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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대지진 후 피어난 ‘희망의 새싹’과 달라진 일본인의 라이프스타일

스카이뷰2 2012. 3. 12. 11:38

 

                                            

                                                                                                                   (AP-연합뉴스 사진)

 

3.11 대지진 후 피어난 ‘희망의 새싹’과 달라진 일본인의 라이프스타일

 

생명이다! 희망이다! 환희다. 감동이다.

아침신문 1면에 커다랗게 실린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생명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교향악처럼 웅장하게 뇌리를 휘감는다.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2011년 3월11일 그날, 재앙의 현장에서 살아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저렇게 '예쁜 아가씨'로 자랐다니...

 

일본의 3·11 대지진과 쓰나미 발생 3일 후인 지난해 3월 14일 일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재난현장에서 자위대원 지바 고지씨는 생후 4개월된 아기 이시카와 이로하를 구해냈다.  위쪽 사진은 당시 지진이 일어나 쑥대밭으로 변한 현장에서 지바씨가 이시카와양을 품에 안고 웃는 모습이다. 대지진으로 처참해진 곳에서도 ‘어린 생명’은 꿋꿋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아기들은 천사가 보호해준다’는 속설을 입증해준 듯하다. 그날 후 1년이  지난 3월 10일 지바씨는 소녀기운마저 살포시 머금은 잘 자란 이시카와를 안고 1년 전 그때의 미소를 다시 지어 보였다.

 

1만9000여명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일본 3·11대지진의 참혹한 흔적은 서서히 사라지고 저렇게 ‘아기들이 소리없이커나가는 모습’에서 조금씩 희망의 새싹이 움트고 있다. 생명의 힘은 저처럼 대단한 것이다. 지상의 모든 생명은 그래서 더 없이 소중하고 귀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3.11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순식간에 몰아닥치는 쓰나미와 대지진이 나에게도 언제 닥칠지 몰라 먼 곳에 있는 대형마트에 쇼핑하러 가는 주부들은 대폭 줄었고 집근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 반찬거리를 사는 주부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전거 출,퇴근자들이 급증한 것도 바뀐 풍속도다. 3·11 때 전철이 끊어지고 도로가 차단돼 밤새 걸어서 귀가했던 경험이 있는 상당수 시민들이 아예 자전거를 출퇴근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급증하는 자전거 출·퇴근족 때문에 사고위험이 늘어났다고 한다. 3·11 때 하이힐을 신고 몇 시간씩 걸었던 악몽이 있던 여성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사무실에 운동화를 갖다 놓고 하이힐 대신 걷기에 편안한 신발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꿈에서라도 이런 일은 겪고 싶지 않다.

 

결혼반지 등 자신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장신구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 만일의 사태를 당했을 때 가족들이 자신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섬뜩한 기분이 드는 준비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처절한 사고현장에서 피해자의 ‘신원불명’으로 기다리는 가족들의 애틋한 심정을 헤아린다면 비장감마저 느껴진다.

 

50대의 한 주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작년 3월 이후 평소에 좋아하던 보석이나 고급 시계·가방 같은 것을 사지 않는다. 뭔가 멋진 것을 사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사라져버린 느낌이라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2만 명 가까운 생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그토록 끔찍한 재앙 앞에서 보석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말이다.

 

3·11 대지진은 일본인들의 일상을 바꿔 놓을 정도로 깊은 상흔을 남겼다. 미쓰비시 종합연구소가 일본인 3만명을 대상으로 대지진 이후의 의식구조에 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권력욕, 성취욕, 외부 자극에 대한 관심 등은 이전보다 크게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작년 6월과 12월에 걸쳐 두 차례 조사했는데 '여가생활에 돈을 더 쓰겠다'는 응답이 22%에서 29%로, '여유로운 휴양을 즐기겠다'는 응답이 54%에서 60%로 각각 늘어났다. 반면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산다'는 응답은 60%에서 54%로 떨어졌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소비의식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고 연구소 측은 분석했다. 죽음이 코 앞에 닥쳐왔는데 오래 쓸 물건이 뭐 필요하겠는가.

 

3·11을 계기로 새로운 인생관을 모색하는 책 출판도 늘고 있다. 의학자 출신 작가인 가가오토히코(加賀乙彦)는 '과학과 종교, 그리고 죽음'이라는 책을 통해 "3·11을 통해 인간의 무력함을 또 한 번 절감했다"면서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사회가 더 이상 성장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담은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의 수필집 '하산(下山)의 사상'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지진과 원전사고의 영향이다. 70대 후반 작가의 인생체험에서 우러나는 ‘인생 교본’이기에 더 호소력이 있을 것이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룬 '가정부 미타'라는 드라마도 일본에서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가족의 소중함을 절감하면서 가족을 주제로 한 드라마·영화 제작도 붐을 이루고 있다. 그렇잖아도 일본 영화감독들 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소소한 일상’을 솜씨 있게 그려내는 재주 있는 감독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런 그들이기에 ‘3.11 대지진’은 예술적 영감을 불러 일으켰을 법하다.

 

작은 사고를 당해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하물며 3.11 대지진 같은 상상이상의 재앙을 당한 일본인들의 ‘인생관’이 달라졌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일본인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니지만 ‘독도는 일본 땅’이라든지 ‘조선인 위안부문제는 일본인 책임이 아니다’라는 망언을 버젓이 해대는 ‘못된 일본인들’도 이번 대지진을 기회로 ‘각성’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