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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이대근이 말하는 영화-영화는 최고의 예술이었고, 그래서 내 인생은 아름다웠다

스카이뷰2 2011. 11. 15. 12:54

지난 10월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한 이대근(뉴스엔사진.)

정통 연극배우로 출발했던 이대근의 영화사랑은 대단하다.

                            

 

 

영화배우 이대근이 말하는 영화-영화는 최고의 예술이었고, 그래서 내 인생은 아름다웠다

 

‘영화배우 이대근’이라면 요즘 ‘2040’세대들은 대뜸 이럴 것이다. “뉴규?”

50대 이상이라면 이대근을 액션·에로 배우로 기억할 것이다. 특히 1980년대 정윤희나 강수연, 이미숙 같이 당시 내로라했던 여배우들에게 ‘마님!’이라고 부르며 엎어지는 삼돌이 혹은 돌쇠 아니면 우락부락 변강쇠로 그녀들을 휘어잡거나 아니면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같은 ‘주먹쟁이’형님들로 그를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소위 ‘대물’이라는 희한한 별칭이 따라다녔던 이대근은 그러나 이제 ‘영화철학자’로 변해 있었다. 우리나이로 일흔하나. 고희를 넘겼지만 그의 기개는 ‘2040’ 못지않아 보였다. 밀린 신문을 정리하다가 며칠 전 실린 <‘한국 마초의 아이콘’ 배우 이대근>이라는 어려운 제목의 인터뷰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대중이 보는 신문에 마초는 뭐며 아이콘은 뭐란 말인지 짜증이 날 정도다. 물론 알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제목만 훑어보려다 이대근의 '말씀'에 끌려 단숨에 다 읽었다. 그만큼 이대근의 ‘대갈일성’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대근은 “변강쇠를 지금도 에로영화로 분류하고 있는 한국사회는 무식하다”했고, “극좌세력이 좌지우지해온 한국영화판”에 대해 통렬한 질책을 날렸다. 멋있게 보였다. 특히 그 나이의 남자배우로선 뜻밖에도 영화예술이나 사랑, 자녀 교육 등에 대해 섬세한 '자기세계‘를 보여줘 ’원로배우‘로서 대접받을 만큼 잘 늙어왔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사람을 비교하는 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며칠 전 한 신문에 나왔던 ‘신성일 인터뷰’와는 대조적이었다.

신성일이라면 한국영화판에선 거의 ‘황제’대접받던 자타가 공인하는 톱스타였지만 언제부터인지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이 노배우의 생각이나 일상은 실망을 넘어 ‘노추’라는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며칠 전 인터뷰에서도 50대 애인이 ‘모든 걸’ 체크해준다면서 부인 엄앵란과는 1km떨어진 곳에서 따로 살며 가끔 만나 밥 먹는 사이라는 말을 해 네티즌들의 ‘댓글 비난’을 엄청 받기도 했다. 나도 그 기사를 보면서 혹 이 노배우가 치매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전히 자신을 '섹스심벌'로 보여지고 싶어하는 늙은 남자의 모습이 측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일흔 다섯살 신성일에 비해 불과 네 살 연하인 이대근은 ‘시야’가 넓었다. 호쾌했다. 달관의 경지를 보여줬다. 늙은 남자로서 그 정도의 기개를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것 같다. 

 

그는 1980년대 초, 일찌감치 ‘기러기 아빠’신세로 고생했지만 세 딸 중 큰 딸과 둘째가 미국 명문대 약학박사 출신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차관급 고위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을 만큼 ‘자식농사’에도 성공한 ‘다복한 가장’으로서의 면모도 갖고 있다. 한국남자배우로는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다. 

 

누구처럼 50대 '젊은 애인'이 있다는 걸 자랑하는 게 아니라 ‘딸바보 아빠’ ‘공처가’로서 쥐여 살고 있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공개해 ‘관객’에게 신뢰감을 선사해주는 것도 멋있다. 검색창을 열어보니 1941년생이대근은 A형, 게자리였다. 별자리와 혈액형이 보증해주는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아빠’ 무엇보다도 ‘효자’로서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모친의 병수발을 직접 들었고, 돌아가신 뒤 6년 동안이나 매주 한 번씩 모친 묘지에 꽃을 들고 찾아갔다는 ‘고백’은 고희를 넘긴 이대근을 아름다운 남자로 보이게 했다. 요즘 이런 '효자' 거의 없지 않은가.

섬세하고 잔정 많고 착하다는 그런 품성 품평에 대해  이대근 스스로도 자랑처럼 이렇게  말한다.

 

“여자들 보기에 내가 좀 착하게 생겼대. 우악을 떨어도 여자 앞에선 꼼짝 못하는 놈으로 비치나봐. 사랑이 좀 있는 것처럼 보이나봐. 드라마 ‘역풍’을 찍을 땐 우체부가 타이탄 트럭으로 내 팬레터를 싣고 스튜디오로 들어왔으니까요.” 요즘  꽃미남 아이돌 연예인보다 한수 위였던 것 같다. 

"꽃미남이 다 뭐예요. 하룻밤을 자더라도 목숨걸고 싶은 남자여야 매력적이지. 안 그래요? 무엇보다 요즘 젊은영화인들 철학이 없어보여. 그 시대를 직시하면서도 멀리 보는 눈이 있어야 예술인 아닌가." 

 

내가 보기에 ‘어머니 아내 딸 사랑’이 지극한 이대근의 성품은 게자리 A형 남자의 DNA덕분도 크다고 본다. 대개 그 부류의 남자들이 자애로운 아빠이면서 효자 그리고 애처가가 많다.

어쨌든 이대근은 ‘자부심이 충만하면서도 겸손한’스타일의 배우인 듯하다. 누구처럼 오만이 극을 달려 ‘밥맛 떨어지는’ 그런 노배우는 아니어서 좋다. 오만은 패망의 선봉장이라 했거늘...  

 

이대근의 ‘사랑론’도 경청할 만하다. 꼭 무슨 목사님 설교말씀 같다. 알고보니 그는 교회장로라고한다. 

“사랑은 정지하면 썩어요. 그게 사랑의 최대 약점이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는 날까지 노력하고 정지하지 않고 사랑해야 굴러가는 게 사랑이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순간만 좋아라 하고 시련이 닥쳤다고 정지하면 사랑은 실패한다고. 사랑은 이성으로 하는 거라고. 나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사내는 여자를 보호하고 책임질 능력이 있어야 하고, 여인은 그 남자를 받아주고 위로하고 아이처럼 보살펴야 아름답지.”

 

그래선지 이대근은 금지옥엽으로 키운 세 딸을 시집보낼 때 사위들에게 장인어른으로서 이렇게 한 마디 했다. “절대로 내 딸들을 배신하지 마라. 책임져라. 보호관리하라. 그거 못하면 사내가 아니야.”

마치 영화 대부(God Father)1편에서 말론 브란도의 육성이 오버랩돼 들려오는 듯한 ‘대사’다. 아버지의 듬직한 어깨에 어린 딸들이 매달려 어리광 부리는 아름다운 풍경도 겹쳐진다.

 

이제까지 해로해온 아내에 대한 ‘충성도’도 대단하다. 거의 경처가 수준이다.

“나보다 공부 잘했으니 머슴처럼 섬겨야지. 떨어져 있어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통화해요. 별일 없나? 나는 잘 있으니 오케이. 사랑은 정지하면 안 된다고 했지요? 와이프는 내가 모자라는 게 많은 남자라는 걸 알아요. 나는 영화 한 가지만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른다고, 자동차 오일 가는 것도 모르고 사기도 많이 당하고 하지만 내가 착한 사람이라는 걸 아내는 알아요. 불현듯 가족이 그리워지면 바로 비행기표 끊어 워싱턴으로 날아가는데. 나 좋아하는 음식 한 상차려 놓고 기다리지요. 우리 와이프가.” 이 정도면 이대근이라는 남자,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대근의 ‘미인관(美人觀)’도 ‘외모’를 중시할 것 같은 여느 배우들 같지 않다.

“진선미(眞善美)를 이기는 게 귀(貴)예요. 귀할 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아무리 까불어도 엘리자베스 여왕 옆에 서면 식모야, 식모. 이방자여사도 생전에 얼마나 귀티가 나셨는지. 제 아무리 예쁘다는 여배우들도 그 분 곁에 서면 단박에 초라해졌지. 화장품만 들이 때린다고 성형만 한다고 아름다워진다고요? 웃기고 자빠지라고 해. 귀(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을뿐더러 마음에서 우러나와야지요. 아무리 젊고 예뻐도 그가 가진 생각과 철학이 엉터리면 결코 귀해질 수 없어요. 차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 안 든다고.”

 

현재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좌클릭 경향이 강하다. 영화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그런 좌파가 승하는 영화판에 대해 원로배우 이대근은 몹시 걱정하고 있다.

“내가 이승만 정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을 다 겪었는데 그 사이 우리 영화계에도 좌파 우파가 생겨납디다. 좌파 좋지요. 비판할 수 있어. 그런데 극좌는 안돼요. 선배고 뭐고 없어. 저희끼리 똘똘 뭉쳐서 영화진흥기금 다 해먹고 자기네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화도 못하게 해요. 그 돈 가지고 전부 좌파 영화 만들었잖아요. 수익금으로 정치자금 만들고. ‘바다이야기’ 총책이 누구에요? 예술가는 그렇게 살면 안돼요.

열흘 보는 꽃이 없고, 3대가는 부자 없어요. 영화는 커피 팔듯 하는 산업이 아니에요. 정신 산업이라고.”

 

이대근은 지난 10월17일 제48회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후배 배우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 100년이 지났다. 영화 역사 이끌어 오면서 후배 영화인들이 세계 영화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훌륭한 작품 내놓고 있다. 영화만 생각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 이 자리에 섰다. 짧은 생은 아니지만 영화만큼 아름다운 세상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를 더욱 사랑한다. 남은 인생 영화를 위해 최선 다하라는 걸로 알고 기쁘게 받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에 후배들은 다시한번 기립박수로 원로선배의공로상 수상에 축하를 보냈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영화를 선동의 수단으로 혹은 정치자금 조달수단으로 생각한다는 극좌파 후배영화인들은 물론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쩌면 이대근의 이런 영화에 대한 '충정심'을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수단'으로 치부하는 좌파 입장에서야 이대근식 영화관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어느 것이 옳다그르다를 떠나 최소한 선배에 대한 예절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이대근은 다시 태어나도 영화를 하겠냐는 질문엔 “그건 다시 태어나 봐야 알겠어요. 액션 영화 찍으면서 죽을 고비를 하도 많이 넘겨서. 우하하하.”라고 답했다. 재치있는 답변이다.

이대근은 2007년 주연을 맡았던 ‘이대근, 이댁은’이라는 영화를 자신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는다면서 “그 작품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 후보로 올랐죠. 내가 연기로는 누구에게 져본적이 없는데 무슨 변고인지 주연상이 ‘라디오 스타’의 안성기 한테 갑디다. 우하하하”라고 호쾌한 웃음을 날렸다.

 

그는 영화는 아무리 천재배우라도 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영화배우는 노동자처럼 스포츠맨처럼 연습에 연습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어디 '연습'이 필요한 게 영화뿐이겠는가. '연습'없이 태어난 게 우리네 인생들이지만 연습없이는 무엇을 이루기 힘든 것도 우리 인생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 노배우는

자신이 '일가'를 이룬 영화세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영화는 TV연기의 300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해요. 영화는 최고의 예술이었고, 그래서 내 인생은 아름다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