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 도착한 성 김 대사 일가족.(다음뉴스사진)
성 김 대사 블로그 대문 커리커처.(cafe.daum.net/usembassy)캡처
‘블로거’ 데뷔한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서울에 도착한 후 처음 며칠은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가족과 함께 비행기 트랩을 빠져나오자, 수많은 기자들이 우리의 모습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랜 비행으로 좀 피곤하긴했지만 한국에 온 것이 너무 기뻐서 즐거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향해 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 가족 모두 도대체 어느 카메라를, 언제 봐야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인터넷과 신문에 실린 저희 사진들을 보면 우리 넷 모두가 동시에 같은 카메라를 보고 있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떠난 후, 저는 월요일의 첫 출근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주한미국대사로서 저는 저의 뿌리를 돌아보고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기대가 클 뿐 아니라, 미국인으로서의 제 경험을 한국 사람들과 나누고, 무엇보다 한미 양국이 좀 더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는 것에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는 바로 그런 노력 중 하나입니다. 여러분의 질문과 의견은 언제나 감사히 받겠습니다. 비록 모든 분들께 다 답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질문과 의견 꼭 올려주세요!
이 블로그를 시작으로 앞으로도 많은 블로그들이 이어질 수 있기를, 그리고 이것이 좋은 논의의 장을 여는 열쇠가 되기를 바랍니다.』(성김 주한미대사 블로그 중)
대한민국 블로거 인구 1억명 시대에 또 한명의 블로거가 탄생했다. 지난 11월10일 서울에 온 성 김 주한미대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블로그 명은 ‘올 어바웃 성 김(성 김의 모든 것)’. 성 김 대사는 한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 129년 만에 첫 한국계 주한미대사라는 막중한 외교관의 자리에 올랐다. 1970년대 중학교 1학년 시절 부모를 따라 이민 간 이후 30년 만에 ‘금의 환향’한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이제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다. 김 대사 스스로도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왠지 조금은 서운한 기분이 든다. ‘대성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과연 성 김 대사 본인 스스로도 자신을 ‘진짜’ 미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고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생때까지 서울에서 자란 ‘오리지널 서울내기’가 미국 이민 30년 만에 미국 정부의 요직에 오른 것 자체는 크게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어쩐지 복잡한 심정이다.
‘국적’을 바꿨다고 민족적 정체성마저 바뀌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어쩌면 이런 생각자체가 ‘수구 꼴통의 사고방식’이라고 비판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자(各自)의 입장’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너무 자의적인 해석은 금물이라고 본다. 어쨌든 좋은 건 좋은 거니까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르겠다. 한국인의 뛰어난 두뇌가 미국에서도 인정받은 것이라고 간단하게 생각하면 편해진다.
더구나 성 김이 주한미대사로 내정되었다는 발표가 나오자 한국의 일부 인사들은 1970년대초 그의 부친이 공직재직시절 한 '정치적 사건'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었다. 설령 그의 부친이 그런 사건에 관련됐다 손치더라도 그게 그 아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성 김은 그런 집안 이야기를 알 만큼 알 나이에 이민 길에 올랐을 것이다. ‘효심’지극한 아들로 소문난 성김은 어쩌면 부친의 그런 일들에 마음 아파하면서 성장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학업에 정진했을 것이고 미국에서 손꼽히는 명문고교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저렇게 ‘대성(大成)’해 서울에 금의환향한 것이다. 그 자체로 그는 ‘자랑스런 한국인’인 것이다. 그러니 그의 ‘국적’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건 부질없는 일이라고 본다.
51세의 ‘젊은 아빠’ 성 김 대사는 한 눈에 봐도 효자, 애처가, 자상한 아빠의 이미지가 가득해 보인다. ‘가정적인 남자’로 보인다면 김 대사에게 혹 실례의 표현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첫 인상’은 그랬다. ‘이마 한 가운데로 머릿결이 브이(V)자 모양’으로 자리 잡은 사람은 가정적인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바로 성 김대사가 그런 V자 형 이마다. 그래서일까. 김 대사가 아내나 틴에이저로 보이는 두 딸을 ‘무언’중 배려하는 듯한 모습이 화면을 타고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11월 17일 오픈한 김 대사의 블로그 첫 글 ‘서울에서의 첫 주말’에 보면 내가 본 그의 첫 인상이 과히 어긋나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김 대사는 서울에 온 첫 주말 부인과 아직 10대 소녀들인 두 딸을 데리고 ‘외식’을 했다.
그것도 거창한 고급식당이 아니라 ‘분식집’에 갔던 후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분식집에 가서 라면과 우동, 김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미국에서 맛보는 한국 음식도 훌륭하지만 한국에서 먹는 한국 음식이 역시 최고입니다. 그리고 일요일이 너무 빨리 왔습니다. 어느새 아내와 아이들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직 학기 중이라 이번 학기가 끝날 때까지 미국에 있어야합니다.”
김 대사는 한국에 온 첫 날 “(관저에 도착해보니) 식사 시간이 됐는데도 직원들이 아직 관저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친목 시간도 가질 겸 저녁 식사로 함께 짜장면을 시켜 먹었습니다"고 소개했다.
‘서민 음식’ 짜장면을 서울에서 먹은 첫 음식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반미(反美)정서’가 적지 않다는 한국의 젊은층을 의식한 ‘소통’의 한 제스추어로 볼 수도 있겠다.
‘여전히 한국 입맛이 살아 있다’는 고백도 그의 진솔한 마음의 일편임과 동시에 ‘미국인’의 정서로서 보다 ‘한국인’의 정서에 다가서려는 주한미대사의 노력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21일) 그는 아내의 ‘내조 없이’ 혼자 넥타이와 양복을 골라 입고 첫 출근했다.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미모의 아내는 딸들 학교문제로 미국에 다시 갔다가 내년 3월에야 서울에 온다. 그 동안 김대사는 ‘기러기 아빠’로 조금은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격무’에 시달리는 주한미대사 자리는 그에게서 외롭다는 ‘사치스런 감상’을 빼앗아 가겠지만 말이다.
이 시간 현재 ‘올 어바웃 성김’ 블로그엔 80여개의 댓글이 달렸을 정도로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고 있다. ‘안티’적인 내용은 거의 없고 대부분 ‘금의환향을 축하해요’ ‘식사를 짜장면으로 하셨다니 친근감이 드네요“ ”멋져요“ ”환영합니다“ 등의 '착한' 축하 댓글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성 김 대사는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하고 검사(檢事)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국무부로 자리를 옮긴 그는 주일대사관과 주한대사관을 거치며 외교관으로서 경력을 쌓아 2006년 국무부 한국과장에 임명됐고,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다음 6자회담 대표 겸 대북특사로서 10여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이런 ‘탄탄한 경력’과 '한국계‘라는 점이 그를 주한미대사라는 ’요직‘에 오르게 한 것 같다.
엊그제 첫글을 블로그에 올린 ‘신인(新人) 블로거’ 성 김 주한미대사의 블로그 활동을 ‘즐겨찾기’로 지켜보고 싶다.
*성 김대사님 서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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