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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65>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아인슈타인의 재혼스토리

스카이뷰2 2013. 1. 19. 00:05

 

            크라잉넛 한경록 블로그 사진. /아인슈타인의 재혼을 둘러싼 스토리는 저 붉은 장미처럼 눈길을 끈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아인슈타인의 재혼스토리

 

 

 당시 전 유럽 아니 전 세계에서 아인슈타인의 존재는 거의 우상화되었을 정도다. 웬만한 여성들은 그에게 호감을 보냈다. 어딜 가나 그를 환영하는 인파로 넘쳐났다. 명성과 함께 물질적인 풍요도 따랐다. 그런 매력적인 남자가 한 집에 살면서 프러포즈를 했다는 게 얼마나 극적이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이 어린 아가씨는 상상의 나래를 펴고 맘껏 날아다녔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연애라면 몰라도 결혼은 그렇게 ‘환상적 농담거리’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일제가 아무리 철부지였다 해도 아인슈타인의 그런 ‘내밀한 프러포즈’를 환상속에서 지어내 소문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엘자의 주치의이기도 했던 니콜라이는 한 수 더 떠서 일제와 결혼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하기야 니콜라이의 ‘충고’는 보편성에 바탕을 둔 일반적인 이야기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왕 하는 결혼이라면 젊은 여자와 하는게 세상 남자들의 로망 아니겠는가.

 

이렇게 얽히고 설켜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자 아인슈타인은 어처구니없게도 엘자와 일제 두 사람이 알아서 결정하라는 기상천외의 해결책을 내놨다. 만약에 드라마나 소설에서 이런 식으로 전개했다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의 이야기다. 그래서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라고 하나보다.

 

귀부인에의 신분상승을 꿈꾸던 엘자의 반응 역시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선뜩 믿기지 않은 이야기들이 떠돈다. 그녀는 딸의 장래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모성본능에선지 혹은 남부끄러워서였는지 일제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고 한다.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런 '재혼스토리'는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하다고 여길 것이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제 문제 해결의 열쇠는 세 남녀 중 가장 어린 일제가 갖고 있는 셈이었다. 어찌 보면 아인슈타인이나 엘자나 어른스럽지 못했다고 본다. 어린 처녀에게 그런 식으로 부담을 주면서 자신들은 도의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였던 것 같다.

 

설마 아인슈타인은 요리 솜씨가 뛰어나고 대화가 통하는 엘자와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일제와 잠자리를 함께할 한 지붕아래‘3각 관계’라는 백일몽 같은 공상을 즐기려 한 것은 아니겠지.

어쩌면 현실을 초월한 듯한 언행을 자주했던 아인슈타인의 성품으로 봐선 아주 가능성이 없었던 일은 아니었던 듯하다.

 

자, 이제 '아인슈타인 가정극장'의 파란만장 러브 스토리는 과연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중간 과정은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단 일제가 어머니를 위해 “한쪽으로 비켜서서 엄마가 결혼하도록 양보해준 것”으로 전개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