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 수송동 성당에서 열린 '대통령 사퇴 미사'장면.(다음자료사진)
'금요일 밤의 반란'을 주도한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젊은 신부들의 '대통령 사퇴요구'를 보면서 박대통령과 신부들 그리고 국민의 입장에 서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봤다. 우선 사퇴요구 대상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속상해 했을 것같다. 다 알려진대로 박대통령은 성심여중고 서강대출신이다.
대통령은 감수성이 제일 예민한 시기인 10대 여학생 시절을 자주색 '빵떡모자'와 자주색 교복을 입는 성심여학교에서 보냈다. 이 시기에 원로여류시인인 김남조를 대모(代母)로 '영세'까지 받았던 카톨릭 신자였다. 대학도 천주교 재단이 세운 학교를 다녔으니 박대통령에겐 '친 천주교'적 마인드가 알게모르게 배어있었을 거다. 그런 천주교 측으로부터 '대통령 사퇴하라'는 끔찍한 충고를 들었으니 기분이 유쾌할 리가 없다. 섭섭해도 많이 섭섭했을 것이다.
어제 그런 대통령 사퇴요구 미사가 열렸다는 보고를 받고 대통령의 심기는 아주 많이 상했을 듯 싶다. 취임 이래 불철주야 나라걱정만 하고 지내온 자신을 몰라주는 젊은 신부들이 너무 얄미웠을 것이다. 독신의 여성 대통령은 청와대의 드넓은 안방에 홀로 있으면서 한없이 외로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진짜 자기 편'이 있어서 호소도 하고 함께 비분강개했더라면 그 분함을 조금이라도 삭힐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대통령의 고독'이 더 짙어졌던 우울한 금요일 밤이었을 것 같다.
역대 대통령 중에 취임 1년도 안돼 '젊은 신부'들로부터 이렇게 사퇴요구를 받은 대통령은 내 기억엔 없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아무래도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아무리 '사심 없는' 사제들이라지만 이렇게 대놓고 미사라는 종교 형식을 통해 현역 대통령을 물러나라고 외쳤다는 건 종교인의 기본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신부들도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개인의 의사표시가 아니라 '종교의 힘'을 빌어 '떼로 몰려다니며' 정치에 개입하려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건 종교인의 바른 행위로 봐주긴 어렵다는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미사에는 성당 안 제대(祭臺) 옆에 '부정 불법선거를 규탄한다. 대통령은 사퇴하라!'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평신도와 외부 단체 인사 10여명이 성당 입구에서 '불법 부정선거 당선범 박근혜, 귀태니까 셀프 사퇴!'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촛불 퍼포먼스까지 펼쳤다고 한다. 이 쯤되면 종교행사라기 보다는 정치행사이자 너무 세속에 물든 듯한 경박한 뉘앙스를 풍긴다고 할 수 있겠다.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귀태'니 '셀프 사퇴'니 하는 시위용 피켓이 난무했다는 대목을 보면서 '젊은 신부님들'이 세속에 너무 물들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천박한 느낌이 들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종교인다운 엄숙함이나 고결함 대신 저잣거리의 시정잡배스런 이미지가 느껴졌다는 말이다.
친야(親野) 단체 관계자들은 이런 신부들의 활동 내용을 미국 CNN 방송 홈페이지의 일반인 참여 커뮤니티인 'CNN 아이리포트(iReport)'에 올리기도 했다는 보도에는 그저 한심한 기분이 들 뿐이다. 집안싸움을 국제적으로 공개해 망신을 자초하는 행위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런 식의 '시위'는 국민의 마음을 사기 어렵다는 걸 '철부지 신부님들'은 알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너무 정치 과잉시대인 듯하다. '개나소나' 다 정치에 뛰어들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물론 정치인들이 제 몫을 다 해주지 못하고 있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겠지만 아무래도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은 표류하는 난파선 같다는 불길한 기분을 들게 한다. 일부에선 오죽하면 신부님들마저 거리로 나왔겠느냐고 주장한다지만 꼭 그런 식으로 분란을 일으켜야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큰듯 하다.
젊은 신부들의 그런 '돌출행위'는 환영받기 어렵지만 일부의 지적대로 '대통령의 귀책사유'도 피해가기 어려운 게 현실인 듯하다. 늘 나오는 얘기지만 대통령의 소통능력과 포용력이 아쉽다는 대목은 대통령 자신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할 부분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취임 후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3대 종단 중 유독 천주교계만 회동하지 못하며 껄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10월 18일 천주교 주교회의 주교단과 오찬을 할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고 한다. 청와대측은 "일정이 맞지 않아 연기된 것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국정원 문제 등 의제 조율이 안돼 무산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어쩌면 '소문'대로 천주교 주교측이 청와대 측의 '입맛'대로 응하지 않아 연기됐다는 설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대통령 귀'에 단소리만 들리게 하려는 듯하다보니 '조율'에 실패한 게 아닌 지 모르겠다. 그래도 천주교 주교들 정도의 급이라면 대통령 앞에서 무슨 소리든 다 할 수 있게 해야만 대통령을 가로막고 있을 수도 있는 '비현실적 인식'을 걷어낼 수 있을 텐데 조율이네 뭐네 하면서 그걸 막았다는 건 청와대측의 '과잉 충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만약 지난 달 열기로한 주교들과의 '오찬 회동'이 예정대로 열렸더라면 어제 같은 '불상사'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사퇴' 요구가 범천주교적 의사는 아니지만, 천주교계 내에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기류가 적지 않아 이번 사태을 호락호락 넘기는 건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이번에 대통령 사퇴를 요구한 진보적 성향의 정의구현 사제단과는 달리 교황청의 승인을 받은 공식 기구로 '보수 성향'이 강한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도 지난 10월 15일 "국가권력의 불법적 선거개입과 은폐축소 시도, 밀양 송전탑 건설 강행 등 공권력의 과도하고 부당한 행동에 대해 우려스럽다"며 현정부를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했다고 한다. 또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구대교구도 지난 8월 출범 102년 만에 시국선언에 나선 건 천주교계의 '반 박근혜' 기류를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쯤해서 '대통령 사퇴요구 미사'사태를 정리해보자. '불타는 금요일 밤 사제들의 反 박근혜 반란'은 국민들의 호응을 얻기엔 너무 나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물밑 대화'로 미리미리 막아내지 못한 청와대 정무라인의 무능함도 문제가 심각하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핵심 키'를 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탁 트인 마인드'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녀시절 천주교 신자로 영세까지 받은 박대통령으로선 '좋았던 옛시절'을 회상해 보며 일단 천주교 주교들도 만나보고 또 젊은 사제들도 청와대로 불러들여 점심도 함께 먹으면서 '국민의 소리'를 직접 경청하는 허심탄회한 열린 마음자세를 보여준다면 지금처럼 꽉 막힌 정국은 금세 풀릴 것으로 확신한다.
대통령이 '외치'에 공들이는 십분의 일만큼만이라도 '내치'에 신경쓴다면 박근혜 정부 남은 임기의 미래는 밝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을 만나 이야기 하고 싶어하는 '반대 세력'은 무조건 다 만나주기를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싶다. ‘싫은 사람들과의 대화’가 정치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그들과 '프리 토킹'을 하다 보면 정국은 저절로 잘 돌아갈 것이다. 대통령까지 된 마당에 두려울 게 뭐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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