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박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인물은 누구인가(시사저널 그림표)'없음'이 1위를 차지했다.
지난 10월 초, 독일에서 8개월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리더십을 소개하며 박근혜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기사를 좀 전 우연히 온라인 뉴스를 통해 봤다.
손학규의 이런 주장은 눈길을 좀 끄는 듯하다. 열흘 전 쯤, 손학규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자신의 싱크탱크인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7주년 기념식에 참석, "최근 메르켈과 박 대통령을 비교하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며 "메르켈은 국민에게 수더분한 아줌마 같은 느낌을 주는데 우리도 푸근하고 수더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에둘러 표현했지만 요점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이 푸근하거나 수더분하지 않다는 것과 '불통의 리더십'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으로 들린다. 그렇게 틀린 지적은 아닌 듯 싶다. 박대통령에겐 푸근함보다는 반듯하고 매사에 정확하게 따지려는 듯한 분위기가 더 많이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가까이하기엔 왠지 망설여지는 그런 냉랭함도 살짝 느껴진다.
아마 손씨는 그런 걸 지적하고 싶었나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비유도 들었다. "예를 들어 돌잔치에서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면 메르켈은 잘 먹었다고 하면서 무엇을 담아서 준다"며 "그런데 (박 대통령은) 가져가서 먹었는지 버렸는지 고맙다거나 하는 말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 이 정도면 박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이 꽤나 있어 보이는 듯하다.
지난 추석 직전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난 3자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야당의 요구 조건을 하나도 수용하지 않은 것을 비롯, 박 대통령의 정치 스타일에 대한 비판도 곁들인 듯하다. 사실 민주당이 잘한 건 거의 없다. 어린아이가 생떼쓰듯 무작정 대통령과의 단독 '영수회담'을 요구하며 시청앞 광장에서 텐트치고 노숙하는 야당대표의 행동은 '독신의 깐깐한' 여성 대통령이 보기엔 용서하기 어려운 무례였을 지도 모르겠다.
원, 떼 쓸 일이 따로 있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예의도 없이 그 무슨 행패냐라는 생각을 대통령은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대통령이 '창조경제'의 리더십을 발휘했거나 혹은 옛속담처럼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좀 여유와 아량의 씀씀이로 '미운 야당 애들'을 품었더라면 지금처럼 박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야 대화가 안 되고 정국이 꽉 막혀있어 나라 분위기가 뒤숭숭하다는 여론이 들끓었을 그 무렵 대통령이 '역발상의 역습'으로 서울 시청앞에 친히 납시어서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노숙자풍의 야당 대표에게 악수를 청하며 가까운 시일 내에 청와대로 와주십사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지금처럼
여야가 서로 으르렁 거리지도 않을 테고 추락중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어쩌면 90%대 이상 치솟았을 지도 모르겠다는 멍청한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아마 손학규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는 "제가 말씀드리는 통합의 정치는 내 것을 주는 정치고 그래야 통합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 우리 민주주의는 아직 한참을 더 가야하는구나 하는 비통함이 들었다"는 조금은 감상적이면서 낭만적 분위기를 내포한 말을 했다. 박대통령을 향한 '러브콜'처럼 들렸다는 말이다.
그는 "독일은 지금 연정을 논의하고 있을텐데 연정을 하려면 장관 몇자리를 양보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양보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독일의 사회민주당에서는 기독민주당에게 재무장관자리 달라고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증세를 통한 복지늘리기라는 공약을 관철시키기 위함"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메르켈은 정치를 안정화하기 위해 이를 내어주고 통합의 정치를 만들 것이다. 내 것을 떼어줄 때 통합의 정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훈수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니까 손학규의 눈에 비친 두 여걸의 차이는 바로 '관용과 아량'인 듯하다. 손학규가 볼 때 박대통령의 '통치행태'는 협량하고 강파르다는 얘기다. 어쨌거나 지금 누가봐도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의 정치스타일은 '자로 잰듯한' 한치의 오차를 허락지 않는 매우 깐깐한 모양새인 듯하다.
어제(16일) 종편 TV에 출연한 한 정치평론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 광선을 당해낼 인사는 아무도 없을 정도로 박대통령은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진 분"이라는 '아부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류의 '칭찬이야말로 손학규가 박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는 푸근함이나 수더분함과는 거리가 먼 '권위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얼마전 박대통령은 꽃분홍색 점퍼를 입고 시골 장터로 달려가 좌판 할머니들과 정겨운 악수를 일일이 나누는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오랜 가난에 찌든 듯한 그 할머니들이 여성 대통령의 고운 손을 부여잡고 '감읍'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친박 인사들'은 훈훈함을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정치가 잘 풀리지 않고 있는 요즘, 대통령이 그런 자애로움을 야당 대표나 반박(反朴)인사들에게 먼저 베풀었다면 나랏일은 훨씬 더 잘 돌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본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가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을 때 자기 것을 떼어주고 국민에게 푸근한 마음을 줬어야 했다"는 손학규의 지적처럼 '정치적 약자'들 혹은 정치적 숙적들을 통합의 정신으로 따스하게 감싸준다면 대한민국은 최소한 '정치적 걱정거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면 국력은 더욱 상승할 것이다. 대통령까지 됐는데 세상에 못할 게 뭐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