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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감독’ 김기덕의 아리랑과 제자 장훈의 배신

스카이뷰2 2011. 5. 15. 12:09

 

                                       아리랑에 직접 출연한 김기덕감독.어느새 반백의 나이에 반백이 됐다.(다음 연합뉴스 사진)

 

    

       ‘문제적 감독’ 김기덕의 아리랑과 제자 장훈의 배신

 

 

"나는 외로움이야…. 영화감독만큼 행복 받고 존중받은 직업은 없어."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배우 연기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까먹었어."

"레디 액션" "레디 액션“”레디 액션“

"2008년부터 3년째 영화를 안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폐인 됐다는 기사가 나오잖아. 사람들도 안 만나고, 너 왜 이렇게 살고 있어. 사는 게 이게 뭐야? 네가 개야?…네 영화 기다리는 사람 많아 뭘 찍어도 찍어라." 그는 고백한다. "무엇인가를 찍어야만 행복한 나 자신을 찍고 있다"고.

'아리랑'은 다큐멘터리인지 드라마인지 판타지인지 장르가 불분명한 영화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 또 다른 자아, 자신의 그림자,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감독 등 1인 3역을 소화했다.

 

신문이 없는 일요일 아침 온라인 뉴스 서핑을 하다가 이런 ‘한 맺힌 절규’의 절절한 기사를 보며  오랜만에 울컥했다. 어디 있는지는 여전히 ‘주소불명’인 내 마음 어딘가에 실제적 통증이 느껴졌다. 한국의 몇 안 되는 ‘재능 있는 감독’ 영원한 이방인 같고 타고난 예술인 같은 ‘문제적 감독’ 김기덕에 관련된 기사 몇 편이 오늘 아침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김기덕이 3년의 침묵을 깨고 ‘아리랑’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내놓은 ‘장르 불명’의 영화를 까다롭기로 소문난 칸 영화제에서 ‘모셔갔고’, 3분이 넘는 기립박수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 기립박수니 극찬이니 하는 건 오히려 김기덕에겐 ‘누추한 헌사’로 보인다.

 

‘극한의 고독’에 자신을 몰아쳐놓고 김기덕은 채찍을 휘두르듯 ‘영원한 연인’영화에 대해 새디스트 같은 ‘횡포’를 부린다. 칸에 선보인 ‘아리랑’ 역시 이제는 ‘백발이 성성한’ 한 초로의 사내가 한없이 울부짖고 독백하며 자신을 배신한 인간들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와 복수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어딘가를 향해 ‘정조준’하듯 만들어낸 ‘마음아픈 영화’인 듯하다.

 

이런 ‘恨의 피’로 만든 김기덕의 '아리랑'에 대해 외신들은 경배에 가까운 극찬을 쏟아냈다고 한다.

영국 영화전문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은 15일 인터넷판을 통해 "'아리랑'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금까지 만들어진 최고의 작가 영화"라고 평했다."김기덕은 위기의 상황이 올 때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며 다른 사람들과 달리 틀에 박히지 않는 시도를 해왔다".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한 고찰을 통해 삶과 죽음, 폭력, 우정, 반역 등에 대해 반추했다" "길고 고통스러운 혼잣말에 스스로 대답하고 있다"

미국영화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도 "한 작가가 자기애에서 출발한 셀프영화로 비상했다"며 "자신의 영화에 대해 영광스러운 고통을 주제로 삼았다"며 감독의 작품세계를 조명했다.

 

"김기덕은 거칠지만 슬픈 듯한 목소리로 '아리랑'을 통해 자신의 영화들에 대한 애수와 그리움을 그렸다"

프랑스 통신사 AFP는 "김기덕이 감독으로서 자신의 절망적인 상태를 치료하기 위한 원시적인 자화상에 칸영화제가 갈채를 보냈다"는 문학적인 보도를 했다. AFP는 "김기덕 감독이 한국의 민요 아리랑으로 감독 자신의 재생, 부활을 노래했다"고 호평했다.

어쩌면 이번 ‘아리랑’이 김기덕의 ‘유작’일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마저 든다.

그만큼 영화감독으로서 절절한 심정을 피를 토하듯 만든 작품 같다.

 

-머리가 긴 50대 남자가 텐트 문을 열고 나온다. 개울가로 가 세안을 하고 다시 돌아와 식사한다. 가끔 간식으로 밤을 까먹는다. 고적한 산골마을로 찾아오는 이는 한 명도 없다. 오로지 도둑고양이만이 유일한 친구인 양 가끔 그의 오두막에 들를 뿐이다.

영화는 시작 후 십여 분간 대사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 내리기, 세안하기, 밥하기 등 한 남자의 일상을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남자의 입에서는 속사포와 같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쏟아진다. 그 말 속에는 회한과 증오, 그리고 자기 모멸감 같은 어두운 삶의 조각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다. 황량하고 소슬한 삶의 터전인 오두막과 함께 영화를 구성하는 것은 그의 거친 육성, 배신한 인간들에 대한 상처로 뒤범벅된 언어다.-

 

미개봉 영화지만 위의 내용만 봐도 어떤 영화인지를 알 것 같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가 어이없이 당해야했던 배신에 상처받고 독화살을 맞은 채 동굴로 숨어 들어간 고독한 야수(野獸)의 아픔이 전해진다.

통속적인 잣대지만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은 데뷔작 '악어'(1996)부터 '비몽'(2008)까지 15편의 영화를 만들며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밀도 깊게 그린다는 호평과 여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도구화한다는 악평 사이에서 외로웠지만 거의 매년 1편씩 ‘돈 안 되는 예술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국내 영화계의 이단아였다.

 

이번 ‘아리랑’은 ‘아무도 몰래 작업해’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인간적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을 지 짐작이 간다.

감독 스스로 자신의 영화세계를 반추하며 만든 영화의 첫 공개 자리인 만큼 작품에 쏠린 관심은 컸다. 상영 시작 약 2시간 전부터 취재진들과 영화팬들이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했다고 한다.

 

상영 시간이 임박하자 관객이 넘쳐 드뷔시 극장의 2000여 기본 좌석은 물론 통로에 설치된 임시 의자까지모조리 동원됐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는 것이다. 참 대견한 장면이다.

국에선 외면당하는 감독의 작품이 낯선 타국에선 갈채 받아온 아이러니한 현실에 감독 자신의 영혼은 더 상처받았을 것이다. .

김기덕 감독 스스로 주인공으로 등장하며 각본, 연출, 제작은 물론 촬영과 편집, 녹음, 음향까지 김기덕 감독이 홀로 도맡은 '아리랑'은 '김기덕을 위한, 김기덕에 의한, 김기덕의 영화'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알려진 대로 김기덕은 자신의 제자 같은 조감독 장훈에게 배신당한 아픔을 여전히 삭이지 못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 이후 2편의 영화를 장훈 감독과 하기로 했지만 "장 감독이 자신도 모르게 메이저와 계약을 했다"고 주장한다. 장훈 감독은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쓴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서 장편 데뷔했으며 546만명을 모은 송강호· 강동원 주연의 '의형제'를 통해 스타급 감독으로 부상한 젊은 연출자라고 한다.

 듣기로는 장훈이 몇 차례나 싹싹 빌었다고 한다. 그들 사이에 벌어진 ‘진실’을 알지 못하지만 아무래도 김기덕의 말에 좀더 무게가 실린다. 장훈이라는 젊은 감독은 일면식도 없지만 ‘영혼이 깨끗한 감독’ 김기덕을 ‘배신’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장훈이 어떤 됨됨이의 인간형인지 전혀 모르는 마당에 그런 섣부른 예단은 필요 없다. 그냥 결과를 놓고 볼 때 그 젊은이는 대선배에게 못할 짓을 한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김기덕은 영화 속에서 혼자 이렇게 중얼 거린다.

"사람이 오면 가는 날도 있는 거야. 널 존경한다고 찾아와서 너를 경멸하며 떠날 수도 있는 거야. 우정을 끝까지 선택하는 사람은 없어. 세상이 그런 거야. 네가 영화를 통해 수없이 얘기했잖아. 네 영화의 주인공이 네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할 것 같아."

 

어쨌거나 2011년 5월 칸은 김기덕을 선택했다. 김기덕의 입장에선 칸의 그런 선택은 ‘동아줄’같은 힘이 되었을 것이다. 그동안 쌓였던 모든 울분과 배신감 무기력함은 모두 털고 온전히 영화에 목숨 건 듯한 왕년의 김기덕이 보고 싶다.

 

아래 글은 5년전 2006년 여름 우리 블로그에 쓴 글이다. 김기덕은  당시 개봉한 '시간'이라는 영화가 관객들이 외면하면 영화계를 '은퇴'하겠다는 절박한 하소연을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이 하도 애틋해 보여 김기덕을 응원하는 뜻에서 올린 글이다. 5년이란 세월 참 빠르게 지났다.

 

<개인적으로는 이 김기덕 감독이 꽤 주목할 만한 ‘천재성’이 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 알려졌다시피 정규 졸업장이라고는 초등학교 것밖에는 없는 김 감독은 ‘맨몸’으로 영화를 배우고 만들어온 ‘자수성가형’이다.

무릇 예술가라는 존재는 ‘자수성가’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외국유학파’다 ‘국내파’다 편을 가르면서 영화감독의 출신성분을 따지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김기덕은 완전히 ‘적수공권’으로 ‘감독’의 타이틀을 따낸 ‘멋쟁이’다.


9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우리 영화감독들은 ‘정규교육’을 받은 비교적 ‘엘리트 급’ 감독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여기에 김기덕 감독이라는 ‘비주류 인생· 비주류 감독’이 나타났고, 국내보다는 베를린이나 베니스 영화제 등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그의 존재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우리 영화계는 비로소 그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가 다루어온 인생들은 창녀· 깡패· 포주 범죄자 등 소위 ‘하류인생’들이었다. 감독 스스로도 자신의 ‘특이한 이력’이 영화판에선 별 도움이 안 되는 ‘비주류’에 속한다는 것에 꽤나 신경을 쓰는 품이었다.


‘재능 있는’ 영화감독들의 인터뷰들을 즐겨보는 독자의 입장에서 김기덕감독의 ‘드라마 같은 인생’인터뷰는 다른 감독들 이야기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흥미를 느낄 수 있었다.

가계를 돕기 위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있다가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던 불우한 청소년 시절이나 편도 비행기 표만 들고 프랑스로 날아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했다는 그의 ‘과거사’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때 묻지 않은 청소년 분위기’가 여전히 느껴진다. 뭐랄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예술의 길에 발을 디딘 이후 홀로 어렵사리 영화작업을 해온 그의 저력은 어쩌면 저렇게 ‘순수한 목소리의 힘’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마저 든다. 1996년 데뷔한 그는 올해로 ‘10년차 감독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저렇게 ‘볼멘소리’를 하면서 ‘메이드 인 김기덕’ 영화 좀 봐달라고 하소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오죽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그러겠는가. 그의 항의하는 듯한 어투에서 나는 한 예술가의 ‘정신적 망명선언’을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제발! 제 영화 좀 봐주세요.”라고 절규하는 감독의 하소연은 1천만 관객몰이에 성공한 소위 ‘흥행감독’들에겐 가소롭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김 감독의 저런 절규야말로 우리 한국영화계를 진정 발전시킬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할 것 같다.

하지만 김 감독도 지나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한다면 ‘관객 흥행’에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는 ‘빈집’을 보면서 나는 그의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이나 ‘순수성’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흥행’은 어렵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뭐랄까, 그야말로 ‘2% 부족한’ 어떤 아쉬움을 털어내기 어려웠다고나 할까. 저래선 흥행 어렵지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영화든 뭐든 ‘장사 좀 하려면’ 어떤 매력이 느껴져야 하는데 김기덕의 작품에선 그게 좀 부족했다. 감독이 워낙 사회와 단절된 가운데 ‘홀로 공부해온 처지’여선지 일상성에서 우려낼 수 있는, 피곤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러운 ‘맛’이 결여된 것 같았다. 관객이 ‘몰입’할 수 있게끔 해줘야 하는데 그의 작품에선 이 ‘몰입’할 흡인력이 다소 부족한 듯싶었다.


비슷한 ‘독립영화감독’계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일본의 이누도 잇신 감독등 일본의 영화감독 작품이 ‘재미’도 있다는 것은 김기덕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누도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 같은 영화 역시 저예산에 ‘비주류 인생’들을 다루고 있지만 얼마나 재미가 있었는가!

‘빈집’ 뿐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일상적이고 가학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하는 듯해 보기가 쉽지 않은 장면들이 많았다. 그의 영화는 ‘괴롭고 지겹다’는 평도 있다는 걸 김 감독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가 이번에 저런 ‘정신적 망명’선언을 한 것을 놓고 아마 영화판에선 그에게 조소를 보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의 심정을 백분 이해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김 감독은 이번에 개봉하는 ‘시간’이란 영화에 “제발 20만명만 들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심정도 내비쳤다. 요는 그도 관객의 외면만큼은 참아내기 어렵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술가가 아무리 자신의 작품에 프라이드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처럼 고독하고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1000만 관객시대가 슬픈’ 김기덕 감독이 힘을 잃지 않고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요구되는 시절인 것 같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그는 “나도 관객 드는 영화 만들 줄 알아요.”라고 말했다. “알면 실천하라! 일단 그대가 영화예술가로서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면 관객들을 일단 극장문안으로 끌어들여라!”

김 감독에게 영화에는 문외한의 입장이지만 조언하나 해주고 싶다. “조금만 일반 관객들의 취향을 공부하세요.”

김기덕 감독!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