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 민주당 대표(오른쪽)가 6일 서울 내자동 한 음식점에서
배웅 나온 손학규 상임고문과 인사하고 있다. [김형수 기자]
달랑 두 곳에서 치러지는 10월말 재보궐선거판이 예상외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새누리당이 거의 '기습작전'식으로 6선의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를 후보로 결정하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돈문제'로 두 번씩이나 감방에 다녀온 서청원을 굳이 후보로 내세운건 '청와대의 입김'탓이라며 이에 대한 '미미한 반발'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서청원은 발빠르게 물밑 선거운동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71세 '노정객' 서청원으로서는 어쩌면 마지막 정치인생의 승부수를 던진 절호의 기회이기에 목숨걸고 뛰어다닐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아직 후보조차 정하지 못했다. 당외투쟁한답시고 당대표는 노숙까지하고 있는 최악의상황 인데다 NLL대화록 파문으로 당은 거의 문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구원투수'로 나온 사람이 바로 손학규 전대표다.
며칠 전 독일에서 오자마자 묘한 '여운'으로 출마여지를 남겨뒀던 손학규는 노숙자패션의 김한길이 찾아가 간절히 요청한 첫날엔 거의 문전박대식으로 불출마 의사를 강력히 말했지만 불과 이틀도 지나지 않아 손학규는 '흔들리는 여심'처럼 출마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내일 정도면 그의 출마여부가 확정지어질 것 같은데 지금으로봐선 출마쪽이 51%정도인듯 싶다. 그렇게 '출마'쪽으로 간다면 그야말로 '빅매치'가 이뤄질 모양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그런 잔혹극이 펼쳐질 거라고 본다.
서청원을 둘러싼 여러가지 '비리 전력'과 아울러 최근 터져 나온 그의 아들과 딸의 '비리문제'그리고 무엇보다도 박근혜정부의 '실정'등등을 헤아려보니 '승부수'를 던질만하다는게 손학규쪽 판단인 듯싶다. 어차피 '선거'란 도 아니면 모의 도박으로 한 정치인의 '운명'을 가르는 사활의 분기점이긴 하지만 손학규의 출마는 아무래도 좀 위태로워 보인다. 67세 손학규로선 그런 '도박'에 목술 걸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문제의 경기 화성갑이란 지역은 재작년 손학규 붐을 일으켰던 '의식화된'분당과는 달리 '전형적인 여당지지'시골마을이라는 점이 손학규에 불리한 첫번째 이유다. 박근혜대통령을 무조건 지지하는 '농촌정서'와 함께 몇달전 암으로 사망함으로써 의원직을 내놓은 이 지역 의원에 대한 '애도의 정서'가 새누리당에겐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이어서 민주당으로선 손써볼 도리가 없어 보인다. 더구나 고인의 아들이 출마를 염두에 뒀다가 서청원 지지를 선언한 마당이고 보니 손학규로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대목이다.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이라는 옛말도 있지만 만약 이번 선거에 손학규의 출마와 패배로 이어진다면 그의 운명은 이제 급전직하로 추락할 일만 남은 셈이다. 그런데도 '삼고초려'로 손학규의 출마를 부추기는 당 지도부라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나 살자고 너 죽자'는 꼴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물론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게 선거이고 보면 아직은 손학규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한다는 건 우매한 예측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체적인 '유권자 정서'가 이번 화성갑지역에서는 아무래도 새누리당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아무리 재보궐선거는 집권여당에게 불리하다는 '전력'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풍전등화'같은 민주당의 운명은 어쩌면 이번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기사회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승리의 확률은 10% 미만이라고 본다.그렇기에 만약 손학규가 이번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그는 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차기대통령 후보'라는 자리를 내놔야 할 것이다.
사실 민주당이건 새누리당이건을 통틀어 손학규만한 '인재'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 과언은 아니다. 경기중고-서울대-옥스퍼드대로 이어지는 화려한 학벌과 대학교수에 4선의 국회의원,보사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등으로 이어졌던 그의 여봐라한 경력 역시 웬만한 정치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정치적 운명은 한나라당 탈당과 함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걸 입증하는 모델이 돼버렸다. 두 차례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후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문재인의 대선패배로 이제 겨우 '숨통'이 튀어간다고 볼 수 있는 이 시점에서 보궐선거에 공연히 출마한다는 건 '화'를 자초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에 손학규 자신도 불출마 의지를 강력히 보여줬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휩쓸려 만에 하나 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면 '비운의 정치인' 손학규의 앞날은 안개속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PS: 이 글을 실은 몇 시간 뒤 손학규고문은 "대선에 패배한 '죄인'으로서 1년도 안된 상태에서 나서는 게 국민 눈에 욕심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며 불출마를 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