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영국 윌리엄 왕자빈 케이트와 일본 왕자빈 마사코의 매운 시집살이

스카이뷰2 2011. 5. 4. 15:31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뉴시스-다음사진)                            마사코 왕자빈(다음뉴스 사진)

 

     

           영국 윌리엄 왕자빈 케이트와 일본 왕자빈 마사코의 매운 시집살이

 

 

지난 4월 28일 ‘세기의 결혼식’으로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영국 윌리엄 왕세손빈 케이트 미들턴은 공군 조종사인 남편 윌리엄 왕자의 근무지 근처에서 두 사람만의 오붓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버킹엄 궁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온갖 ‘왕실 법도’의 제약을 받게 된다는 걸 감안하면 일단은 한숨 돌린 셈이다.

 

10여 년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왕세손의 모친 다이애나 빈이 ‘왕실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렸던 데 비해 활달한 성격의 케이트는 ‘신세대 세손빈’답게 걸거침이 없는 신접살림을 시작한 듯하다. 하지만 케이트도 기본적인 ‘시집살이 항목 10가지'는 지켜야한다는 점에서는 이미 그녀도 ‘매운 시집살이’를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케이트가 맨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그녀의 ‘호칭’이다. 케이트는 이제 더 이상 케이트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 '웨일즈 윌리엄 왕세손빈 전하'로 불리게 된다. 이거야 뭐 그렇게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만 그녀의 친정 부모나 친구들로서는 다소 불편함을 느낄 것 같다.

 

이 ‘호칭’이라는 건 어떤 의미에선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당사자의 사회적‘위상’을 규정해 주는 것이다. 여염집 부인이 아니라 '대영제국' 왕자의 부인인 만큼 남편의 직위에 걸맞은 호칭으로 불러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녀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 다음 케이트는 투표를 할 수 없다. 왕실 사람들도 투표권이 있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전통이다.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다. 영국 영화 ‘더 퀸’에서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마이 피풀(국민)’의 투표행위에 호기심을 나타내는 장면이 생각난다. ‘지엄하신’여왕마마도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왕실 사람들은 또 마찬가지 이유로 정치 경선에 참여할 수 없다. 왕실가족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건 역으로 보면 그만큼 왕실의 파워가 세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케이트는 또 일반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안된다. 영국 왕실은 어떻게 보면 매우 정상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근거 없는 루머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윌리엄 왕세손 커플이 10년 연애기간을 거친 것도 케이트가 파파라치의 극성스런 추적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윌리엄 왕자야 어린 시절부터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익숙했기에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지만 ‘평민’이자 활달한 성격의 케이트에게는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한다는 걸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왕실 사람‘이 된 만큼 파파라치의 추적에 대범해져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케이트는 또 다툼의 쟁점이 되는 것을 말할 수도 없고 관계할 수도 없다. 이 항목도 ‘정치적인 중립’과 비슷한 규제다. 그러니까 왕실 가족은 세간의 갑론을박에 ‘초연’하라는 얘기다 ‘남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인데 이런 건 일반인들도 유의해야하는 항목 같다.

 

거부(巨富)처럼 마구 돈을 쓸 수 없다는 것도 케이트가 명심해야할 덕목이다. 왕실에서 사치스럽게 생활하는 것은 국민의 모범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검소한 생활이야 일반인들에게도 ‘권장사항’이지만 일상생활에 들어가는 경비의 대부분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왕족으로선 당연히 지켜야할 항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기의 결혼식’은 예상보다 너무 호화롭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일부에선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비용 전액을 ‘세금’에서 쓴 게 아니라 여왕 할머니와 세손의 부친 찰스왕자 그리고 백만장자로 알려진 신부 측 부친이 상당 금액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개류 바다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도 케이트는 지켜야 한다. 독이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만약 케이트의 식성이 조개류를 너무 좋아한다면 지키기 쉽지 않은 항목 같다. 사람이 먹고 싶은 걸 못 먹는다는 것도 견디기 어려운 일일텐데.

 

세손빈은 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왕실가족의 일원으로서 할 일이 많아서 이런 조항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여성에게 하고 싶은 '자기일'을 못하게 하는 것도 합리적인 건 아닌 듯하다. 케이트는 대학에서 미술사학과 디자인을 전공한 후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다. 그래도 왕실의 며느리인 만큼 ‘돈벌러 다니는’ 건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케이트는 공식 문서 이외의 어떤 문서에도 서명할 수 없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왕실 사람들의 서명이 불법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사항은 좀 우습다.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식사를 마친 뒤에는 더 이상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재밌지 않은가! 어쨌든 이 항목은 뭐 그리 어려운 것 같지는 않다.(나중에 몰래 간식을 하면 되니까.)

 

‘백마 탄 왕자님’에게 시집 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렇게 10개의 기본적 금기사항을 읽어보니 세손빈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 같다.

케이트 미들턴이 지켜야할 시시콜콜한 항목을 보면서 문득 일본 왕실의 마사코(雅子)왕자빈이 생각난다.

 

1993년 나루히토 왕자와 결혼한 마사코 역시 케이트처럼 평민출신이다. 하지만 그녀의 부친은 외무성의 고위관료로 외교관으로 활약해왔다. 결혼 전 오와다 마사코라는 이름을 가졌던 왕자빈은 케이트처럼 결혼과 함께 자신의 성(姓)은 버려야 했다. 일본 왕실 사람들은 성씨는 없고 그냥 이름만으로 불리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이런 정도야 뭐 그리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사코는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영국 옥스퍼드대학원에서 국제 정치학, 일본 최고의 명문이라는 도쿄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톱클래스의 재원(才媛)으로 외교관으로서 활약하던 커리어 우먼이었다.

 

마사코가 왕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은 일본열도를 들끓게 했다. 며칠 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케이트 못지않게 화제의 주인공이었다. 어쩌면 더 유명세를 치러야 했다. 케이트야 그냥 일반 회사의 디자이너로 근무했지만 마사코는 ‘외무고시’를 거친 정통 외교관으로 당시 일본사회에선 몇 명 되지 않은 여성외교관으로 그야말로 국가적으로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렇기에 마사코는 결혼과 함께 ‘전문직 여성’을 포기하고 ‘궁궐 생활’에 적응해야하는데 케이트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마사코도 케이트처럼 옥스퍼드 대학시절 캠퍼스에서 ‘왕자님’을 만났다. 나루히토 왕자와 결혼하기까지의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처음엔 ‘왕자 며느리’후보군에조차 들지 못했었다. 마사코와 결혼하겠다는 왕자의 ‘굳은 의지’덕분에 왕실에 입성한 것이다.

 

마사코는 결혼 이후 8년 동안 ‘후손’을 잇지 못해 왕실의 갖은 압박에 시달려야했다. 같은 평민 출신으로 왕비가 된 시어머니의 매운 시집살이도 그녀에게 강한 스트레스였다. 매운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시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한다는 말처럼 미치코 왕비도 며느리 마사코 왕자 빈을 소리 내지 않고 닦달했다고 한다.

 

거의 마흔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딸을 낳았지만 ‘왕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왕실은 계속 그녀에게 눈치를 주었다. 결국 마사코 왕자 빈은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심지어는 ‘자살미수’소식까지 들려올 정도로 험난한 왕실 시집살이를 살아야 했다.

 

급기야 남편인 나루히토가 공개석상에서 ‘마사코를 괴롭히는 세력이 있다’는 폭로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요즘도 마사코는 편치 않은 왕자빈 생활을 하고 있다는 보도가 간간히 나온다. 그만큼 일본 왕실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얘기다. 외동딸 아이코공주가 초등생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왕자빈의 거의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이런 마사코 왕자 빈을 보면 케이트 미들턴에게도 그리 편한 궁궐생활이 보장될 것 같지는 않다. 케이트의 시어머니 고(故) 다이애나 빈도 결국 왕실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데다 남편인 찰스황태자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애정결핍증’이 우울증으로까지 확대됐고 끝내 결혼생활의 파국을 겪어야 했다.

 

결혼식 직전 윌리엄 왕세손은 자신의 아내가 왕실생활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곁에서 잘 보살펴 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왕자는 자신의 모친이 겪었던 험난한 왕실생활과 비운의 최후를 보면서 자신의 신부만큼은 그런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이제 왕세손 빈으로서 ‘신분’이 달라진 케이트 미들턴은 활달한 신세대 여성처럼 보이기에 다이애나 빈이나 일본의 마사코 왕자 빈 같은 ‘슬픈 전철’은 밟지 않을 듯싶다. 무엇보다도 남편인 왕자님이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서약을 공개적으로 한 만큼 그녀를 괴롭힐 왕실스트레스는 힘을 쓰지 못할 것도 같다. ‘20세기 왕자빈’들이 겪었던 왕실 시집살이는 21세기 당찬 왕세손 빈에겐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