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물의 왕자 - 매카시즘 광풍 몰아치던 시절 대만 이야기

스카이뷰2 2011. 9. 10. 14:26

        

 

 

   

 

         

 눈물의 왕자 -매카시즘 광풍 몰아치던 시절 대만 이야기

 

 

 

 

 

오랜만에 러닝타임 122분짜리 영화 한편을 심야 ‘안방극장’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며 끝까지 다 봤다.

 

각은 어느새 새벽 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우연히 본 EBS금요극장을 통해 본 ‘눈물

 

의 왕자’는 요 근래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 극장출입을 못하는 바람에 쌓일 대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보내줬다.

 

 

KBS에 내는 수신료를 EBS에 내야 할까보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나 오늘 자정에서 2시 넘어 까지 본

 

이 ‘특선영화’처럼 괜찮은 프로그램들은 거의 다 EBS를 통해 보고 있다.

 

수채화처럼 투명함과 정갈함 그리고 삶의 페이소스가 듬뿍 배어있는 보석 같은 영화를 만나는 건 참 드문

 

행운이다. 관객은 나 혼자였지만 그 순간 자체가 거의 ‘천상의 시간’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아주 소중한 삶의 한 갈피를 ‘눈물의 왕자’를 위해 바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오랜만에 문화적 포만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탁월한 수작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요즘 나의 정서와 딱 맞아 떨

 

어져 모처럼 ‘해후한 오랜 친구’를 만난 그런 기분이었다는 말이다.

 

 

대만의 독립영화계의 ‘대부(代父)’ 양범(楊凡, 욘판) 감독이 2009년에 내놓은 이 작품은  감독의 인생을

 

바라보는 ‘따스하면서도 씁쓸한 시선’이 탁월한 영상미와 함께 어우러져 관객에게 순도(純度) 100%의 공

 

감대를 선사하고 있다. 매카시즘이라는 반공(反共)적 광풍이 몰아닥쳤던 1950년 초반, 무고한 대만 국민

 

들이 ‘시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던 슬픈 운명을 양범 감독은 ‘대하드라마’처럼 엮어내고 있다.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만든 ‘눈물의 왕자’는 ‘이것이 인생이다’를 보여주려는 듯 “이젠 다 지나간 이야

 

기’라는 감독의 허탈해 하는 마지막 외침이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기꺼이 ‘감독의 강

 

요’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그런 영화다.

 

 

 

'눈물의 왕자'는 1950년대 대만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멜로드라마다. 1949년

 

중국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장제스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나듯 도망쳐 온다. 곧 다시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과 본토 수복에 대한 집념이 강한 만큼 공산당에 대한 증오는 더 깊어만 갔고 결국

 

은 ‘마녀 사냥 식’고발로 ‘죄 없는’ 수많은 인민들이 매카시즘의 제단에 피를 뿌려야 했다.

 

 

1950년부터 4년간 대만에서만 공산당 스파이라는 혐의로 3000명이 처형당하고 8000명이 투옥됐다. 그

 

투옥된 사람들의 감옥에서의 시간이 1만 시간을 훨씬 더 넘었다.

 

1954년 매카시즘 쓰나미가 절정에 달했던 무렵 공군 조종사들이 모여살고 있는 부대 주변을 무대로 펼

 

쳐진다. 초등학교 1학년생 상고머리 계집아이 샤오주는 아주 당돌한 꼬마 아가씨다. ‘꽃미남’ 담임선생님

 

을 찾아가 자신이 커서 어른이 되면 선생님과 결혼할거라며 ‘약식 프로포즈’를 할 정도로 당차다.

 

 

 

샤오주는 어느 날 선생님과 함께 ‘접근 금지구역’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린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렇

 

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어쩌면 영화 밖 현실에선 ‘대만의 유명 관광지’일 듯해 보일 정도로 빼어난 풍경

 

이다.

 

 

‘금지구역’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죄목으로 선생님은 체포되었고, 샤오주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겨우 여덟 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녀이지만 ‘상실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파일럿인 미남 아빠와 요리 솜씨가 탁월해 만두를 빚어 생계에 보태고 있는 미인 엄마 아래서 샤오주와

 

언니 샤오리는 행복한 유년시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이름의 마녀는 그 단란했던 가족의 행복함을 시샘이라도 하려는 듯 아빠와 엄마를 ‘사

 

상(思想)’의 이름으로 빼앗아간다. 이른바 대만 이주 초기 국민당에서 벌인 대대적인 ‘숙청작업’의 희생양

 

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외치는 아빠는 죄인 주제에 너무 당당하게 굴어 ‘괘씸

 

죄’까지 뒤집어 쓴 채 사형당하고 만다.

 

 

아빠의 처형장면을 몰래 지켜본  샤오주는 또 다시 '상실감'을  느낀다. 소녀는 감정적으로 부쩍 성숙한

 

다. 초1년생 계집아이가 '결혼 상대'로까지 여겼던 선생님과 아빠를 몇 달  간격으로 잃었을 때 어린 가

 

슴은 얼마나 크게 패였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함께 투옥되었던 엄마는 다행히도 무사히 출옥해 자매 곁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샤오주 자매는 아빠

 

를 ‘고발’한 사람이 매일 함께 식사를 했던 아빠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단란했던 시절 이 어린 소

 

녀들이 ‘삼촌’이라 불렀던 남자는 출옥한 엄마와 ‘한 집’에 살게 된다.

 

 

소녀들의 눈에 비친 이 이해할 수없는 ‘어른들의 세계’를 보며 언니 샤오리가 눈물로써 엄마에게 항의한

 

다. “동네 사람들이 뒤에서 우릴 보고 뭐라 욕하는 줄 아나”라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렇잖아도 샤오리는

 

이 엄마의 ‘친딸’이 아니어서 ‘계모’의 눈치를 보며 커왔기에 그 설움이 더한 것이다. 결국 엄마는 자신이

 

낳지는 않았지만 친딸처럼 길러온 샤오리를 얼싸안고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었다”고 말

 

하며 함께 통곡한다.

 

 

 

아직 어린아이들로만 알았던 샤오주 자매는 어느새 ‘현실’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알게 된 조숙한 소녀

 

들로 성장해 살벌한 삶의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쓴다. 어린 소녀들의 그런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눈물의 왕자’는 영화 속에서 사람의 운명을 가르는 ‘불길한 책’ 제목이다. 우리말로는 아마 ‘행복한 왕

 

자’로 번역되 나온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같다. 이 동화를 ‘불온 서적’으로 간주한 국민당의 ‘반공정신’은

 

국민들을 숨막히게 만든다. ‘눈물의 왕자’를 통해 어린아이들 뇌에 사상교육을 주입하고 있다는 건 반쯤

 

은 맞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샤오주에게 ‘눈물의 왕자’를 선물했다는 이유로 샤오주 엄마의 소녀시절 라이벌로 이제는 노(老)장군과

 

결혼한 엄마친구 우양은 장군의 부인이라는 탄탄한 신분이었음에도 스파이로 몰려 결국 ‘자살’로 생을 마

 

감할 정도로 매카시즘의 오랏줄은 무차별로 사람들을 잡아들인다. 노장군도 어린 아내와 함께 ‘스파이활

 

동’을 했다는 터무니 없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처형되고 만다. 그녀의 죽음도 무고에 의한 것이었다. 광기

 

의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렇게 광기어린 ‘사상적 쓰나미’는 힘없는 국민들을 마구 쓸어가 버리면서 세월 속에 침몰해 간다.

 

‘눈물의 왕자’를 사상적 교재로 치부했던 케케묵은 시절의 이야기지만 인간의 사랑과 욕망 배신과 타협이

 

숙수(熟手)의 솜씨로 잘 빚어져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영화를 보고 나니 나의 ‘취미생활’인 감독 나이 맞추기라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과연

 

감독의 나이는? ‘수준있는 영화’를 보고난 뒤, 감독의 나이를 알아맞히는 일을 재미 삼아 해왔기에 이번

 

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지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양범이라는 감독이름을 처음 들었을 정도이니 그에 대한 정보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다. 오히려 이런 경

 

우가 취미활동에는 윤활유 노릇을 한다. 전혀 모르는 영화감독의 영화를 보는 시선이나 줄거리 다루는 솜

 

씨, 주연배우들의 연기력, 생명에 관한 감독의 철학 이런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의 팁이 제공

 

되면 나이 알아맞히기는 아주 재밌어서 감정유희에는 안성맞춤이다. 감독의 '나이'를 알아맞히는 이 ‘작

 

업’은 내 삶에 양념 같은 요소이기도 하다.

 

 

 

영화 속 그 아름다운 수채화 같은 자연의 풍경과 티 없이 맑은 소녀들의 우정, 그리고 사랑 앞에 눈이 멀

 

어 친구를 죽음의 나락으로 밀어뜨리고 나서야 회한의 눈물을 짓는 사나이, 시대의 광풍에 몰려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늙은 장군의 젊은 아내... 이런 인간 군상들의 삶을 원대한 시각아래 유려한 영상미로 담

 

아낼 수 있다는 것은 감독의 역량과 기량이 최상의 지점에 왔다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의 나

 

이는 60대 일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해 봤다. 내가 보기에는 영화감독의 최전성기 기량은 60대 같다.

 

 

검색창에 양범을 치니 1947년생이라고 나와 있다. 박수!! 아 나의 영화를, 감독을 바라보는 ‘내면의

 

창’엔 아직 먼지가 쌓이지 않았다는 말이다.자축하고 싶다. 브라보! 마이라이프! (유행가 제목같네요^^*) 

 

 

*IP TV를 소유하고 있는 네티즌들에게 ‘눈물의 왕자’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