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도 민간위원 4명위해 서울서 회의
- 조선일보DB
올해 예산안의 국회 통과 전날인 작년 12월 31일. 기획재정부(기재부) 예산실과 세제실, 기획조정실 등 3개 실 직원 350여명은 세종시
청사를 비우고 서울 반포에 있는 옛 공정거래위 청사에서 비상 대기했다.
기재부가 작년 12월 18일 세종시로 이전을 마쳤는데도 전체
인력 3분의 1 정도는 작년 12월 20일부터 지난 4일까지 2주 동안 세종시가 아니라 서울에서 근무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국회 예산 통과를
위해 수시로 국회와 협의해야 하는데, 수백명이 138㎞에 달하는 서울 여의도 국회와 세종시 청사를 매일 오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재부는 이 직원들이 일할 사무실로 서울 반포동에 있는 옛 공정거래위원회 청사를 임시로 빌려 썼다. 이 때문에 세종시로
가족 전체가 이주한 직원들은 모텔을 전전하기도 했다.
기재부의 한 과장급 간부는 "1년에 8개월 정도는 국회가 열리는데 그때마다
과장급 이상 주요 간부들은 수시로 국회에 불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10일 농림수산식품부 입주를 시작으로 정부
세종청사 시대가 열린 지 한 달이 가까워지고 있다. 초기 혼란은 어느 정도 예상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되기는 커녕 구조적인 행정 비효율이
뚜렷해지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김황식 총리와 장관들도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생활에 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기재부가 지난달 18일 세종시로 이주를 마친 뒤 단 3일만 세종시 청사에 출근했다. 출근은 했지만 다른 일 때문에 바로 서울로 돌아와
세종시에서 잠을 잔 적은 없었다. '무박(無泊)'이었던 셈이다.
김 총리는 지난 3일 국무회의 직후 주례 보고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종시 이전으로 인한 비효율이 보통 문제가 아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는 세종시 이전 이후 한 달에 6차례 이상 열던 민간 전문가 간담회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민간 전문가들이 좀처럼
세종시까지 내려오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재부 나석권 정책조정과장은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시장의 현안을 파악하고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는데 지금은 어렵게 됐다”면서 “앞으로 정책이 시장과의 소통이 부족한 탁상공론으로 흐를 것이란 걱정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와 함께 작년 말 세종시로 옮긴 5개 부처(총리실·농식품부·공정거래위원회·국토해양부·환경부)도 상황이
비슷하다.
공정위는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재 방안을 심의·의결하는 위원들의 회의를 매주 수요일 계속 서울에서 갖고 있다.
대략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회의장이 아직 세종시에 마련되지 않은 데다 9명의 위원 중 민간 위원 4명이 모두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회의장이 세종시에 마련된다 하더라도 권위주의 시대도 아닌데 최대 100명에 달하는 회의 참석 인원을 모두 세종시로 내려오라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차관에 대한 보고나 결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청사가 과천에
있을 땐 장·차관이 부처 바깥에 나가 있어도 찾아가서 보고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했다. 문제는 이런
비효율이 구조적이라는 데 있다. 올해 말 다른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마무리되더라도 청와대와 국회는 서울에 남아 있기 때문에 업무가 둘로 쪼개지는
상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