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지 책방에서 책을 사들고 나오는 오바마대통령과 딸들.(다음뉴스사진)
소설 좋아하는 오바마가 지난 여름 읽은 소설책들
역대 미국대통령 중 가장 문장력이 좋은 대통령으로 인정받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필력은 아마도 끊임없는 소설읽기에서 그 원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이 되고나서 맞은 여름휴가 때마다 오바마는 꼭 소설책 서 너권을 여행가방 속에 챙겨갔다.
우리나이로는 쉰 한 살이지만 딸들이 아직 어려선지 오바마는 ‘젊은 아빠’무드를 잃지 않고 있다. 늦게 본 딸들 덕분에 아빠의 젊음이 유지되고 있다는 건 재밌는 현상이다. 어린 딸들의 세계에 동참하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오바마는 큰 딸이 일곱살때 집에 데려온 남자친구에게 악수를 청하다가 딸에게 '주의'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 식의 악수는 정치인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미국 최상류사회 인사들이 여름휴양지로 가장 선호한다는 마서스 비니어드 섬은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다. 특히나 케네디 대통령이 여름 휴가를 보내면서 더 유명해진 마서스 비니어드 섬에는 ‘번치 오브 그레이프스(Bunch of Grapes)’라는 서점이 있다. 이 책방은 오바마의 단골 가게다. 딸들에게 사줄 책들을 오바마는 이곳에서 구입한다.
올해로 세 번째 여름휴가를 이 섬에서 보낸 오바마는 두 딸 말리아(13)·사샤(10)와 함께 이 책방에 들러 책을 사고 그 옆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딸들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것으로 여름휴가를 시작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책방에서 직접 구입한 책은 루이지애나주(州) 늪지대를 배경으로 한 대니얼 우드럴의 추리소설 '베이유 3부작(Bayou Trilogy)'과 워드 저스트의 성장소설 '로딘의 데뷔(Rodin's Debutante)'다.
이중 '로딘의 데뷔'는 주인공이 시카고 남부 빈민가로 이주하고 나서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로, 오바마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하기 전 시카고에서 지역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지난 여름 오바마의 여행가방 안에는 데이비드 그로스먼의 소설인 『땅끝까지(To the End of the Land)』, 머리가 한데 붙은 채 태어난 에티오피아 샴쌍둥이의 미국 여행을 그린 에이브러험 베르게즈의 소설 『커팅 포 스톤(Cutting for Stone)』, 미국 흑인들이 남부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과정을 담은 이사벨 윌커슨의 역사서 『다른 태양의 따뜻함(The Warmth of Other Suns)』이었다.
아직도 문학소년 같은 감수성을 갖고 있는 듯한 오바마 대통령의 소설취향은 ‘모성애’를 테마로 한 콧날 시큰해지는 내용이나 건실한 청년이 빈민촌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겪는 노동현장의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정치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소설류를 좋아한다고 백악관측은 밝혔다.
오바마는 여름 휴가 때만큼은 꼭 소설책을 읽는 즐거움을 양보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제일 강대국 대통령이 소설책 읽는 취미가 있다는 건 왠지 멋진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미국에서도 유명인사가 어떤 책을 재밌게 읽고있다거나 읽었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타게 되면 그 책은 곧
바로 ‘베스트셀러’의 운명이 된다고 한다. 실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 몇 권 있다.
언젠가 오바마대통령이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네덜란드’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면서 “굉
장한(wonderful) 책”이라고 말하자마자 판매량은 40%나 뛰었고,10만부 가량이 팔렸다고 한다.
그 바쁜 미국 대통령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서평을 내놓는다는 것은 참 부러운 현상이다. 대단한 ‘오바
마파워’다. 소설 ‘네덜란드’는 뉴욕시 맨해튼에 사는 네덜란드 출신 한 금융분석가의 이야기다. 9·11 테
러이후 충격을 받은 아내와 점점 멀어지면서 별거까지 하게 된 주인공은 홀로 뉴욕에서 휴가를 보내다 한
사업가와 친하게 되면서 오래전 잊었던 크리켓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준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다룬 소설인 듯하다. 미국의 정치전문 사이트 폴리티코는 “오바마가 자
신의 침대 옆 탁자에 올려놓는 책 이름을 말하면 그 책에게 좋은 일이 생긴다”고 보도했다. 아주 낭만적
이면서 동양적 분위기가 감지되는 이야기다. ‘귀인’을 만난 책들의 ‘운명’이 바뀐다는 스토리는 그 자체로
도 재미가 있다.
한 출판 에이전트는 “오바마는 대통령인데다 법학자이고 자신이 쓴 책도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에 추천 신뢰도가 엄청나게 높다”고 ‘오바마 문화파워’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오바마는 지적 호
기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흑인 여성방송인 오프라윈프리의 책 추천보다 훨씬 힘이 있는 것이라는 분석
도 나오고 있다.
오바마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당시 기자가 “언제 책을 읽느냐”고 묻자, “잠자기 전 30분 동안 읽는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재밌게 읽은 소설 ‘왓 이즈 더 왓(What is the What)은 실존인물인
수단의 난민 발렌티노 아크 뎅(Deng)이 무슬림테러단체에 의해 마을이 짓밟힌 뒤 가족들과 떨어져 살며
고군분투한다는 이야기다.
오바마는 이 책을 보좌관들에게도 꼭 읽어보라고 권했었다. 멋있고 부러운 풍경이다.
대통령이 아랫사람들에게 “이 소설 한번 읽어 보게나”라고 권한다는 대목에서 ‘미국의 파워’를
새삼 느껴볼 수 있는 것 같다.
오바마가 자신의 소설을 읽고 추천했다는 소식을 들은 저자 데이브 에거스는 “오바마가 내 소설을 읽었다
니 엄청난 영광이다. 한 남자가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 맞서는 이야기라 오바마 대통령이 공감한 것 같
다”는 소감을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덕분에 돈도 벌고 유명해진 작가들은 어쩌면 내년 11월에 열릴 대통령선거에서 오바마의
재선 성공을 은근히 바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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