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聖者’ 같은 브라질 직전 대통령 룰라-“정치가 뭐냐고요? 어머니의 마음이죠”

스카이뷰2 2011. 11. 1. 12:52

조선일보 최우석 기자 사진.

 

 

 

'聖者’ 같은 브라질 직전 대통령 룰라 ,“정치가 뭐냐고요? 어머니의 마음이죠”

 

 

“정치가 뭐냐고요? 어머니의 마음이죠.”오늘 아침, 이렇게 간결하게 정치를 정의한 브라질 직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Lula) 다 실바는 예순여섯 초로(初老)답지 않게 혈기왕성한 표정이다. 어쩌면 그리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 마음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하는지 신문에 실린 그의 인터뷰기사 전문을 내리 세 번 읽어본 아침이다.

 

‘브라질의 聖者’로까지 대접받는 룰라는 1945년 10월, 가난한 소작농 아버지의 8남매 중 7번째 아이로 태어나 가난 탓에 10세 때에야 간신히 학교에 입학했지만 초등 4년 때 역시 가난 땜에 중퇴했다. 초등 4년 학력이 전부다. 거의 무학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요즘 유행어인 '무학의 통찰력'덕분인지 룰라는 브라질 역사를 바꾼 혁명적 지도자로 대통령을 마치고 퇴임할 무렵 지지율이 무려 87%나 되는 '경이로운 기록의 소유자'다. 그만큼 룰라의 마음이 브라질 국민을 위한 진정성으로 가득했기에 가능한 현상일 것이다.

 

열 두어 살 어린 나이에 상파울루의 거리에서 행상과 구두닦이를 하며 돈을 벌다가 금속공장에 들어갈 기회를 얻게 된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1963년 18세 때, 금속을 깎아서 가공하는 기술인 선반공 자격증도 취득했다. 이듬해 공장에서 근무 중 사고를 당해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브라질 사상 첫 노동자 출신 대통령자리에 오르기까지 그의 인생스토리는 어떤 드라마보다 ‘눈물어린 스토리’로 이어져왔다. '눈물의 진정성'이 그를 키운 정치적 자산이었던 셈이다.

 

1968년, 스물다섯 살 착실한 선반공 남편은 곧 세상에 태어날 첫 아기를 위해 배냇저고리를 준비할 정도로 다정다감한 ‘예비아빠’였다. 하지만 같은 노동자 출신 아내는 무리한 노동탓으로 간염을 앓다가 1969년 뱃속의 아기와 함께 치료도 못 받고 죽는 비운(悲運)을 당했다.

이때부터 청년 룰라는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브라질 가난한 노동자들의 ’대부‘로 맹렬히 활동하면서 그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도자로 거듭나게 되었다.

 

세 번의 도전 끝에 2002년 대통령자리에 오른 룰라는 브라질 사상 연임에 성공한 첫 대통령으로, 작년 퇴임 시 지지율 87%라는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 ‘미련없이’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룰라는 퇴임 연설에서 눈물을 흘리며 모든 업적은 ‘초등학교 밖에 다니지 못한 나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브라질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합니다“고 말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눈물의 룰라‘라는 별명이 붙여지는 순간이었다.

 

오늘(1일) 외신을 보니 룰라는 지난달 31일 후두암 진단을 받고, 치료차 브라질 상파울루 시내 시리오-리바네스 병원에서 화학 치료를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병원 의료진은 "앞으로 4개월 정도 치료를 받으면 암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질과 브라질 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 같은 룰라 전 대통령의 쾌유를 이 자리를 통해 빈다.

 

 

<오늘 Chosun.com에 실린 기사전문을 소개합니다.>

 

 

"젊은이들, 좌·우파 관심 없어… 바라는 건 희망·자존심·일자리"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Lula) 다 실바(66) 브라질 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멕시코 케레타로에서 열린 '멕시코비즈니스서밋'에서 본지와 만나 "어느 나라나 젊은이들은 권력보다는 희망을 갖고 싶어하고, 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한다"면서 "사회 통합 대상에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젊은이들도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물병을 들고 온갖 동작을 해가면서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취임 초기엔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중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노조위원장 출신인 내가 대통령 됐다고 분배만 했더라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성장이 멈추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연간 7%씩 성장하면서 사회를 통합하는 방안을 찾았다."

 

―룰라 경제 정책의 핵심은.

"극빈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사회 대부분이 중산층인 브라질 건설은 다음 대통령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초석을 다진 걸로 만족한다."

 

―기업인의 불신을 어떻게 극복했나.

"노조 출신이지만 자본과 노동이 화합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날 믿지 않아서 기업인·자산가·노조 등 사회 각계각층 100명이 참여하는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었다. 노조원이나 기업인이나 모두 같은 커피를 마시며 대화했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들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

 

―좌파이면서 우파 정책인 감세 정책을 폈다.

"기업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감세를 골자로 한 세제 개혁 법안을 만들었다."

 

―어떤 사회 통합 정책을 폈나.

"극빈층에게 매월 85헤알(약 5만5000원)를 줬다. 부자들에게 이 돈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가난한 아이 엄마에게는 큰돈이다. 이들이 브라질 경제 체제의 소비자로 떠오르면서 서민 경제가 살아났다. 복지의 선순환이었다."

 

―나눠주면 다 써버리고 남는 게 없지 않은가.

"전기가 들어가지 않던 300만 가구에 전기를 무료 공급했다. 돈도 안 받고 110만㎞에 이르는 전선을 깔았다. 이건 극빈층에 대한 투자였다. 전기가 들어가자 극빈층의 80%가 TV를 샀고, 75%가 냉장고를 샀다. 50%는 오디오를 구매했다. TV·냉장고·컴퓨터 회사가 잘됐다. 가난한 사람들도 소비자가 된 것이다."

 

―포퓰리즘이란 비난은 없었나.

"사회 통합은 정치 이념이 아니다. 힘들어질수록 더욱 필요한 게 사회 통합이다. 사회 통합 프로그램을 추진한 결과 5200만명이 혜택을 봤다. 사회 통합에 힘쓰다 보니 경제도 살고 분배도 됐다."

 

―당신 리더십이 한국에서 화제였다.

 "정치는 어머니 마음으로 해야 한다. 자식이 10명 있는데 닭 한 마리뿐이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 하지만 아이 하나가 다른 애들보다 약하거나 아프면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더 신경을 쓴다. 어머니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외받은 자들과 대화해야 한다."

 

―당신의 소통 방식은.

"아침에 출근하면서 아내에게 얘기하듯, 집에서 동생들과 얘기하듯 국민에게 설명했다."

 

―세계적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다.

 "경제 정책은 하버드대학을 나온 사람이 입안하면 된다. 하지만 국가에 위기가 왔을 때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환자가 병원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 의사가 환자에게 왜 왔느냐고 따져 묻지 않는다. 우선 출혈부터 멈춰 환자를 살려놓는다. 정치인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미국과 유럽 대학생이 시위하는 등 젊은이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올 3월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 초청으로 카타르를 방문했을 때 중동 민주화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젊은이들이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든 젊은이들은 희망, 자존심, 일자리, 민주주의를 갖고 싶어했다. 젊은이들은 권력을 바라지도 않았고, 좌파든 우파든 상관하지 않았다. 학교 졸업한 뒤 일자리가 필요했다. 젊은이들은 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할 따름이었다."

 

―당신은 개혁 대통령으로 유명했는데,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고 한다.

"기업은 사람 해고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민주 정치에는 노조와 언론 등 관계 기관이 있다. 일부는 찬성하고 일부는 반대한다. 대통령의 임무는 서로 다른 사회의 열망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개혁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다."

 

―그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관료들의 벽에 부딪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식수가 부족한 브라질 남부 지역에 생수를 공급하기 위해 우루과이로부터 생수를 수입하려 했다. 그러나 정부 관료들이 막았다. 자기들의 담당 업무와 권한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관료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 그게 관료의 속성이다. 결국 생수 문제를 해결하는 데 2년 걸렸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선거로 책임을 묻지만 관료는 그런 게 없다."

 

―다른 대통령에게 조언을 한다면.

"정치는 아웃소싱이 안 된다. 대리인을 내세울 수도 없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치를 해야 한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최우석 기자-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