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신문

'바보 시인' 천상병과 나

스카이뷰2 2012. 3. 28. 11:39

 

 

 

                                       '바보 시인' 천상병과 나

 

아침신문 중 빼 놓지 않고 읽는 기사가 있다. 바로 [가슴으로 읽는 시]다.

선정한 시도 영혼을 맑게 해주는 세정제 같은 역할을 해주는데다가 장석남이라는 시인이 쓰는 그 시에 대한 ‘서정적 촌평’도 마음에 든다.

 

오늘 아침엔 20년전 작고한 천상병 시인의 ‘꽃의 위치에 대하여’라는 시가 내게 ‘시간여행’의 기회까지 줬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천상병시인은 ‘비운의 천재 시인’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해보자.

 

1981년 초겨울, 광화문의 어느 회사 사무실.

거지 비슷한 행색의 초로의 한 남자가 비틀비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얼핏 보면 지능도 좀 모자라 보이는 그 남자는 그 사무실의 최상급자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이 형 나 백원만 줘!”라고 처절하게 외쳐댄다. 2012년 기준으로 볼 땐 돈 백원이야 껌 한통도 제대로 살 수 없는 액수지만 그때는 짜장면 한 그릇은 사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지 그 ‘이 형’이란 사람은 멋쩍게 웃으면서 “이리 오셔서 앉으세요”라면서 사무실 한 가운데 덩그라니 놓여있는 낡은 응접세트 의자를 가리킨다. 영락없는 노숙자 풍의 그 남자는 “먹고 살기 참 힘드네”라고 혼잣말로 궁시렁 거린다. 그 남자와 잠시 얘기를 하던 ‘이 형’이라는 남자는 그 남자에게 천원짜리 한 장을 쥐어줘 보낸다. 그가 나가고 난 뒤 “저 사람이 천재 시인 천상병이야. 저래 봬도 서울상대 출신이야”라고 궁금해 하는 새내기 여사원에게 그 '노숙자 풍'에 대한 간략한 히스토리를 말해준다.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 여사원은 ‘천재 시인’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짓고 만다. 아직 여린 감성이 있던 나이여선지 뭉클해짐을 느낀다. 아마 천재와 시인이라는 단어 그리고 적빈의 코트를 걸친 초라한 분위기에 동정을 느꼈나보다.

내가 천상병시인을 처음 보게 된 30년 전 어느 날의 풍경이 안개처럼 아슴프레하게 기억의 가장자리를 맴돌고 있다.

지금 이렇게 천상병이라는 시인에 대해 회상의 글을 쓰면서 세월의 덧없음에 가슴이 시리다.

 

천상병 시인은 서울상대 재학생 시절 ‘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저렇게 ‘바보 시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도 천상병 시인은 두 어달에 한번은 우리 사무실에 ‘놀러와’서는 ‘백원 타령’을 하며 ‘용돈’을 타갔다. 아주 옛날이야기다. 오늘 아침 ‘가슴으로 읽는 시’를 보니 천상병시인이 우리 사무실에 놀러오던 시절 그의 나이는 쉰살 정도였다. 그 후 천 시인은 ‘좋은 아내’를 만났다. 그 천사 같은 아내는 인사동에 ‘귀천(歸天)’이라는 자그마한 카페를 열고 ‘바보 시인’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면서 살았다. '귀천'은 천상병의 대표적으로 알려진 시 제목이기도 하다.

 

귀천(歸天)—천상병(1930~1993)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인은 20년 전 1993년 하늘로 떠났고, 그 착한 아내 역시 몇 해 전 바보 시인 남편 곁으로 떠났다. 그들 부부 이야기는 우리 시단에 ‘동화처럼 살다간 부부’스토리로 지금까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아마 신세대들은 물론이고 오늘 아침 천상병 시인의 시에 대해 소감을 적은 시인도 그 ‘바보 시인’을 직접 만나보진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천상병 시인 같은 기인 풍의 시인은 거의 아니 전혀 없는 것 같다. 요즘 시인들은 ‘현실적인 라이프’를 외면하기 어려운 시대분위기 탓인지 몰라도 ‘영혼이 가난한 시’가 별로 나오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오늘 아침 ‘옛날 시인’천상병의 시 ‘꽃의 위치에 대하여’를 만난 건 작은 행복이다.

 

 

*아래 오늘 아침신문에 실린 천상병의 시와 촌평을 소개한다.

 

 

꽃의 위치에 대하여-

 

 

꽃이 하등 이런 꼬락서니로 필 게 뭐람

아름답기 짝이 없고 상냥하고 소리 없고

영 터무니없이 초대인적(超大人的)이기도 하구나.

현명한 인간도 웬만큼 해서는 당하지 못하리니……

어떤 절색황후께서도 되려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이런 이름 짓기가 더러 있었지 않는가 싶다.

 

미스터 유니버시티일지라도 우락부락해도……

과연 이 꽃송이를 함부로 꺾을 수가 있을까……

한다는 수작이 그 찬송가가 아니었을까……

 

 

꽃을 일러 꼬락서니라니…. 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꼬락서니라는 상스러운(?) 말이 갑자기 향기로운 분을 바르고 나섰으니 웃지 않을 수 없고,

꽃은 또 못 배우고 헐한 것을 불러 친구로 삼고 있으니 흐뭇해 좋다. 그럼 그래야지.

꽃 앞의 즐거움을 애써 참고 감춘 저 표정을 보라.

"꽃이 하등 이런 꼬락서니로 필게 뭐람" 이 나무람의 표정 앞에서 흐뭇하지 않을 장사가 있나!

올봄 꽃 피면 그 앞에 가서 나도 이러한 화를 한번 내리라.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