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체크무늬 '노숙복'에서 말끔한 '양복'으로 갈아입었다는 민주당의 김한길 대표도 “신386·올드보이의 귀환이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인사들이 대통령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각을 세웠다. 실제로 박근혜정부엔 '오리지날 신386'과 그 '요건'에 근접해 있는 인사가 여럿이다. 요즘 '꽃보다 할배'라는 TV예능 프로그램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아마도 현실정치에서도 이 '할배들'이 다른 어느때보다도 진격의 나팔을 요란스레 불어대고 있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기춘(75)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 비서실장은 1939년생으로 64년 광주지검에서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64년이라면 얼마전 불명예 퇴진한 채동욱검찰총장이 유치원에 다닐 무렵이니 대단한 경륜이 아닐 수 없다. 김실장은 88년 검찰총장, 91년 법무장관으로 관직의 전성기를 보내고 92년 퇴임했다.
2008년 한나라당 국회의원 생활을 3선으로 마치고 정치 일선에서 일단 은퇴했다가 지난 8월 전격적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그의 복귀는 박대통령말고는 그 누구도 몰랐던 '하늘의 비밀'이다. 이래서 '꺼진불도 다시보자'는 속담의 효험이 또 입증된 셈이다.
박근혜계 진영에서 ‘어른’으로 대접받는 현경대(74)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비슷한 경우다. 현 부의장은 196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70년 육군 법무관으로 예편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박대통령에 대한 '충성도'면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할배'다. 이 정부 출범 무렵 가장 유력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지만 본인이 '체력'을 이유로 고사했을 정도다.
신386에 근접해 있는 인사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 며칠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상임의장에 선임된 홍사덕 전 의원이나 서청원 화성갑 보선후보도 71세 동갑으로 두 사람은 각각 68년,69년 기자생활을 시작으로 80년대 초 민한당 국회의원(11대)으로 정계에 함께 입성했다. 고령화시대여선지 이들은 아직 '젊은 축'에 속한다.
본인들 나이는 선반에 올려 놓고 '55세 이상은 대통령후보 주변에 배치하지 말라'는 둥 '늙음'을 경시하는 발언을 툭툭 던질 정도로 여전히 '청년정신'을 잃지 않고 오로지 '박근혜에 대한 충성'심하나로 '여생'을 보내려는 듯해 보인다. 예전 같으면 71세라면 은퇴해 '귀향'할 나이지만 그들에겐 그럴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빨간 운동화 신발끈을 조여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는 중이다.
NLL대화록 공개로 국가적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던 남재준(70) 국정원장은 40년대 출생이지만 60년대에 소위로 임관해 신386 인사들의 경력에 뒤지지 않는다. '언행'은 영락없는 신386이다. 멸사봉공의 군인정신으로 박대통령만을 바라보며 진격중이다.
이렇게 신386'원로'들이 워낙 팔팔하다보니 67세나 66세 정도는 아직 그들 앞에서 '명함'조차 못내밀 상황이다.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66세의 청와대 안보상황실장 김장수 정도면 '원로급'으로 목에 힘주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보다 6세에서 많게는 10세까지 연상인 '올드보이'들이 속속 요직을 차지하면서 '젊은 축'으로 밀리는 이상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꽃보다 할배'프로에서 새 멤버로 노주현(68세)을 추천하자 이순재를 비롯한 기존 4인방 할배들이 "걘 아직 어려!"라는 한마디로 거부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이렇게 '신386 올드보이'들의 맹렬한 진격에 대한 시각은 양분되는 것 같다. 가만 보면 '노년층'에선 이런 현상을 환영하고 있는 듯하다. 김대중정부에서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냈던 김광웅(72) 명지전문대 총장도 “옛사람이라 해도 믿음이 가면 안 쓸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다. '가재는 게편'이라고나 해야할지...
하지만 이런 신386들이 제아무리 노익장을 과시한다해도 '나이도망'은 못하는 법이다.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부작용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소리들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런 '신386'의 등장은 시대착오적이며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렇게 다른 대통령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 나타난 건 '박근혜'라는 특이한 이력의 대통령이 등장한 덕분이라는 시각도 있다. 1970년대에 '대통령 아버지'를 도와 일해온 박대통령의 눈에는 그 시절 한창 활약했던 30대,40대의 유능한 인사들에 대한 '향수'와 '신뢰'의 가치관이 큰 몫을 한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함께 나이들어온 '신 386 인사들'이야말로 박대통령에겐 변치않는 '든든한 가신(家臣)'으로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어쨌든 아직 새 정부가 들어선지 겨우 7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건 그들 신386 인사들의 대거 진출 탓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