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기부천사 김장훈의 삼일절 독도 콘서트와 3억원 기부한 독도 광고

스카이뷰2 2011. 3. 2. 17:46

 

                             독도사상 최초로 열린 삼일절 콘서트. 김장훈의 열창모습에서 애국심이 보인다.(이명원기자사진)  

 

                                      김장훈의 삼일절 독도 콘서트

 

 

3.1절 날 오후 2시. 대한민국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30번지에 애국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우리에게 ‘기부 천사, 기부 쟁이’로 잘 알려진 가수 김장훈과 그와 함께 온 반크 회원, 한국대학생자원봉사 단체인 V 원정대 , 외국인, 취재진이 모두 목청껏 부른 애국가는 흐린 날씨 덕분에 어쩌면 일본 쓰시마 섬까지 들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어제 독도에서 처음 열린 김장훈 독도 콘서트에 모인 젊은이들은 열정과 기백이 넘쳐흘렀다. '젊은 그들‘은“독도는 당연히 한국 땅이다”, “독도가 있는 동해 아름다운 대한민국”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일제히 “독도야 사랑해”를 외쳤고 일부는 선착장에 입을 맞추기도 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독도 사상(史上) 최초로 열린 이 콘서트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애국심과 한 가수의 ’독도 사랑‘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호기(好期)였다.

 

그동안 김장훈은 독도는 대한민국 땅임을 알리기 위해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에도 3억이나 되는 사비(私費)를 들여 광고를 했다. 2년여 전부터는 ‘독도 페스티벌’을 기획해 왔다. 그 결실이 바로 어제 열린 ‘김장훈의 독도 콘서트’였다. 3.1절 하루 전인 28일 입도(入島)를 시도했다가 풍랑이 높아 하루 연기한 뒤, 이날 마침내 섬에서 뜨거운 공연을 펼칠 수 있었다.

 

독도 선착장 간이무대에서 열린 콘서트는 애국가로 시작해 아리랑으로 막을 내렸다. 자신을 ‘낭만동 동장’이라고 말한다는 김장훈은 이날 콘서트에서 ‘오페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쇼’, ‘난 남자다’, ‘붉은 노을’을 열창했다. 물론 300여 청춘들도 함께 불렀다. 이런 신나는 장면에 갈매기떼들도 어우러져 군무(群舞)를 펼쳤다.

 

김장훈은 “1년 중 여객선이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이 30일쯤 밖에 안 된다는데 3.1절인 오늘 우리가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건 하늘의 뜻”이라며 “오늘을 시작으로 독도 페스티벌을 세계적인 축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거의 ‘삼일절 독립선언’수준의 비장감마저 일렁였다.

 

그는 또 “내년부터는 동해안 일대와 독도를 배경으로 공연을 펼쳐 ‘이스트 시 인 코리아(East Sea In Festival)’ 페스티벌로 확대하겠다. 결국 세계인들에게 일본해가 아닌 동해라는 명칭을 정확하게 알리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했다. 원대하면서도 믿음직스럽다.

 

 김장훈은 자신의 홈피에 온갖 악재를 뚫고 독도에 깃발 꽂고 걸지게 한판 공연하고 집으로 갑니다”라며 “정신차려보니 꿈이었네요. 그 눈물도, 그 웃음도, 그 노래들도”라고 적었다. 이어서 그는 “어쩌면 꿈이 아니라 기적이었네요. 이제 다음 오케스트라의 기적을 꿈꿔봅니다”라는 소감을 적었다. 장주접몽(莊周接夢)의 김장훈 버전이라고나 할까. 대한민국 가요사상 최초로 독도 선착장에서 3.1절과 독도사랑을 기념하는 독도 콘서트를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이 김장훈에겐 어떤 화려한 무대보다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40대 중반이지만 독신(獨身)인 김장훈은 참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인물이다. 데뷔 이후 20년 동안 불우한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해 기부한 돈만해도 4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잘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어느 재벌이 어느 정치인이 김장훈처럼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버려진 아이들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이 벌어들이는 수입의 거의 전부를 ‘쾌척’하겠는가.

 

말이 쉬워 50억 원이지 이 액수는 사실 웬만한 보통 사람들에겐 꿈에서라도 벌어들이기 쉽지 않고, 또 아낌없이 기부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언젠가 ‘김장훈의 인생극장’이라는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는 “공황증으로 죽을 뻔 했다. 새벽에 갑자기 숨을 못 쉬고 심장은 계속 마구 뛰어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엉금엉금 기어서 병원에 갔었다. 그리고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그 때부터 이 남자가수의 선행 퍼레이드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돈이 남아돌아서도 아니다. 김장훈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온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으로 ‘선행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서울 마포의 30평짜리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노총각이다.

 

아파트 보증금 5천만원은 소속사 사장님한테 빌렸고! 월세 120만원은 그달 그달 자신이 ‘노래 불러서’ 내고 있는 중이다. 평상시 그는 싸구려 옷에 싼 음식을 사 먹는다. 분식점 같은데도 자주 간다. 어려운 시절 그는 분식점에서 일한 적도 있어서 친밀감을 느낀다고 한다. 참 별난 사람이다. 이렇게 ‘헌신’하는 사람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40대 중반을 넘은 남자가 홀로 라면이나 끓여먹으면서도 불우한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을 위해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내놓는다는 건 어찌보면 좀 이상하게도 보인다. 하지만 그의 40대같지 않은 ‘순수한 목소리’를 듣다보면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게 된다.

 

김장훈의 무수한 선행 중 가장 심금(心琴)을 울린 이야기는 ‘꼬마의 등록금 장만’편이다.

“5년 전 알게 된 초등학교 5학년 녀석이 있는데, 1년에 생활비로 7백 만 원을 대주죠. 그리고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진학하면 쓰라고 3천만 원을 따로 만들어 놨어요. 물론 그 녀석은 누가 돈을 주는지 몰라요”

 

짧고 예쁜 동화 한 편을 읽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진정성이 배어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요 근래 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김장훈이 어떤 스타일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이야기다. 그 꼬마가 자라서 대학생이 된 다음 '김장훈 아저씨'의 뒷바라지로 공부할 수 있었던 걸 알고 그에게 인사하러 가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아마 웬만한 네티즌들은 이 이야기에 모두 훈훈한 마음이 들 것이다.

 

어쩌면 봄날 화사하게 피는 꽃들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그런 모습이다. 김장훈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해져 그가 운영하는 미니홈피에 들어가 봤다. 의외로 그의 홈피의 대문사진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여기서 김장훈은 “무대를 4천 번 올라갈 때 까진 세어봤다. 지금은 세지 않는다. 그냥 오늘 올라가는 무대가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한다. 그 무대가 잘 끝나면 한번은 더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휴~ 한다.”

 

‘하루를 생애처럼’이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김장훈은 좋아하는 단어들로 이런 걸 꼽고 있었다. ‘설레임, 그리움, 고즈녁, 가열차게, 빡세게, 아해들, 낭만, 극복’ .여기에 도산 안창호의 ‘국민 개개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부국 강병한다. 그리고 기술을 한 가지씩 익혀라’라는 어록을 좋아한다고 적고 있다. 싫어하는 것은 '권위, 아직도 남아있는 서비스업의 불친절, 제복이나 완장의 횡포,정치인, 돈'. 하지만 '돈'은 그가 좋아하는 단어에도 들어있다. '돈'의 쓰임새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는 뜻이리라.

 

이 남자가수가 좋아하는 단어들의 이미지에서 그의 ‘여린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무실역행’을 강조한 도산 선생의 어록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는 대목에서 그의 ‘선행’의 버팀목을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3년 전 쯤 서해 태안반도가 대기업의 선박이 유출한 기름으로 온통 난리가 난 적이 있다. 그때 ‘우리의 해결사’ 김장훈은 자신의 팬들로 구성된 ‘구조대’를 이끌고 무작정 그곳에 달려갔다. 그곳에서 공연하다가 그는 기절할 정도로 무리한 일정을 보냈다.

 

태안반도의 자연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다보니 미처 자신의 건강을 돌 볼 틈이 없었던 것이다. ‘들 것’에 실려 가는 그의 모습을 TV화면으로 지켜보면서 울컥했다. 김장훈이 태안반도 기름제거를 위해 들인 비용만 무려 5억원!!!

정작 ‘사고’를 낸 대기업에서는 ‘눈치’만 보면서 한 푼이라도 덜 내려던 ‘꼴’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었다. 이러니 적잖은 사람들이 ‘재벌’을 곱지 않은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것이다.

 

김장훈의 ‘선행(善行)은 일일이 말로 다 할 수 없다. 왜 아니겠는가. 50억원이 넘는 돈을 대한민국의 ’그늘 진 곳‘을 향해 바쳤으니... 어떤 네티즌은 트위터를 통해 김장훈을 이렇게 평하고 있다. “장훈을 거꾸로 하면 "훈장" 훈장5개 줘도 아깝지않다.RT 독립투사에 버금가는 인물^^멋진 사람. 김장훈에게 더 이상 무슨 찬사가 필요하겠는가.

 

대한민국 40대 중반 남자 가수, 아니 40대 중반 남성들 중 가장 ‘고운’ 마음씨와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진 김장훈은 자신의 ‘노후’에 대해 이런 말을 해 나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도 가요무대 같은 프로엔 안 나갈 겁니다.” 통쾌하다. 그의 이런 패기(覇氣)!

‘영원한 장훈이 형’으로 남아 언제까지나 10대들과 호흡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심정일 것이다. 김장훈은 아직도 대한민국의 그늘에 살고 있는 수많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자랑스런 ‘멘토’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낼 것이다. 김장훈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