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대한민국에 처음 온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연합뉴스사진)
사진 작가로 변신한 리처드 기어와 스승 달라이 라마
‘추억의 배우’ 리처드 기어가 어느 새 초로(初老)의 모습으로 서울에 처음 왔다.
지금 40대 후반~50대의 영화팬이라면 한창 때의 리처드 기어를 기억할 것이다. 80~90년대 ‘사관과 신사’나 ‘귀여운 여인’ 같은 영화에서 주연남우로 활동한 리처드 기어는 그때부터 어딘지 동양적인 풍모가 느껴지는 배우였다.
90년대 초반쯤인가 '귀여운 여인'을 보러 갔다가 동행한 친구들에게 “리처드 기어 말이야 인상이 레이건 대통령하고 노태우대통령을 합성한 것 같지 않니”라고 말하자 “어, 그러고 보니 좀 그렇네” 하면서 서로 배꼽을 잡고 웃던 기억도 있다. 줄리아 로버츠라는 입 큰 여배우의 출세작인 ‘귀여운 여인’에서 리처드 기어는 요즘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한창 인기라는 ‘독고 진‘ 비슷한 역을 맡았다.
마음씨도 좋고 잘 생긴 멋쟁이 신사로 전 세계 젊은 여성들을 깜빡 죽게 했다. 시크릿가든의 ’현빈 앓이‘나 ‘최고사’의 ‘독고 진 앓이’ 열풍쯤은 ‘글로벌’적인 규모면에서 압도하는 영화였다.
중년의 부호(富豪)인 신사가 우연히 길에서 만난 ’길거리 여자(娼女)‘에게 ’조건 따지지 않고‘순정을 바친다는 1990년대 판 ’신데렐라 이야기‘다. 어쩌면 거의 모든 여성들의 ’영원한 로망‘일 수도 있는 ’백마 탄 왕자님‘이 하층 여성을 변치 않고 사랑한다는 건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장사가 되는, ’먹혀들어가는 이야기‘다.
‘귀여운 여인’을 정점으로 리처드 기어의 인기는 점차 퇴색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 무렵 리처드 기어는 ‘염주’를 굴리며 불교에 심취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마음의 안식처’를 간절히 바랬을그런 쇠잔해 가는 인기배우들에겐 뭐니 뭐니 해도 영혼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종교의 힘이 무엇보다도 필요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정치 승려’의 이미지가 강해 보이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를 멘토 겸 스승으로 모시고 불교에 ‘정진(精進)했다. 그러고 보니 한창때 그에게서 어딘지 ’동양적 풍모‘가 살짝 묻어 있던 것도 범상치 않은 인연처럼 보인다. 달라이 라마로선 세계적 톱스타이자 미국인인 리처드 기어가 '든든한 제자'였을 것이다.
영화배우 출신 부인과 11세된 어린 아들을 ‘솔가(率家)’해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한 리처드 기어는
서울 종로의 조계사에서 자승 총무원장과 사진도 찍고 불당에서 불교식인 엎드려 절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기독교신자에서 개종한 미국인인데도 절하는 품이 아주 능숙했다. 역시 배우라서 그런 ‘종교행위’도 ‘연기’처럼 정성을 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리처드 기어는 자승 총무원장이 2010년 서울에서 개봉한 영화 ‘하치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의 최근작인 이 영화는 노교수 역을 맡은 리처드 기어와 애견(愛犬) 하치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크게 히트하진 못했지만 그런 대로 그의 팬들에겐 반가운 작품이었다.
사진작가로서도 ‘명성’을 얻은 리처드 기어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순례자의 길’이라는 사진전 개막행사에 참석할 겸 한국의 불교문화를 직접 ‘체험’하려고 서울에 온 것이다.
어제(22일), 그는 한국의 젊은 기자들에게 자신의 사진 에술 세계,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종교적 탄압과 그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달라이 라마에 관한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다채롭게 말했다.
달라이 라마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동안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는 리처드 기어는 “달라이 라마는 슬하의 한국인 학생들이 무척 똑똑하다고 생각했고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했다”는 말도 했다.
리처드 기어는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받은 게 사진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사진은 네모난 상자 안에 세상을 편집하는 정치적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 ‘정치적 작업’은 비단 사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부대끼고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정치’와 모두관계있다는 것을 리처드 기어 정도의 연배가 되면 터득할 수 있는 '문리(文理)가 트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처드 기어는 달라이 라마가 망명지 다람살라에서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실루엣이나 염주를 쥐고 있는 두 사람의 팔을 클로스업 시킨 ‘염주를 쥐고 있는 손’, 천막과 히말라야 산맥을 배경 삼아 예불(禮佛)하는 사람들 등 불교적인 색채가 강한 분위기의 흑백 사진 64점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국제 자선 사업의 취지에 공감하는 유명 아티스트 24인이 기증한 사진 컬렉션 ‘티베트 포트폴리오’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그는 티베트를 비롯 네팔 부탄 몽골 등 불교 국가들에서 사진작업을 해온 이유에 대해 “히말라야에서 2500여 년 전 불교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그 국가들에는 종교적 순수성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영적인 감성’을 얻을 수 있기때문이라고 밝혔다.
그의 이번 사진 작품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다람살라에서 찍은 ‘살상의 방법(Methods of Killing)'.
티베트 승려들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받은 모진 고문의 흔적을 직접 보면서 이런 만행을 세계인들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단순한 배우가 아닌 전 세계의 ‘종교적 현안’에 큰 관심을 갖는 ‘글로벌 소셜테이너’로서의 그의 행보는 앞으로 중국 당국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줄 것 같다.
’
리처드 기어,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1990년 작 '귀여운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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