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병기 활·써니·완득이·도가니 vs
평양성·7광구·푸른 소금의 흥행 운명
예전부터 영화와 책, 주식의 ‘흥행’은 오로지 신만이 안다(G.O.K)는 속설이 있다. 사실 우리네 인생 자체가 ‘각본 없는 시나리오’ ‘연습 없는 본 게임’이다보니 굳이 이 세 분야의 흥행만 모른다고 말한다는 건 다소 어폐가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 아닌가. ‘돈’이 말하는 자본주의시대에 ‘돈’과 연결이 안 되는 분야가 없다 보니 그런 ‘속설’이 떠돌고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거대 자본’이 속속 들어오고 있는 영화판에선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라는 흥행공식이 통할 법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이 영화 흥행이다. 설마? 했던 영화가 수백만 관객을 단숨에 끌어들이는가하면 수백만 동원은 ‘식은 죽 먹기‘라고 목에 힘줬던 영화가 의외로 참패하는 경우도 자주 본다.
금년 방화(邦畵)계에서도 이변이 속출했다. ‘뜰 줄 몰랐다’는 영화들이 관객 동원 기록 1,2위를 다퉜는가 하면 감독 좋고, 배우 좋고 신기술이라는 3D 동원까지 해, 흥행몰이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던 영화들이 나가 떨어지는 기록도 세웠다. 하지만 가만 보면 ‘망한 영화’든 ‘흥한 영화’든 조금만 생각해 보면 ‘흥망’;의 싸인(sign)이 느껴지게 마련이다.
올해 개봉한 국내영화 중 흥행기록 1,2,3위를 기록한 최종병기 활, 써니, 완득이 등은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흥행을 예감한 작품들이다. 예언가나 영화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체로 ‘뜨는 영화’는 어느 정도 흥행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그 바로미터는 바로 ‘입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변에 그 영화를 본 사람이 세 사람 이상 되는 영화는 거의 ‘흥행’에 성공하는 걸 그동안 수없이 봐왔다.
금년 최고 흥행작인 ‘최종병기 활’은 지난 8월 10일 개봉해 745만 9974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국내 최초 '활'을 소재로 한 사극 영화로 시원한 액션이 웬만큼 볼 만한 영화일 것이란 얘기는 있었다. 같은 무렵 개봉한 ‘쟁쟁한 스케일’의 고지전, 퀵, 7광구를 따돌리고 여름 극장가의 승자가 되리라는 기대는 제작사 측에서도 별로 하지 않았다는 후문이 들린다.
하지만 나는 ‘최종병기 활’이 다른 세 영화보다 꽤 흥행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가 개봉한 뒤 며칠 후, 이웃집 초등5년생과 중학생 형제가 엄마랑 함께 ‘최종병기 활’을 봤다면서 ‘굉장히 재밌었어요“라고 내게 자랑하는 순간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게다가 그 무렵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가 히트했던 것도 흥행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의 여주인공 문채원이 ‘활’에 나온다는 소식은 이 여배우의 팬들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시너지 효과’라고나 할까. 문채원은 이 영화로 신인여우상까지 탔다. 주연을 맡았던 박해일이나 조연 류승룡도 ‘호연’을 인정받아 각각 남우주연상, 조연상을 받았다. 아무래도 ‘활’덕분에 상복(賞福)이 별로 없는 배우들로 알려졌던 이 남자배우들이 나란히 주요 상을 받은 걸 보면 ‘활’은 작품성에서도 그다지 밀리지 않았던 작품인 듯하다.
아무튼 ‘활’을 본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만 5명이상 인 걸 보면서 ‘활’이 흥행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았다면 다소 김 빠진 맥주 맛 같은 소리겠지만 어쨌든 ‘활’은 ’입소문‘이 얼마나 주요하다는 걸 또 한번 입증해준 셈이다.
‘써니’도 마찬가지다. 감독이 ‘과속스캔들’이라는 영화로 재작년인가 데뷔작을 최고흥행작 으로 만든 ‘운 좋은’ 감독이 만든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웬만큼은 흥행할 것을 예상했었다.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백화점 푸드 코트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가 옆 좌석에 앉았던 30,40대 주부분위기의 아줌마들이 “써니 재밌더라”면서 깔깔 웃는 걸 보고 그 영화가 흥행될 걸 예상했다.
더구나 내가 알고 있는 ‘참한 여대생’도 이 영화가 재밌다는 이야기를 했다. ‘복고 열풍’의 사회분위기도 영화흥행에 일조를 했다고 본다. 팝송 ‘써니’를 비롯해 그 시절 유행했던 팝송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부조’를 한 셈이다. 흘러간 ‘여고시절’을 그리워하는 ‘젊은 아줌마’들이 대거 영화관 나들이를 한 것 무엇보다 큰 힘이 된 것 같다. 써니는 총 737만 4920명의 관객이 들었다. 써니를 감독한 강형철 감독은 ‘과속스캔들’에 이어 흥행기록 ‘금메달 2관왕’이 된 셈이다.
개봉 46일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한 ‘완득이’ 역시 ‘입소문 파워’가 위력을 발휘했다.
‘완득이’라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열여덟 살 반항아 완득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성장영화라는 점에서 다양한 관객층의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고 한다. 제작사 측에서도 250만명 정도의 관객을 예상했지만 ‘곱배기 이문’을 낸 셈이다.
11월 초쯤, 평일에 동네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봤다. 평일인데도 객석이 꽉 찬 걸 보고 놀랐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쿵쾅거리는 카바레 음악이 쓰나미처럼 객석을 압도하는 걸 보면서 ‘영화 장사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이 탄탄한 데다 김윤석과 유아인 콤비가 보여주는 코믹하면서도 뭉클한 장면 하나하나가 ’흥행 보증수표‘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본다.
더구나 요즘처럼 ‘다문화 가정’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사회분위기에서 갓난쟁이때 자신을 버리고 간 필리핀인 엄마를 ‘외면’하지 않고, 밤무대가 생계 터전인 장애인 아빠를 늘 걱정하는 착한 완득이의 모습은 모처럼 관객들의 마음을 녹여줬다. 그러니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이 모여든 건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다.
‘도가니’는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돈 안들이고 ‘매스컴’에 저절로 광고가 된 아주 희귀하게 운 좋은 케이스의 영화였다. 마침 장애인 시설에서 끔찍한 성추행, 폭행을 당한 장애인들에 대한 매스컴의 대대적인 보도는 관객들에게 티켓을 끊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저 들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도가니’에 빠진 듯한 엄청난 회오리 바람 속에 400만 명이 넘는 관객동원의 기록을 세웠다.
반면 ‘왕의 남자’로 대한민국 영화사상 최단시일에 1천만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이준익 감독의 ‘평양성’은 지난 1월 27일 개봉, 171만 9684명이란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박스오피스는 25위. 제작비 대비 부진한 성적으로 이 감독은 상업영화 은퇴를 선언했다. 흥행에 성공해야 한다는 건 영화감독들을 옥죄는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다. 이 감독도 오죽하면 ‘은퇴선언’을 했을까, 이해할 수는 있지만 다소 성급한 선언 같기도 하다. 일본의 감독들 중엔 80대 현역도 꽤 있는 것 같던데, 이제 50대 중반쯤 된 나이는 80대에 비하면 청년아닌가.
1천만이상 관객동원한 감독 중 한 명인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과 '화려한 휴가' 김지훈 감독이 의기투합하고 하지원이 주연을 맡은데다 안성기 등이 조연배우로 출연,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7광구는 ‘국내 최초 3D 영화’라는 대단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224만명이 들어 기대치에 훨씬 못미치는 ‘참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실패’에는 다 그만한 원인이 있는 법이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이 공연히 있겠는가. 이 영화는 스토리텔링도 미흡한데다 영화 고유의 매력적인 요소도 거의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푸른 소금’은 ‘연기파 배우’로 관객 동원 파워도 웬만큼 인정받고 있는 송강호와 신세대 스타 신세경이 주연을 맡아 관심을 끌긴 했지만 관객동원에 실패했다. 영화 포스터만 봐도 별 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11년 만에 컴백한 감독의 ‘감’이 녹슬었다는 혹평도 받았다.
아무튼 ‘뜬 영화’와 ‘진 영화’는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제목부터 시작해 OST, 포스터, 주연배우의 눈빛 등등 온갖 ‘흥행요소’들이 영화의 생명인 ‘흥행’을 좌지우지한다. 지나놓고 보면 성공과 실패의 요소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소리야 ‘사후약방문’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군들 흥행에 성공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흥행에 성공할 수는 없는 게 이 세상의 법칙인 것이다. 누구나 '위너'가 되고 싶지만 위너의 자리는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안다.
어쨌든 올해 한국영화에 누적 합계 3천여만명의 관객이 몰렸다는 건 희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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