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joins.com.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일요일인 27일 오후 2시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두산베어스 대
삼성라이온즈 3차전 시구자로 나섰다는 뉴스를 보며 오드리 헵번이 ‘청순하고 순수한 공주’로 나오는 60년
전 영화 ‘로마의 휴일’이 떠오른다. 박대통령은 그렇게 환하고 밝고 경쾌한 역을 맡아야 더 어울려 보인다.
골치 아픈 현실정치엔 가급적 휘말리지 않는 게 '박근혜 스타일'의 기본 같다는 느낌도 든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시기인 12세 소녀시절부터 16년간이나 청와대의 ‘큰 영애’로 살아왔기에 ‘누항
(陋巷)의 때’를 전혀 묻히지 않았던 것이 환갑을 넘기고 진갑의 나이가 된 오늘날까지도 박대통령에게 저런
‘해맑은 모습’을 간직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 한창 시끄러운 ‘대선불복’이네 ‘헌법불복’이네처럼 음모가 들끓고 어둡고 칙칙한 ‘파워 게임’같
은 건 박대통령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직 저렇게 높고 푸르른 가을하늘 아래 프로야구를 사랑하는 ‘착
한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환하게 웃는 바로 저 시구자의 역할이야말로 박대통령에겐 적역이라는 느낌이
다.
박대통령의 시구 모습에선 그동안 시구에 나섰던 미모를 뽐내는 ‘꽃다운 톱클래스’ 어린 연예인들을 제압하
는 ‘화려한 존재감’도 보인다. 아마도 ‘최고 권력자’의 아우라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잠실구장에
앉아있던 관중들은 더 열렬히 환호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폭풍 환호 속에서도 ‘작은 야유’의 소리도
좀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부에선 ‘복잡한 정치 현안’엔 침묵하던 대통령이 잠실구장의 시구자로 나선 건 다소 생뚱맞은 느낌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런 모습이야말로 ‘박근혜 스타일’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
제 취임 8개월을 넘기고 있지만 야당에선 여전히 대통령을 ‘괴롭히고 있다’. 뭘 어쩌자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는 여당의 비판도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판이 시끄러울 때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일단 그 최종책임은 대통령에게로 돌아간다
는 건 정치판의 불문율이라는 걸 감안할 때 대통령의 시구는 ‘타이밍’에 다소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요일 한낮, 대통령의 시구는 극히 일부 관계자들을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어서 다들
놀라는 표정들이었다고 한다. 시구에 앞서 전광판에 시구자로 ‘대통령 박근혜’라는 자막이 나오자 관중들과
선수들이 모두 일시에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왜 아니겠는가. 야구장 전광판에 사전 예고도 없이 ‘대통령’이라는 글자가 ‘돌직구’처럼 떴을 때 놀라지 않을
‘평범한 국민’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효과’만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공을 던진 뒤 환하게 웃으며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관중에게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고 한다. ‘연예
인 급 대통령’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박 대통령이 왼손에 낀 글러브는 파란색 바탕에 태
극기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그러고보니 대통령의 미소는 로마의 휴일에
나온 오드리헵번의 미소 만큼 '매력'이 있어 보인다.
62세 여성 대통령이 20대 처자들처럼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태극마크가 새겨진 글로브를 끼고 야구공을 힘
껏 던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소 올라갔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추석이후 14%나 급전직하했던 대통령의 지지율 탓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은근히 노심초사하
다가 저런 ‘대통령의 시구’라는 비타민 처방으로 지지율 만회를 기획했을 지도 모르겠다.
27일 청와대는 트위터를 통해 "조금 전 코리안 시리즈 3차전에서의 박근혜 대통령의 시구, 잘 보셨나요? 글
러브에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이라는 글과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시구 모습이 담긴 방송 캡처
사진을 게재했다. 바로 이대목이 ‘청와대 관계자’의 노심초사를 입증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여성대통령의 최초 시구라는 점에서 박대통령의 어제 시구장면은 그리 나쁘지는 않은 인상을 남
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야당답게 매운 비평을 했다. 대통령의 ‘깜짝 시구’에 대해 "한가하고 무책
임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날 현안 브리핑을 통해 “박 대통령이 최근 떨어지는 국정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전(全) 국
민적 관심이 모인 야구장으로 달려간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고도 했다.
야당으로서는 으레 내놓을만한 비평을 내놓았다고 본다. 하지만 대통령의 ‘마이 웨이’를 고집하는 듯한 시
구 모습에선 야당의 그런 비판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어떤 의지’가 느껴진다. 그게 아마 대통령 본
인이나 야당에겐 ‘결정적 비극’이 될 수도 있겠다. 서로 평행선을 달리겠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어쩌면 ‘약자’인 야당으로선 대통령의 그런 ‘화려하고 산뜻한’시구 모습을 보며 속이 상했을 수도 있겠다. 자
신들과의 ‘대화’는 멀리하면서 야구공이나 던지고 있는 대통령의 ‘무심함 혹은 대범함’에 야당은 어찌해볼
엄두조차 못낼 수도 있겠다. 야당이 뭐라하든 말든 '마이 웨이'를 간다는 듯한 대통령의 결연한 자세가 야당
을 더 코너에 모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야당도 대한민국 ‘국민’임엔 분명하다. 이렇게 정국이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는 아무래도 ‘힘
있는 사람’이 아량을 보여 주면 더 멋있을 것 같다. 지금 당장 대통령이 나서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최고 권력자’ 대통령이 화사하게 시구하는 그 마음처럼 힘없는 야당에게도 따스한 손을 내민다면 정국은
금세 해빙이 될 듯도 싶다. 순진한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통령의 깜짝 시구 뉴스를 보며 대통령이 시구하는 것처럼 한 걸음만 더 야당을 포용하는 데 신경을 써준
다면 대한민국 정치는 잘 풀려 나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 정국은 야구 공처럼 전적으로 대통령 손 안에
있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10월 28일 중앙만평. 대통령의 시구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평으로 그려낸게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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