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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68>'신성불가침' 성역이었던 아인슈타인의 서재

스카이뷰2 2013. 1. 26. 00:06

 

 

'신성불가침'의 성역이었던 아인슈타인의 서재

 

 

 엘자는 결혼하자마자 ‘아인슈타인 교수님’의 이미지를 깔끔하게 재탄생시켰다. 그동안 부수수하고 아무 옷이나 걸쳐 후줄그레해 보이던 아인슈타인은 엘자의 ‘출근 내조’를 받으면서 아주 핸섬한 중년신사로 변모해 갔다.

 

입성에서 인품난다’거나 ‘옷이 날개’라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아인슈타인은 더 이상 예전의 꾀죄죄한 그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 자체가 옷걸이가 워낙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약간의 내조'와 함께 그를 핸섬하게 보이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아인슈타인은 결혼해서도 각방을 썼다. 엘자는 그의 코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침실을 따로 쓴 것에 아무 불만이 없었다고 말했다. 밀레바와 살 때도 그랬지만 서재는 그의 허락 없이는 누구든 절대 출입 금지였다. 서재 정리 역시 다른 사람에겐 절대 손대지 못하게 했다.

 

오직 아인슈타인 본인이 직접 했다. 다락방에 위치했던 그의 서재는 노벨상 수상자의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다. 하지만 외적인 것에 개의치 않는 그의 강한 개성이 숨 쉬는 곳이었다. 그의 집을 방문한 물리학자 필립 프랑크는 이런 소감을 남겼다.

 

“그 집에는 호화로운 가구, 카펫과 멋있는 그림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 사는 아인슈타인은 상류층 집에 잠시 머무는 방랑자 같았다. 그의 서재는 간소했고, 마루에도 카펫은 깔려있지 않았다. 벽엔 뉴턴의 동판 흉상만 걸려 있었다.”

 

결혼 생활 내내 엘자는 아인슈타인의 명성에 반해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여인들에게 언제라도 남편과의 데이트를 허용하는 관용을 베푼 착한 아내였다. 그 여자들이 아인슈타인과 단 둘이 있고 싶어 하면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자리를 비워줄 정도였다. 참 불가사의한 상황이었다. 부처도 시앗을 보면 돌아선다는데...

 

어쩌면 엘자의 속마음은 이랬는지도 모르겠다. “너희들이 아무리 그래봤자 아인슈타인은 내 손바닥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단다. 실컷 놀으렴... 헛꿈 꾼다는 건 알고서.”엘자는 그야말로 아인슈타인을‘방목’해 키운 셈이다. 거기에는 아마 그녀만이 알고 있는 어떤 ‘부부간의 묵계’가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인슈타인과 엘자 두 사람만의 비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923년 아인슈타인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친구의 조카 베티 노이만과의 연애는 엘자도 상당히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이제 겨우 스물 셋인 노이만은 아주 당돌하면서도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물리학 연구소 비서로 채용하고 엘자의 묵인 하에 피지컬(physical)한 데이트를 즐겼다. 그들의 관계는 1924년 끝났지만 아인슈타인은 그녀와의 관계가 끝나는 것을 상당히 아쉬워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