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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철의 골과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

스카이뷰2 2011. 1. 11. 13:04

 

 

                                                         환희에 찬 표정으로  골세레모니를 하는 구자철 선수(다음 마이데일리 사진)

   

       구자철의 골과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

 

 

오늘 새벽 바레인과의 한판 승부에서 연속 두 골을 뽑아내 대한민국 팀을 승리로 이끈 구자철은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게 볼이 내 앞에 왔어요." 숫기 없어 보이는 스물한 살 청년 구자철의 그 말을 들으면서 문득 노벨상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詩)가 떠올랐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의 ‘시’에서 “시가 나를 찾아왔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라며 ‘시’와의 운명적인 조우(遭遇)를 이렇게 읊고 있다.

 

시(詩)-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새벽 잠 설치며 경기를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에게 멋진 골을 선사한 구자철의 "이상하게 볼이 내 앞에 왔어요."라는 소감은 이제까지 시원하고 아름다운 골을 터뜨리며 우리에게 다가온 그 어떤 선수들보다 신선하게 들렸다. 축구가 시(詩)와 통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축구 경기를 봐오면서 축구는 시(詩)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종종해왔다. 녹색 그라운드 위를 전설의 푸른 말처럼 펄펄 날아다니는 청년들의 움직임에서는 생명의 아름다움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곤 했다.

 

특히 서커스의 아슬아슬한 곡예 같은 절묘한 골이 터졌을 때 환희하는 승자 팀과 머쓱해하는 패자 팀의 엇갈리는 명암은 한편의 시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흔히들 축구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총성 없는 전쟁’등등 극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축구 경기는 영혼을 맑게 해주는 한편의 시 같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상대팀의 그물망을 파도처럼 출렁이게 하며 튀어 오르는 볼은 시의 결정체라고나 할까.

영화가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듯 축구 경기 역시 시와 드라마 군무, 합창 등 온갖 예술적인 장르를 모두 아우르는 아름다운 경기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영화배우보다 더  잘 생긴 꽃미남 선수들이나 매력만점의 감독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월드컵 경기같은 국제적 규모의 축구 경기는 한편의 블록버스터 영화같다. 

 

구자철은 경기를 마친 후 "첫 경기를 승리해 기쁘다"며 "부담을 느끼지 않았고 즐겁게 경기했다"고 말했다.  캡틴 박지성을 비롯 이영표, 이정수, 차두리, 곽태휘 이청용, 기성용 등 동료선수들과 의 호흡이 그만큼 잘 맞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즐겁게!’라는 대목도 우리를 신나게 한다

즐기면서 하는 게 가장 높은 경지라는 걸 논어(論語)의 어느 구절에서 본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차세대 주자로 떠오른 구자철은 아직 어린 나이지만 ‘중원을 장악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중원을 장악한다!’는 이 말이야말로 축구마니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르는 가장 선동적인 말 같다. 개인적으로도 이 ‘중원 장악’이란 말에 가슴 설레는 매력을 느낀다.

 

구자철은 선제골 장면에서 기성용의 슈팅이 페널티지역에 위치한 자신에게 연결되자 재차 슈팅으로 연결해 바레인 골망을 흔들었다. 추가골 장면에서도 차두리의 강력한 슈팅을 상대 골키퍼가 걷어냈지만 골문 앞에 위치한 자신에게 볼이 흘렀고 오른발로 재차 차 넣어 바레인 골 망을 뒤흔들었다. 언제나 천진한 웃음을 날리는 차두리의 상대를 제압하는 탱크 같은 슈팅이 구자철의 골을 만들어 준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차두리는 어린 소년처럼 박수를 치며 구자철과 합동으로 신나는 ‘골 세레모니’를 보여줬다.

 

아시안 컵과는 유독 인연이 약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20세기인 1960년 우승을 끝으로 지난 51년간 우승컵을 안아본 적이 없다. ‘월드컵 4강’ 신화까지 기록했던 천하의 대한민국 대표팀이지만 이상하게 아시아에선 늘 ‘불운의 징크스’에 시달려왔다.

조광래 감독과 선수들은 ‘51년의 한(恨)’을 이번에는 꼭 설욕하리라고 다짐하면서 첫 경기인 ‘바레인 전’에 나섰다. 우리 대표팀은 또 이상하게 첫 경기에 지는 ‘징크스’마저 겹쳐 모두들 긴장했다.

 

하지만 감성이 풍부한 ‘물고기자리’의 구자철이 시인처럼 아름다운 ‘골 소감’을 말하는 ‘해피엔딩’으로 일단 첫 경기의 징크스를 보기 좋게 깨버렸다. 왠지 이 여세를 몰아 우리나라가 51년만에 우승컵을 인천공항으로 들여올 것이라는 예감도 든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경기가 끝나는 1월 30일까지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