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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칸 영화제 수상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스카이뷰2 2011. 5. 23. 12:17

 

                   시상식에 참석한 김기덕 감독과 공동수상자인 독일 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왼쪽에서 두번째)

                   [칸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김기덕,  칸 영화제 수상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애잔하다. 그리움에 사무쳐 보인다. 상처뿐인 영광의 아우라가 슬프게 빛난다. 애수(哀愁)에 가득 찬 눈빛이 처연하다. 칸 영화제에서 공동 수상한 감독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에서 유독 김기덕 감독만이 이렇게 보였다. 차이나칼라의 개량한복 풍(風) 의상도 왠지 그를 쓸쓸한 사람으로 보이게 한다. 문득 미국 여류작가 카슨 맥컬러즈의 소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라는 제목이 떠오른다. 산속에서 ‘절치부심’하며 자화상 같은 영화를 만들어온 지난 3년의 세월이 김기덕을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아리랑’을 부르며 울부짖었던 ‘문제적 감독’ 김기덕 감독이 자전적 다큐멘터리 ‘아리랑’으로 21일(현지시간) 제64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상을 받았다. 독일감독 안드레아스 드레센의 ‘스톱드 온 트랙(Stopped on Track)’과 공동 수상이다.

 

김 감독은 이로써 베를린, 베니스에 이어 칸 영화제까지 세계 3대 영화제의 본상을 모두 거머쥔 대한민국 최초의 감독이라는 ‘영광’을 차지했다. 21세기 들어 대한민국 영화계의 큰 경사(慶事)다.

영화감독으로서 제도권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콤플렉스’야말로 김기덕을 키운 원동력이었다고 본다. 지난 해 같은 상을 받은 홍상수만 해도 미국유학까지 다녀오고 무슨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인 것으로 안다.

 

사실 요즘에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영화감독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예전에는 촬영장에서 어깨너머로 익혀온 ‘기술’로 메가폰을 잡은 감독들이 적잖았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임권택 감독이다.

김기덕 감독은 어쩌면 국내 영화계에서 ‘자수성가’한 ‘마지막 감독세대’가 될 듯하다. 요새야 웬만한 대학엔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정규코스’가 개설돼 있다. 

 

특히 한예종 같은 곳에선 ‘엘리트 감독’을 배출하는 산실 노릇을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좋은 학교'를 나온 감독들 혹은 감독지망생들이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비롯한 거의 모든 예술 분야는 '배워서 얻은 재주'보다는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성공의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60년생인 김 감독은 다 알려졌다시피 초등학교 졸업장이 정규 교육으론 유일하게 받은 ‘학력증명서’다. 그 이후 그는 거친 세상 파도와 싸우며 온갖 신산한 삶의 쓴맛을 다 알게 된 ‘인생파 감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분명 '타고난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화학교 근처엔 가본 적도 없는 그가 이렇게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을 받을 때만 해도 김감독은 비록 대중관객의 갈채는 받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역량있는 감독으로서 사회적 대접을 받았었다. 그러나 이번 1인 3역의 ‘아리랑’을 홀로 만들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이 알려지기 전까지 ‘세상 물정’ 모르는 김 감독은 ‘폐인’이 된 아웃사이더로 ‘전락한 신세’였다. 그가 영화 속에서나 혹은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오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나이 쉰이 넘은 중늙은이 사내가 산발한 채 얼굴을 감싸고 흘렸던 그 눈물은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에게 ‘진정성 있는 예술가의 몸부림’으로 통했던 것 같다. 예술이 뭔지 잘 모르지만 예술은 원래 그렇게 외롭고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자 채찍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 의지할 곳 없는, 지구상에서 혼자뿐인, 황야에 혼자 서서 울부짖는 아웃사이더’ 그런 수식어들이 진정한 예술가들의 가슴에서 빛나는 ‘훈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각본·연출·연기는 물론 촬영·조명·음향·편집 등 ‘1인 드라마’를 완성한 김기덕의 가슴엔 그런 ‘훈장’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아리랑’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엇갈렸다. 영화 전문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은 “의심할 여지없는 궁극의 작가주의 영화”라고 칭찬했지만, 또 다른 전문지 버라이어티는 “김기덕의 골수팬조차 보기 지루한 영화”라고 혹평했다.

 

어쨌든 칸영화제는 ‘주목할 만한 시선’에 오른 20편 중 ‘아리랑’의 김기덕에게 최고상을 안겼다. ‘천부적인 예술가 김기덕’을 알아본 것이라고나 할까. 결국 예술영화란 아니 무릇 이 세상의 예술이란 작가 혼자 해내는 것이라는 걸 증명해낸 김기덕을 칸 심사위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체로 실험성 강한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를 선호하는 칸영화제 측으로선 어쩌면 김 감독의 ‘아리랑’이야말로 당연한 수상작이었을 것이다.

 

김 감독은 탤런트 현빈이 입소할 때 ‘난리’가 났던 바로 그 해병대 출신이다. 제대 후 그는 무작정 프랑스로 건너갔다. 거리의 화가로 한국인의 관광 필수 코스인 몽마르뜨 언덕 등지에서 3년간 밥벌이를 하다 귀국했다. 물론 그림도 누구한테 배운 게 아니라 그냥 혼자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에 뛰어든 것도 역시 혼자 힘으로 해냈다.

 

정식으로 영화 공부를 한 적도 없고 영화계에 누구 하나 알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시나리오 공부를 시작했고, 혼자 힘으로 일약 ‘문제적 감독’이 된 것이다. 자랑스런 '자수성가'다. 원래 예술의 본질은 '자수성가'라고 할 수 있다. 

 

어제(22일)TV뉴스에는 김기덕 감독이 수상 후 무대에서 ‘아리랑’을 열창하는 모습이 나왔다. 언젠가도 말했지만 순수한 목소리의 소유자답게 그의 노랫소리도 천진함이 스며있는 듯 맑게 들렸다.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은 수상자답게 김기덕의 노래 또한 주목할 만했다.

 

누가 불러도 비감(悲感)이 서린 듯 들리는 우리 노래 아리랑은 ‘영예의 수상자’가 된 김기덕이 부르자 다소 ‘활기(活氣)가 느껴졌다. 그래도 ’아리랑‘은 여전히 아련한 슬픔을 품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마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감독이 그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소리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보지 못했다.  어쩌면 수상 무대에서 아리랑을 부름으로써 그의 외로운 영화 '아리랑'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 같다. 

 

동양에서 온 이방인의 슬픈 노래를 들으며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방인들 모두의 가슴에는 근원적인 애수가 서렸을 것 같다. 세계인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기에 한국 감독이 부르는 아리랑 노래에서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님! 칸 영화제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