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박근혜 대통령에게 먼저 다가가 한국말로 인사한 아키에(昭惠) 아베총리 부인

스카이뷰2 2013. 10. 11. 12:20

 

 

 
	아키에 여사 사진
아키에.

박근혜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는 아키에 일본총리부인.                            

 

한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후리후리한 키의 한 중년여성이 활짝 웃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그 여성의 옆에는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두 여성의 그런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한국인에겐 별 이미지가 안 좋은 일본 총리 아베다.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아베의 꽉막힌 국수적인 언행은 전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그나마 '현명한 부인'덕분에 아베는 간신히 체면치레를 한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베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여사가 7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만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먼저 다가가 한국말로 인사했다는 것이다. 일본 총리 부인이 한국대통령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이럴 경우 대체로 영어를 쓰는 게 '외교 관례'처럼 되어 있는데도 굳이 한국어로 인사했다는 건 그의 '한류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아키에는 한류(韓流)에 유독 관심이 많다고 한다. 일본의 수많은 중년부인네들이 드라마 ‘겨울연가’에 반해  '욘사마' 배용준을 사모하듯 아키에도 배용준의 광팬이다. 배용준이 일본을 찾으면 그와 만나려고 같은 호텔에 묵을 정도로 '팬심(心)'이 대단한 중년 여성이다. 배용준 뿐 아니라 고인이 된 박용하나 요즘 한창 뜨는 이병헌에게도 관심이 많은 '골수 한류 팬'이다.

 

그러다보니 급기야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간단한 대화는 가능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 '어학실력'덕분에 자연스레 박대통령에게 다가가 한국어 솜씨를 뽐냈을 법도 하다.   2006년 남편인 아베 총리와 함께 서울에 왔을 때는 서울 광희초등학교를 방문해 교과서에 실린 시를 읽어 내려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부인'으로서 꽤나 수준 높은 문화적 외교를 펼친 셈이다. 

 

일본 최고지도자의 부인이 이 정도로 한국 드라마와 주연 남자배우들을 챙기는 건 가끔 있는 일이긴 하다. 몇 년전 한국에 온 적이 있는 하토야마 총리의 부인은 이서진의 광팬이어서 총리관저로 이서진을 초대하기도 했다. 일본 중년여성들의 '한류배우'사랑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러니 아베총리의 부인이 한류문화에 심취해 있다는 건 얼어있는 한일관계에 해빙의 기회를 만들어 줄 활력소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아키에는 마쓰자키 아키오 전 모리나가제과 사장의 딸이다. 말하자면 '재벌집 딸'이다. 일본의 명문여대인 세이신(聖心)여대 졸업 후 광고회사 덴쓰에서 일하다가 1987년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아들인 아베 신조와 결혼했다.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중매를 선 두 사람의 결혼은 일본 정계와 재계 유력 가문의 결합으로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1962년생인 아키에는 몇 년 전 자신의 불임 사실을 언론에 공개, 그간의 힘들었던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다. 일본 유수의 시사잡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기고한 수기에서 아이가 없는 문제에 대해 “추측으로 보도되기 전에 미리 설명하고 싶다”며 “결혼 초기에 불임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 집안이 대대로 정치를 해온 가문이고, 지역구에서도 엄청난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도 고백했다. 하지만 아키에는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육아 대신 뭔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솔한 심경을 토로했다.  

 

아키에는 남편이 한때 양자를 들이자고 제안한 사실도 밝혔다. 아베 총리가 “미국에선 아이를 갖고 싶은 사람들이 불임치료를 해도 불가능할 경우에는 양자를 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고,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부부가 먼저 실행에 옮기면 어떨까”라고 했지만, 아이를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고 적고 있다. 그만큼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얘기다.

 

아키에는 시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의 압력은 없었고, 친정어머니도 “아이가 없는 쪽이 편하다”며 신경을 써준 것이 큰 위안이 됐다고도  썼다. “무자녀 전업주부들을 위해 뭔가 가능한 게 없을까 생각 중”이라는 장래의 구상까지 말함으로써 주부층의 격려와 지지를 얻었다.  총리부인이 그런 사생활적인 문제를 매스컴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일은 폐쇄적인 일본사회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아키에의 이런 소탈함이 일본국민에게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이렇게 솔직하고 소탈한 성품의 아키에는 지난 달 열린 일본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열린 '한류문화 축제한마당'에 참석해 눈물을 글썽이며 한일관계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한국측 인사들에게 “내가 한국 관련 행사에 참석하면 나쁘게 말하는 인터넷 댓글이 달려 참 속상하다. 진심을 몰라 준다”며  눈가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혔다는것이다.

 

아키에는 지난 6일 일본 지지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혐한(嫌韓) 의식을 지닌 일부 일본인이 한국 뮤지컬 관람 및 한일 축제 한마당 참석을 비난한 것과 관련해 “서로 상대방을 비판만 해선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일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아키에의 진솔한 성품에 비춰볼 때 진정성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그런 면에선 남편인 아베 총리보다 한 수 위의 '국제적 마인드'를 갖고 있어 보인다.   

 

 

 

                                                                                             

      2006년 10월 방한 당시 서울 광희초교에서

        한글 교과서를 읽고 있는 아키에. 동아일보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