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즐겨 거닐던 스위스 베른 지역.(다음 자료사진)
일반인의 보편적 사고방식은 결여된 아인슈타인
엘자는 일제가 아인슈타인과 결혼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물러나겠다고 했다. 헌신적인 모정(母情)이다. 그토록 공을 들여 차지하려 했던 사랑의 자리였는데,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착한 딸 일제는 어머니가 여러 해 동안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뎌 마침내 얻게 된 자리를 자신이 빼앗는다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철든 생각을 했다. 일제는 니콜라이에게 “나같이 작고 어리석은 스무 살 처녀가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결정해야 하다니,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을까요? 나 자신도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고 그저 비참할 뿐입니다. 도와주세요.”
일제는 엄마가 아인슈타인 ‘아저씨’와 결혼한 5년 뒤, 1924년 루돌프 카이저라는 작가와 결혼했다. 그녀는 집을 떠나면서 친구들에게 ‘아인슈타인의 집에서 나오게 되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그 짧은 소감에 만감이 묻어나는 것 같다. 그녀는 그 이후 파리로 이사했는데 어린 나이에 결혼문제로 ‘마음고생’을 너무 한 탓인지 1934년 파리에서 암으로 37세에 숨을 거뒀다.
딸이 심하게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아인슈타인을 따라 미국에 살던 엘자는 파리로 달려갔다. 한때 자신이 결혼 상대자로 염두에 두었고, 의붓딸이면서 조카이기도 한 일제가 사경을 헤매는데 아인슈타인은 엘자와 동행해 파리로 가는 것을 거절했다. 자신처럼 유명한 사람이 전쟁을 앞둔 유럽을 방문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그 전쟁은 그때부터 7년 후에나 일어날 아직 먼 이야기였건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그런 처신은 손가락질 받기 쉬운 일이다. 아내를 걱정해주는 마음이 조금만 있더라도 그런 식으로 아내의 딸이자 한때 자신에게 ‘큰 기쁨’이 되었던 의붓딸의 병문안 가는 걸 거절한 것은 엘자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냉정한 면모와 함께 그동안 누누이 알려져 왔던 대로 그에겐 일반인의 보편적 사고방식은 결여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 한 단면일 것이다.
다시 아인슈타인의 재혼문제로 돌아가 본다. 아인슈타인은 결국 ‘딸이냐 어머니냐’를 놓고 한바탕 소동을 벌인 끝에 마침내 엘자와 ‘사연 많은 결혼’을 한 것이다. 드디어 엘자는 7년이라는 긴긴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그렇게도 바라던 ‘아인슈타인 교수 부인’의 직함을 얻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녀 앞의 생은 그렇게 장밋빛 인생만은 아니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녀는 아인슈타인의 온갖 기행을 묵묵히 견뎌 내줘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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