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홍사덕 서청원
시월 초하룻날 밤, '왕실장, 부통령'으로도 불린다는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최경환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대표단 10여명을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초청, 만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엔 청와대 측에서 육군 대장 출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과 역시 육군 대장출신인 박흥렬 경호실장, 수석비서관 9명 전원과 얼마전 임명된 주광덕 정무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는 모두 29명. '좌장'은 당연히 김기춘비서실장이었다. 대통령비서실장이 이렇게 '성대한 만찬'을 주최했다는 건 요근래 들어본 적이 없다. 그만큼 명불허전의 '김실장 파워'를 만천하에 인증한 셈이다. 김 실장은 그 자리에서 "언론이 나를 과대 포장해서 부담스럽다. 나는 대통령 뜻을 밖에 전하고 바깥 이야기를 대통령께 전할 뿐이다. 옛날 말로 승지(承旨)"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김실장 본인도 자신에게 집중되는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런 기사를 읽다보니 꼭 무슨 궁중사극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충성심 깊은 노신하가 '주상'의 옥체미령하심을 걱정하는 그런 모양새 말이다. 어쨌거나 박근혜대통령으로선 이렇게 간절한 老충신의 절절한 마음씀씀이에 위로 받을 수 있을지 도 모르겠다.
이날 만찬의 하이라이트는 '와인 한잔'이었던 것 같다. '대통령 코밑'이란 이유로 '폭탄주'대신 우아한 와인으로 대신했다는 얘기다. 폭탄주가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마시지 않았다면 몰라도 대통령 관저 근방이라 불경스러울까봐 와인을 마셨다는 건 예의가 지나친 듯한 느낌이다. 과공비례(過恭非禮)! 말하자면 '대통령 눈치'가 보여 안마셨다는 얘긴데 이런 식으로 경직된 정서가 판을 친다면 창조경제를 창출해내야하는 이 정부가 과연 그런 중차대한 국가적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최하는 만찬이 잘 이뤄지던 바로 그 날,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원로그룹으로 꼽히는 홍사덕 전 의원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의 새 대표 상임의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홍 전 의원은 지난해 불법정치자금 6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로 새누리당을 탈당한 뒤 올해 1월 1심에서 벌금 300만원과 추징금 3000만원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는 사람이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6선 의원으로 경륜이 풍부하긴 하지만, 비리 전력 때문에 민화협 의장 ‘낙점’은 보은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작년 박근혜후보 대선출정식때 홍사덕은 "후보 주변 5미터 안에는 55세 이상은 배치하지 말라"는 특명을 내린 장본인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렇게 나이차별적 발언을 한 그는 올해 71세로 '친박 올드보이'로 불리고 있다. 조금은 블랙코미디스러운 상황이다.
어제(3일) 밤엔, 그렇게도 말이 많았던 경기화성갑 보궐선거 새누리당 후보자로 서청원 전의원이 확정됐다. 홍문종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장은 "지역 주민의 기대에 부응할 후보자. 지역 민심에 가장 근접한 후보로 판단했고 당선가능성 면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판단했습니다."라며 자상하게 공천과정을 설명하고 나섰지만 '청와대 내정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청원은 6선에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 대표와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연대를 출범시켜 이른바 '박풍'을 주도한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힌다.'친박연대'라는 세계에 유례없는 '인물정당명'을 내세웠다는 자체에서 '원조 친박'의 충성도를 가름할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청원의 박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는 하늘을 찌른다는 점과 71세 '고령'이라는 점에서 '친박 올드보이 귀환'의 완결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천비리'에 관련한 금품수수로 두 번씩이나 '감방신세'를 졌던 '전과'에 대해 새누리당 신진소장파 일부에선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그런 '모기소리'만한 저항은 이내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시중에선 김기춘(75세)-홍사덕(71세)-서청원(71세)이라는 '삼각편대'의 출격은 박근혜정부를 '옹위'하는 철옹성같은 체제로 박대통령으로선 안심하고 통치에 전념할 수 있을 거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하고 있지만 반면 '인사체증 동맥경화'에 걸릴 것 같은 고령 정치인들의 재등장은 길게 보면 결국 박근혜정부의 걸림돌로 작용할 거라는 부정적 평가의 목소리도 적잖다.
강력 파워를 쥐게 된 이들 '친박 올드보이'들의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이야 확실하게 '검증'된 것이긴 하지만 격랑의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세를 과연 그런 '낡은 충성심'하나로 헤쳐나갈 수 있느냐에 대해선 부정적 시선이 더 많은 듯하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그저 '될대로 되어가는 것'이겠지만 과연 저런 '친박'올드보이들의 귀환이 역사에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걱정이 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