤 했다.
그런 박지성이 국가대표팀을 은퇴한다니 왜 이렇게 서운해지는지 모르겠다. 말할 수 없는 어떤 상실감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연인과의 결별 뒤에 찾아오는 허무감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박지성은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장남’ 처럼 미더운 선수였다. 틀림없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어른들은 어떤 사람을 칭찬할 때 ‘틀림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했다. 우리 박지성이 바로 그런 틀림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은퇴가 더 아쉬운가보다.
박지성은 무슨 일을 맡겨도 말없이 책임 완수할 성실함 그 자체의 선수였다. 그래서 그의 은퇴가 더 마음 아픈가보다.
박지성은 ‘은퇴사’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로서 활동하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며 자랑이었습니다. 또한 팬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으로 축구선수로서 많은 영광과 행복을 누렸습니다.”면서 “무엇보다 저를 대신할 눈부신 성장세에 있는 선수들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 대표팀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축구에는 구자철·지동원·손흥민과 같은 축구에 대한 능력과 열정, 그리고 잠재력을 보여주는 많은 후배 선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큰 경기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것은 선배된 저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고도 했다. 후배를 아끼는 진정한 마음자리가 느껴진다. 박지성은 은퇴사 말미에서 자신이 한국 축구의 한 부분을 계속 맡아보고 싶다는 의지도 보여주었다. 우리에겐 참으로 기운나는 위로의 말인 듯하다.
“항상 한국축구를 생각하며 또 다른 방향을 통해 기여할 수 있도록 새롭게 도전할 것입니다. 설사 그 도전을 통해 지금보다 더욱 힘들고 험한 여정을 가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성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축구팬 및 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 부탁드립니다.”
박지성이 ‘대한민국 박지성’으로 독보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이었다.
매스컴에 많이 알려진 대로 박지성의 부모는 물론 할머니까지 나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개구리를 잡아 아들 몸보신을 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어서 지성에게 소고기 대신 개구리 진액을 ‘억지로’ 먹인 게 지금도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박지성은 어린 시절부터 ‘애늙은이’처럼 속이 깊었다고 한다. 남들이 다 신고 다녔던 메이커(고급 브랜드) 축구화를 고교 3학년 때까지 한 번도 신은 적이 없다. 그의 부모는 운동화가 너무 비싸서 사주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그때 은사인 감독 선생님(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이 고급 축구화 하나를 박지성에게 선물했다. 그는 그 축구화를 바로 신지 않았다. 대학가서 신겠다며 6개월 동안 축구화를 고이 모셔놨다고 한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에피소드다. 그의 아름다운 심성이 느껴진다.
아마도 신중하고 참을성 많아 보이는 박지성의 포커페이스는 그런 ‘쉽지 않은 환경’에서 쌓여진 진주 같다고나 할까. 박지성은 지난 해 말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차’를 사달라고 떼를 썼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연봉 수십억원을 벌고 있는 세계 최고 선수지만 박지성은 여전히 ‘용돈’을 아버지에게 타 쓴다고 한다.
그런 그가 아버지에게 '한국 가서도 오래오래 탈 테니 꼭 사고 싶다. 핸들도 영국식인 오른쪽이 아니라 한국식인 왼쪽 핸들 차량을 사겠다'고 졸랐다. 아버지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은 박지성은 현재 포르쉐 SUV인 카이엔(차량가격 약 1억4000만원)을 몰고 있다.
무슨 물건이든 한 번 사면 오래오래 쓰는 박지성이어서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믿고 ‘외제차’구입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검소한 박지성은 한국에 와서 친구들을 만날 때도 고작 5만~10만원 정도의 씀씀이를 보이는 ‘짠돌이’다. 그래도 후진 양성을 위한 ‘투자’에는 과감하다. 비록 대표팀에선 떠나지만 대한민국 축구계를 위해선 헌신하고 싶어하는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그의 아버지는 “지성이는 평범한 20대를 보내지 못했다. 타국에서 선수생활을 줄곧 했다. 또래들 하고 제대로 놀지도 못한 채 30대가 됐다. 지금까지 틀에 박힌 생활만 했다. 주위 시선 때문에 늘 더 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살았다. 아내는 이런 부분들을 속상해 했다"고 말했다. ‘비범한 아들’이 ’평범한 행복‘을 누려야할 시기에 누리지 못한 것을 측은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을 것 같다.
인터넷에선 간간이 ‘박지성 결혼설’이 떠돈다. 심지어 어떨 때는 상대 여성 이름까지 나온다. 물론 아직까지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한다. 일각에선 ‘박지성의 신부감’은 대한민국 국민의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연애 한 번 못해 봤다’는 박지성에게 금년엔 참한 규수감이 나타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아무튼 우리는 박지성이 있어서 그동안 너무 행복했다. 박지성 선수 고마워요!
모처럼 환한 미소를 보이는 박지성과 이영표
박지성이 일본 주장 엔도에게 환한 웃음으로 우승을 축하하고 있다. 그의 이런 표정은 매우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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