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

대학생들이 공부하기 가장 좋은 도시는?-파리, 런던, 보스턴

스카이뷰2 2012. 2. 17. 15:19

 

 

 

 

                  대학생들이 공부하기 가장 좋은 도시는?

 

“20대라면 이곳에서 살고 싶다”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다. 그렇잖아도 어린 시절부터 파리는 환상적인 도시의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다. 아마 온갖 매스컴이 내보내준 ‘파리적인 것’의 매력에 세뇌되었던 듯하다.

 

예술인들의 도시, 연인들의 도시, 감미로운 샹송이 도시 전체를 흐르는 꿈의 도시, 싸르트르와 시몬 보봐르의 지적인 연애... 뭐 이런 수준의 ‘환상(幻想)’이 파리를 ‘근사한 도시’로 여기게 했던 것 같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환상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보면 첫 대면했을 때 실망이 따르게 마련인데 파리는 ‘명불허전의 도시’였다.

 

물론 ‘바가지 상혼(商魂)’과 깨끗하지 않은 뒷골목 풍경도 병존하는 곳이지만 그거야 어느 도시인들 갖고 있는 공통적인 요소인 걸 감안해볼 때 역시 ‘파리의 공기’는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듯했다. 20세기 말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파리는 ‘로망의 도시’였다. 파리 유학, 프랑스 유학하면 어딘지 멋스럽고 ‘있어’보였다.

 

새누리당 박근혜위원장도 아마 그래서 프랑스로 유학을 갔을 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현직대통령의 따님이 공부하러 간 도시였고, 당시 최고 인기여배우였던 윤정희도 홀연 유학을 떠났던 곳이기에 당시 20대들에게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제 칠순이 다 된 윤정희는 그때는 매우 희귀한 ‘학사출신 여배우’였다. 당시엔 개봉 영화광고가 주로 신문에 크게 실렸다. 윤정희가 나오는 영화광고엔 꼭 이 '학사출신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박혀있었다. 당시만해도 영화광고는 신문의 주요 수입원 중의 하나였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신문에선 영화광고가 사라져버렸다. 그만큼 신문으로선 '돈줄'이 줄어들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대통령 딸‘과 인기 최정상에 있던 여배우가 각각 파리로 공부하러 떠났다는 뉴스는 당시 여대생들에겐 상당히 부러운 이야기였다. 물론 박근혜님의 유학소식은 그녀가 1974년 모친 육영수여사의 급서(急逝) 소식을 파리유학중 받았다는 뉴스를 통해 뒤늦게 알려졌다. 어쨌든 파리는 웬만한 여염집 아가씨들에겐 무척 ’동경하는‘, 요즘말로 ’로망‘의 도시였다.

 

최근 영국의 글로벌 대학평가기관 QS(Quacquar elli Symonds)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2 학생을 위한 최고의 도시 평가(QS Best Student Cities Ranking 2012)'에서 세계 98개 도시 중 프랑스 파리가 1위를 차지했다. ‘파리의 저력’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본다.

 

올해 처음으로 '학생을 위한 최고의 도시 평가'를 발표한 QS는 "학생들은 대학을 고를 때 대학 자체뿐 아니라 대학이 위치한 도시의 삶의 질, 물가, 취업 환경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다"면서 "이런 요소를 바탕으로 대학생들이 공부하기 좋은 글로벌 도시를 평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도시의 분위기, 도시의 공기’같은 이미지적인 요소가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건 꼭 조사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도시의 공기’라는 건 오염치수를 따지는 환경학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공기를 말한다.

 

이번 평가는 인구 25만명 이상으로 'QS 세계대학평가' 700위 안에 오른 대학을 두 곳 이상 보유한 98개 도시를 대상으로 했다. 평가지표는 ①'QS 세계대학평가' 700위 안에 든 대학의 수 ②도시에 사는 총 대학생 수와 그 중 외국인 학생 비율 ③물가(대학등록금·빅맥 지수) ④삶의 질(영국의 컨설팅회사 머서 조사) ⑤취업 환경 등 5개 분야 12가지로 구성돼 있다.

 

이번 평가에서 1위에 오른 파리를 비롯해 영국 런던(2위), 오스트리아 비엔나(5위), 스위스 취리히(7위) 등 유럽이 강세를 보였다. 파리는 '취업 환경' 부문(96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런던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등 12개 대학이 'QS 세계대학평가'에서 상위권에 오른 데다 취업환경(89점)이 좋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런던 비엔나 취리히 모두 유서 깊은 대학들이 많은 곳이다. 음악의 도시로 더 잘 알려진 비엔나는 해마다 1월 초 열리는 ‘요한슈트라우스와 함께하는 신년음악회’행사로 멋진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도시다. 한때는 ‘스파이들의 도시’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지만 그조차도 ‘국제도시’로서의 세련된 멋을 풍기는 요소로 느껴질 정도로 이미지가 좋은 도시다.

 

아인슈타인이 대학시절을 보낸 취리히도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멋진 도시로 알고 있다.

런던이야 두 말할 것도 없이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로 대표되는 대학의 ‘지존’들이 존재하는 곳이기에 젊은이들이 ‘학구열’을 불태울 수 있는 도시로 안성맞춤인 듯하다.

 

하버드대와 MIT가 있는 미국 보스턴(3위)은 우수 대학들이 몰려 있고, 도시 삶의 질 부문(89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미국 도시 중에는 시카고(15위)와 샌프란시스코(17위)도 상위권에 올랐다.

보스턴은 아마 미국의 여러 도시 중 가장 ‘유럽적인 분위기’의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꽤 오래 전 보스턴에 갔을 때 파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 느꼈다. 파리의 샹젤리제와 매우 비슷한 모습을 보며 미국이 ‘신생국’으로서 유럽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버드나 MIT는 한국인들이 특히 ‘쳐주는’ 대학의 위용을 자랑하는 대학이다. 한국에서야 ‘하버드 출신!’ 이 한마디면 어딜 가든 대충 ‘최상위 그룹’으로 행세할 수 있다고 본다.

오래 전 어느 여름 하버드대학에 들렀을 때, 캠퍼스 분위기는 꽤 쾌적했다.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누구의 동상을 만지면 ‘하버드에 입학’할 수 있다는 ‘미신’ 덕분에 그 인물 동상의 구두부분이 반질반질해졌다는 소릴 듣고 웃었다.  하버드대 후문 뒤에 즐비하게 들어선 관광상품 가게들에는 HARVARD라는 ‘자랑스런’ 알파벳이 찍힌 티셔츠들이 가게 입구에 가득 전시되어 있었던 기억이 난다.  티셔츠는 거의 대부분 '메이드인 차이나'였다.

 

아시아 도시로는 싱가포르가 12위로 가장 높았고, 일본 도쿄와 홍콩이 공동 19위를 차지했다. 서울(23위)은 중국 베이징(28위)·상하이(39위)보다 높았다. 서울이 대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좋은 도시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우선 '2011 QS 세계대학평가' 순위에 오른 서울지역 대학이 10개나 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싱가포르(12위)는 2개, 홍콩(19위)은 6개다.

 

또 서울에 대기업들이 몰려 있어 '취업 환경' 부문에서 높은 점수(82점)를 받았다. 반면 서울은 '삶의 질' 부문에서는 중국의 베이징(28위), 대만의 타이베이(34위)와 같은 50점(100점 만점)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의 삶의 질’에 대한 평가가 낮았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울은 물가도 비싸지만 어떤 학구적인 단아한 분위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건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이다.

조선시대 ‘한양’으로서 ‘오래된 도시’라는 이미지에 걸맞은 고풍스러움도 서울에는 별로 없다. 서울이 외국인 대학생들이 생활하기엔 그리 편한 도시 같지는 않아 보인다.

 

어쨌든 젊은 시절엔 ‘무조건’ 나가서 공부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나가지 못하면’곤란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곳에서 공부하든 자기의 존재감과 역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사회적 정의감 이런 것을 잊지 않고 학업에 매진한다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얄팍한 소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