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악관에서 13일 열린 한·미 정상 국빈만찬에서 미셸 여사가 입은 보라색 민소매 드레스는 재미교포 2세 디자이너 정두리씨가 디자인했다. 미셸 여사는 한국계 디자이너의 작품을 고르는 세심한 배려를 했다. /AFP 연합뉴스
오바마의 "jeong(情)"과 미셸 퍼스트레이디의 보라색 만찬 드레스
오바마 대통령내외의 친한(親韓)정서는 꼭 ‘정략적인 계산’에서 꾸며낸 것만은 아닌 듯하다.
‘한 미 FTA’를 위한 제스처에 불과한 것이라며 냉소적인 ‘反 FTA’파들은 여전히 이 젊은 미국대통령부부의 선의(善意)를 정치적 쇼로 치부하고 싶겠지만 말이다.
아침 신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13일 백악관에서 열린 이명박 대통령 부부를 위한 국빈(國賓) 만찬에서 '정(情·jeong)'을 한국어 그대로 5차례 언급하면서 "한·미 동맹의 핵심은 아주 한국적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며 "쉽게 번역되는 건 아니지만 바로 '정'"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情·jeong)’이란 단어는 우리 말에만 있는 독특한 정서적 개념으로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는 쉽게 번역되기 어려운 말이라는 건 예전부터 들어왔었다.
우리도 ‘정나미 떨어진다’라든지 ‘정이 없어’ 등 ‘정’이라는 말을 수시로 쓰긴 하지만 ‘정’을 명쾌히 외국인에게 설명하긴 어렵다는 걸 종종 느끼곤 한다.
조용필이 부른 ‘정’이란 노래도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라며 연인사이의‘정’에 대한 애틋함을 읊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도 잘 알 수 없는 그 ‘정’에 대한 이미지를 총명한 오바마는 ‘한 미 동맹’관계를 수식하는 단어로 끌어다 쓰면서 한국인의 정서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는 듯한 자세를 보여준 것이다.
이날 백악관 만찬에선 이명박대통령과 오바마대통령이 ‘정’에 대해 서로 의견을 주고 받는 등 이제까지 한미 정상들의 만찬장에선 볼 수 없었던 화기애애하고 친밀한 분위기가 좌중에 흘렀다고 한다.
오바마는 "나는 이 정(이라는 느낌)을 지난번 참전 용사의 날에,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는 날에, 한국을 방문하는 날에 느꼈다"며 "이것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는 '정'"이라고 말했다. 오바마다운 명민함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늘 느끼는 거지만 미국 국민들은 이 총명하고 선해 보이는 젊은 흑인 대통령을 선택하면서 ‘새로운 미국’에 대한 열망과 번영을 한껏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사실은 21세기 미국의 운명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임을 미국 국민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오바마라는 이 젊은 미국대통령의 대한민국에 대한 호의는 역대 대통령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오바마가 말한 ‘친한 발언’들을 모아보면 그가 어제 만찬에서 언급한 ‘정’이란 단어가 괜히 튀어나온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고 역시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가 된 미셸은 남편의 이런 ‘친한(親韓) 정서’에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오바마는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한 여성‘이라고 아내자랑을 하는 ’팔불출 사내‘지만
천하남이 보더라도 46세의 이 젊은 블랙퍼스트레이디의 총명함은 한눈에 느껴진다. 오바마는 미셸과 결혼해서 제일 좋은 점은 "그녀와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다시한번 아내자랑을 하곤하는데 그게 밉지 않아 보인다.
'남편 복 많은' 미셸은 이날 백악관 만찬장에 한쪽 어깨가 드러난 보라색 민소매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이 드레스는 재미교포 2세 디자이너 정두리(38)씨의 작품이어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각종 행사 때마다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아온 미셸 여사는 이날 한국계 디자이너의 작품을 고르는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
한 눈에 봐도 멋있어 보이는 이 보라색 드레스는 허리 부분에는 시폰 천에 크리스털을 박아넣은 벨트 장식이 들어가 있고, 편안한 스타일의 저지 소재여서 입은 사람도 착용감이 편하겠지만 부드러워 보이는 질감의 소재라 여유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 보는 사람들에게도 안락함을 느끼게 해준다.
뉴욕을 무대로 활동 중인 디자이너 정두리씨는 올 봄 백악관 측으로부터 보라색 드레스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받은 뒤 본격 제작에 들어갔다. 백악관은 정씨 외에도 여러 디자이너들에게 동일한 부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까 여러 벌의 ‘보라색 만찬 드레스 중’ 정씨의 ‘작품’이 뽑힌 것이다. 그만큼 미셸 여사의 ‘배려’가 숨어있었다는 말이다.
정씨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언론사의 취재 요청을 받은 뒤에야 미셸 여사가 국빈 만찬장에서 내 드레스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백악관측은 퍼스트레이디의 패션까지 ‘철통 보안’을 한 셈이다. 매스컴에 알려지는 미국대통령 부부의 일거수 일투족은 '전부' 치밀한 연출에 의해 보여주는 것이라는 얘기가 사실로 입증된 것 같다.
워싱턴포스트지는 "부모님이 너무 큰 기대를 하실까 봐 드레스 제작 사실을 부모님께도 비밀로 했다"며 "내가 통상 추구하던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드레스를 제작할 수 있게 해 준 미셸 여사에게 감사한다"는 정씨의 말도 소개했다.
기사에 따르면 1973년 한국에서 태어난 정씨는 4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의 부모는 뉴저지 주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다. 정씨는 1995년 파슨스 디자인 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는 제프리 빈에게 발탁돼 6년간 디자이너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2001년 부모님의 세탁소 지하실을 사무실 삼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두리(Doo Ri)'로 독립했다. 2004년에는 미 패션디자이너협회(CFDA)와 패션지 보그(Vogue)가 선정한 '유망 디자이너 10인'에 선정됐고, 2005년에는 뉴스위크가 뽑은 '2006년 패션 부문 유망주'에 이름을 올리며 뉴욕에서 '무서운 신인'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계 디자이너의 재능을 높이 산 미셸여사의 '안목‘도 대단하지만 한국인으로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뉴욕에서 인정받은 정두리씨의 활동은 대한민국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이날 만찬장엔 미국 내에서 활동 중인 한국계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영화 '해롤드와 쿠마'로 유명한 배우 존 조, 올 초 머리에 총격을 받은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의 수술을 집도한 피터 리 박사,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 타임지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들었던 한국계 요리사 데이비드 장 등이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
피터 리 박사는 당시 희생자 추모식에도 참석,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공로를 치하하는 말과 함께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아 눈길을 끌었던 인물이다. 한국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용 총장도 미국 명문대 총장직에 선출된 첫 한국인으로 미국에선 저명인사 대우를 받고 있다.
재미교포들의 이런 활동 덕분인지 아니면 공부를 중시하는 오바마대통령의 개인 취향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사랑‘은 좀 유별난 것 같다. 여기에 하와이에서 태어나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하와이에서 성장한 오바마가 주변에 살던 한국인 교포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자녀교육열에 대한 맹렬정서를 보고 겪으면서 무의식중에 자리잡은 ’친한 감정‘이 알게 모르게 ’한국의 정(情)’을 예찬하게 된 것으로 본다.
아무튼 여전히 세계 제일의 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내외가 대한민국에 각별한 호의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유쾌한 감정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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