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진

할리우드 스타 조지 클루니와 차인표와 명동에서 만난 여학생들

스카이뷰2 2012. 3. 19. 12:56

    

영화 킹메이커 중. 이런 잰틀맨이 연행되는 아래 사진은 클루니 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포승에 묶인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왼쪽에서 둘째)와 아버지 닉 클루니(백발의 노인 )/AFP 연합뉴스

                                    

플라스틱 수갑에 묶인 채 연행되고 있는 이 남자가 그 멋진 조지 클루니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클루니 바로 앞에 역시 손을 뒤로 묶인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가 클루니의 친아버지라는 사진 설명을 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이어 ‘부전자전(父傳子傳)’ ‘멋진 부자(父子)’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미국인 아버지와 아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체포당하는 것도 불사하고 데모한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79세 나이에도 현역 방송인으로 활동 중이라는 클루니의 부친 닉 클루니와 미남 배우 조지 클루니 부자는 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DC 주재 수단 대사관 앞에서 ‘머나먼 아프리카’ 수단에서 무차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수단 정부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저렇게 경찰에 연행된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 부자는 지난 16일 시위 중 대사관 밖으로 나가라는 경찰 측의 경고를 세 번 무시해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다. 함께 시위에 참여한 인권 활동가 벤 질로스와 마틴 루터 킹 3세, 배우이자 코미디언인 딕 그레고리 등도 함께 체포됐다고 한다. 이들은 3시간여 만에 벌금 100달러(약 11만3000원)를 내고 석방됐다.

 

평소에도 수단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조지 클루니는 2006년 아버지와 함께 8일 동안 아프리카 수단에 머물면서 현지 상황을 카메라에 담아 4분짜리 다큐멘터리 필름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미국 의회에 나가 발언하면서 이 다큐멘터리를 상영해 참석한 의원들을 울렸다. 조지 클루니는 수단에 체류할 당시 군인들이 발사한 로켓포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 옆에서 한 젊은이가 포탄에 맞아 팔다리를 잃는 참혹한 모습을 목격했다. 끔찍한 광경이다.  클루니 본인마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여러 차례 겪었다는 증언에 의사당 안은 숙연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조지 클루니는 '미스터 수단'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수단의 '인권 문제'에 몇년동안 꾸준히 시위를 해왔다.메르켈 독일 총리에게도 수단문제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수단 관련 다큐멘터리에도 여러차례 출연했고, TV에서 수단문제전문가라는 타이틀로 토론을 갖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수단문제로 백악관에서 대담을 나눴다. 유엔도 방문했고, 이집트나 중국 같은 나라를 방문해 수단 정부에 압력을 넣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그만큼 진정성을 갖고 수단 다르프루인들의 인권을 위해 동분서주해왔다.

 

플라스틱 포승에 묶여 끌려가는 인기 배우의 모습이 실린 이 한 장의 사진을 보며 문득 요즘 대한민국에서 맹활약 중인 소위 ‘개념 연예인’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자기들의 '인기'를 코에 걸고 거의 안하무인격으로 활동하는 것 같다.

김제동 김미화 윤도현 심지어 김부선이네 이효리 같은 소위 ‘왼쪽 개념 연예인’들과 그들의 ‘멘토’ 비슷한 이외수 공지영 안철수 박경철 이런 부류들이 생각난다. 며칠전 제주 해군기지 반대시위에 앞장서서 땅바닥에 뒹굴던 어떤 노 신부님도 떠오른다.

 

그들은 조지 클루니의 저런 모습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박해받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서 저렇게 연행당하는 걸 설마 ‘바보 짓’이라고 생각지는 않겠지. 인권은 백인이든 흑인이든 탈북자든 인기 연예인이든 평등한 것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박해받는다는 건 이 개명천지 21세기엔 용납이 안되는 만행이다. 그런 만행엔 침묵하면서 '정치적'인 것에대해선 생색내기라도 하는 양 목청 높이는 건 꼴불견이다.

 

이들과는 또 다른 의미의 ‘개념 연예인’이라 할 수 있는 차인표를 비롯한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시위 연예인들도 떠오른다. 차인표는 말한다. ‘길거리에서 피흘리며 쓰러진 사람을 보면 일단 병원에 데리고 가야하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현실정치’엔 불참한다는 선언까지 한 차인표는 강제북송되는 탈북자 문제를 외면한다는 건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닌 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니 정부 하는 일에 사사건건 ‘저항’하는 ‘왼쪽 개념 연예인’들이 이 탈북자 북송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걸 안타깝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각자의 취향과 생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쯤 되면 어떤 쪽 연예인들이 조지 클루니처럼 휴머니즘에 입각한 ‘진정한 개념 연예인’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여기선 누구를 띄워주거나 주저앉히려는 이야기는 특별히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침신문에 실린 ‘연행되는 클루니’ 사진을 보면서 요즘 대한민국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소위 ‘진보 성향’ 연예인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면 그들은 또 얼마나 악을 쓸지 생각만 해도 씁쓸해진다.

 

미국에선 저렇게 톱스타라도 ‘법’을 어기면 포승에 묶인 채 끌려가도 아무 소리 못한다. 우리는 어떤가. 실정법을 어기면서 사회질서를 어지럽혀도 ‘인권유린’당했다며 오히려 큰소리치는 인사들이 한 둘이 아닌 듯하다. 심지어 해군을 해적이라고 버럭버럭 우기는 한심한 여대생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입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경찰들을 때린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상한 풍조도 널리 퍼지고 있다. 국책사업에 기를 쓰고 반항해야 ‘개념 연예인’ 대접을 받는 모양새다.

 

그러니 조지 클루니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주기 위해 시위하거나 탈북자 강제송환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면 ‘친정부’라며 백안시당하는 경향이 강하다. 차인표 같은 ‘또 다른 개념 연예인’에게 호감이 가는 건 그가 진정 사회적 약자를 위해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여서다. 조지 클루니처럼 차인표처럼 진정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그런 연예인들이 고맙다.

 

조지 클루니의 이 사진을 보면서 5년 전 어느 봄날 명동에서 목격한 우리 여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이제 겨우 여중 2학년생인 소녀들과 여고생 여대생이 한 곳에 모여 피켓을 들고 있었다. ‘아프리카 수단’에서 인권탄압을 당하는 사람들을 살려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여학생들이 한 없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던 그날이 마치 어제처럼 선명하게 생각난다.  조지 클루니처럼  아프리카 수단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달라는 시위를 한 우리 여학생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아래 그날 우리 블로그에 올렸던 그 여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소개한다.

*(우리 블로그 2007.1.27일, 명동의 재발견 중에서 발췌)

 

                                           

                                                  2007년 명동거리에서 아프리카 수단 난민들을 돕자며

                                                  피킷을 들고 있는 여중생과 여대생.(스카이뷰 사진)

 

‘유네스코 앞 쪽에 오니까 모범생 스타일의 남녀 학생들이 무슨 피켓을 들고 커다랗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뭔가 하고 자세히 보니까 그 학생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아프리카 수단에서 탄압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주기 위해 UN평화유지군을 파견하라는 제법 ‘거창한 주제’의 데모를 하고 있더군요.

 

아주 앳된 여중생과 그 옆에 여대생쯤으로 보이는 학생이 있어서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죄 없이 핍박받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Darfur) 시민들이 너무 가엾다는 거였습니다. 유엔 평화유지군이 하루빨리 파견되어 이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주어야 하니까 서명을 부탁한다고 말하더군요. 고문 받고 있는 다르푸르 시민들의 사진이 새겨진 피켓을 들고 있는 숙명여대 정외과 학생이라는 양윤영 양은 그야말로 ‘사명감’에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서명을 부탁하며 저에게도 호소하더군요.

 

그 옆에 함께 피켓을 들고 서있는 자그마한 여중생 이정화양을 향해 제가 “아이구 요런 어린 학생이 뭘 알고 이러겠나”라고 짐짓 걱정하는 투로 말했더니 “어머 얘네들이 더 잘 안답니다. 누가 시켜서 이러는 게 아니라 얘네들은 고통 받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너무 가여워 자발적으로 나온 거랍니다”라고 대학생 언니는 당당하게 말하더군요.

우리 때 같으면 꿈도 못 꾸었을 ‘아프리카 사람들의 인권을 위한 거리시위’를 하는 우리 어린 학생들을 보니까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물론 명동은 예전에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대학생들이나 민주투사들 이런 ‘특별한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긴 했지만 머나먼 아프리카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겨울거리에 피켓을 들고 서있는 ‘평범하게’ 보이는 그 학생들을 보니 우리나라가 많이 발전했다는 걸 또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