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진

세계은행 총재 김용 미국 다트머스 대학 총장

스카이뷰2 2012. 3. 24. 10:31

 

 

 

세계은행 총재 김용 미국 다트머스 대학 총장

 

 

아침신문에 실린 이 한 장의 사진에서 우리는 많은 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중년의 아시아인 남성과 그 왼쪽 옆 한 일자로 입을 굳게 다문 오바마 대통령 그리고 화사하게 웃고 있는 ‘8년 경력 퍼스트레이디’ 출신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세계 대통령’ 오바마와 한때는 미국의 가장 유력한 여성 대통령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양 옆에 세우고 ‘대인 풍(風)’의 미소를 만면에 가득 실은 ‘김용’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이 세 사람은 미국에서도 ‘최고로 성공한’ 엘리트 지식인들이다. 말 그대로 최정상급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저 자리에서 웃기까지엔 수많은 좌절을 겪었을 것이고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은 밤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바마만 해도 케냐인 흑인아빠와 백인엄마라는 ‘다문화 가정’속에 성장하면서 온갖 설움을 참아야 했다. 오바마가 태어난 1960년대 초라면 식당이나 서비스 업소 문앞엔 '개와 흑인은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당당히게 붙어있던 시절이다. 그런 환경에서 미국의 최초 '유색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스토리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것이다.

 

서민의 딸로 태어난 힐러리 클린턴도 백악관 퍼스트레이디 자리를 8년간 누린 화려한 기록의 소유자이지만 그녀 역시 숱한 역경을 헤쳐나와 저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와는 대선후보 경선기간 중엔 치열한 경쟁관계로 면도날 같은 예리한 화법으로 오바마를 공격했지만 경선 패배후 깨끗이 승복하고 결국은 '2인자'로선 최강 포지션인 국무장관직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저력있는 파워우먼이다.

 

김용 총장은 오바마나 힐러리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한 환경속에서 성장했다. 1961년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82달러로 179달러인 아프리카 가나 보다 한참 ‘후진국’이었다. 그런 시절 김용은 부모따라 미국에 온 이민 1.5세대로 대통령과 함께 저렇게 훈훈한 웃음을 짓기까지 50년 동안 피눈물 나는 ‘내공’을 쌓아왔을 만만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다.

 

51세 오바마와 64세 힐러리 그리고 53세 김용이 살아온 ‘이력서’는 지금 저렇게 환히 빛나고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제(23일) 한국계 미국인 김용을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했다. 66년 세계은행 역사에 ‘유색인’인 아시아인이 차지한 건 최초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니 천하 모르는 남이라도 일단은 무조건 축하할 일이다.

그래서 우리 블로그는 ‘오늘의 사진’ 주인공으로 바로 김용 미국 다트머스 대학 총장을 선정했다.

 

김용은 1959년 서울 세브란스 병원 분만실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1991년 하버드 의과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엄친아의 길’을 착실히 걸어왔다. 김용의 ‘엄마’는  대한민국 최고 여학교였던 ‘왕년의’ 경기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엄친딸’출신이다. 아이오와대학에서 한국철학 퇴계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딴 ‘쟁쟁한 엄마’다.

 

이 ‘총명한 엄마’의 남다른 육아법이 50년 후 저처럼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대단한 일이다. 김용은 항상 ‘부모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효자다. 성공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미국 속담에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를 잘 고르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며 "좋은 부모님을 만난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도 평소 한국 학생들을 만나면  "우선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고, 다음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밀고 나가야 한다"고 주문한다. 반면 한국인 부모들에겐 "너무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만들지 말라"고도 조언한다. 양쪽의 손을 다 들어주는 '현명한 멘토'로서의 진면목을 과시하는 듯하다.

 

오래 전 별세한 김용 총장의 부친은 6·25전쟁 때 17세의 나이로 혈혈단신 북한에서 피란 내려 와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이민, 아이오와대학 치의학 분야에서 활동했다. 김용은 "실무적인 직업을 가진 부친과 큰 사상을 연구하는 모친을 둔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유복한 가정환경’도 김용의 ‘복’이다. 이건 태생적인 복이니까 그렇다치더라도 그 이후 김용이 살아온 길은 ‘태생의 복’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킨 '완벽한 모범생‘ 그 자체다.

 

김용은 아이오와 주 머스커틴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했으며 고교시절 총학생회장으로 활약했다. 고교수석졸업은 ‘모전자전’인 셈이다.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에서 쿼터백을 맡았으며, 농구팀에선 포인트가드를 담당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게다가 헌칠한 미남이다. 게다가 유창한 한국어 회화 실력(?)은 다섯살때 이민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 정도면 ‘재수 없는 엄친아 계열’의 종결자라고나 할까. 아무튼 ‘복 많은 인생이다.

 

김용은 들어가기 어렵다는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의학과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의대에 재직할 당시 중남미와 러시아 등의 빈민지역에서 결핵 치료를 위한 신규 모델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고,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맡아 30만명이던 후진국의 에이즈 누적 치료자 수를 130만명으로 획기적으로 늘렸다.

 

김용의 인생엔 ‘아시아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상당히 많다. 그만큼 ‘두각’을 나타내면서 살아왔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6년 타임), '미국의 최고 지도자 25명'(2005년 US 뉴스 앤 월드리포트) 등에 선정됐고,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펠로상(2003년)을 수상했다. 쟁쟁한 이력이다. 2009년 미국 아이비리그(동부 명문 대학)의 다트머스대 총장에 오를 때도 미국 사회에서 인종의 장벽을 깼다. 200여년이 넘는 미국 아이비리그 역사 속에서 아시아인이 총장에 선출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태평양을 날아온 이 남자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라이프스토리는 지금 총선을 앞둔 탓에 온통 시끄러운 뉴스뿐인 대한민국에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다. 묵묵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자기 앞에 펼쳐진 시간들을 알차게 살아온 이 남자에겐 운(運)도 따랐다. 김용 본인의 말처럼 ‘좋은 부모’ 만난 것부터가 ‘오늘의 김용’의 영광을 뒷받침해온 대들보다. 거기에 스스로 한국계의 불이익을 극복해낸 열정적인 노력이 그의 오늘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남자의 ‘성공 스토리’는 50여 년 전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30여 년만에 세계 경제10위권에 든 대한민국의 ‘성공 스토리’와 그 길을 같이 걸어온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대한민국 출신’들이 세계적 요직에 착착 앉고 있는 요즘 김용의 스토리는 '금상첨화(錦上添花)‘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빛난다.

 

그렇다고 ’요직‘을 차지했다는 것에만 방점을 둔다는 건 아니다. 단순히 세속적인 ’출세‘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50여년이 흐르는 시간동안 쌓아온 ’일상의 합(合)‘이 정성스레 차려놓은 성찬(盛饌)으로 우리 앞에 펼쳐졌다는 대목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백인의 전유물’이었다는 세계은행 총재에 오를 김용 총장에게 박수를 보낸다.

 

☞ 세계은행(World Bank)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에 근거해 1946년 6월 창설됐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복구 자금 지원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개발도상국을 위해 자문과 장기 자금 대여를 주업무로 한다. 매년 약 600억달러를 개발도상국에 차관 형태로 지원한다. 산하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과 경제개발협회(IDA) 등 2개 기구를 두고 있으며 회원국은 IBRD·IDA에 각각 187·171개다. 미국이 가장 많은 15.85%의 투표권을 갖고 있고 일본(6.84%)·중국(4.42%) 등이 뒤를 잇는다. 유럽권의 목소리가 강한 국제통화기금(IMF)과 달리 미국 주도로 운영되며, 지금까지 모든 총재는 미국인이 맡았다. 본부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다.(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