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민봉 국정기획수석, 박 대통령, 박준우 정무수석,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청와대사진기자단 |
평소 여론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늘 맞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여론조작설 같은 것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까닭에 여론조사 보도는 반쯤 접고 본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가 어떨때는 신통하게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바로 박근혜대통령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다.
한 시골성당 은퇴신부의 시국미사 발언이 대한민국을 들썩이게하고 대통령은 '나라를 뒤흔드는 세력은 묵과하지 않겠다'는 엄중한 경고 발언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온국민에게 '선언'하는 순간 여론은 대통령에 대해 등을 돌릴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대통령 취임 이후 한달만에 인사문제로 대국민 발표를 하면서 화를 내는 대통령의 모습에 국민은 지지를 거둬들였었다. 그 이후 화사한 패션으로 국제외교무대에 데뷔한 '공주 풍 대통령'의 모습에는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지지를 보냈다.
우리 국민은 박근혜대통령에 대해 이중적 잣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박근혜라는 '정치적 인물'을 많이 사랑하고 그를 괴롭히는 세력에 대해선 함께 화를 내는 경향이 있어왔지만 이상하게도 대통령 자신이 목청높여 성을 내거나 무서운 이미지로 다가오면 대번에 시들해져 버리는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최고의 영화'를 누리는 공주에서 어느 날 부모 모두를 총탄에 잃고 '소녀가장 공주'가 되어버린 조금은 측은한 이미지의 '박근혜'는 사랑하지만 기세 등등한 권력자로 변신해 국민에게 호령하는 모습의 박근혜에겐 어느새 '경고등'을 울리며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엊그제 대통령은 경주 석굴암을 둘러본 뒤 부리나게 상경한 뒤 곧바로 감사원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에 대한 임명장을 부랴부랴 수여했다. 그 시각 여의도에선 꽉막힌 정국을 풀어보자면서 여야 대표 등이 모여 오랜만에 '대화'를 하고 있었다. 청와대에선 그런 정치적 고려는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하필이면 그 시각에 맞춰 임명장을 줬는가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야당에선 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몇 년간 아내와 아들의 생일파티를 위해 일류호텔에서 밥을 먹으면서 법인카드를 사용했는데 그 비용이 무려 수천만원이었고 심지어 그 카드로 미성년자를 고용한 불법 룸살롱에까지 드나든 '파렴치한'이라며 절대 임명 불가를 외쳐왔다. 그렇게 좀 껄끄러운 인물에대해 대통령은 여야 회담이 열리고 있는 시각에 임명장을 준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반 상식으로 볼땐 그런 모습은 썩 '국민화합적'이지 않았다. 대통령이 야당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권한 행사를 하는 그런 강한 모습에 대해 우리 국민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게 이번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우리 국민 대다수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문제 있는' 복지부 장관 후보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법인카드로 일류호텔서 가족회식을 했다는 대목에서 국민은 거부감을 느낀 것이다. 사소하지만 정서적으로 영 거부감을 일으키는 행동거지라는 점에서 국민감정이 상했다는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일제히 하락하고 있다는 보도는 그런 맥락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시국미사에 대한 박 대통령의 ‘강경 발언’과 이후 종교계의 반발, 새누리당의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 등 일련의 사태에서 박 대통령의 독단적 이미지가 부각되면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게 언론의 분석이다.
지난주 후반부터 지난 2일까지 이어진 4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최소 1.8%포인트에서 최대 7.1%포인트나 떨어졌다고 한다.
모노리서치가 지난 1일 공개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을 보면,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열흘 전(11월18일)에 견줘 6.4%포인트 하락한 54.4%였다.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3.2%포인트 오른 37.4%였다. 8.2%는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리얼미터도 지난 2일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조사해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전주(11월25일 발표)보다 1.8%포인트 떨어진 55%로 나타났다.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5%포인트 올라 38%를 기록했다. 리얼미터는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새누리당의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단독 처리,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등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가열됨에 따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1주일 만에 다시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리서치뷰도 지난달 30일과 이달 1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잘함’ 응답이 직전(11월20일) 조사 때보다 7.1%포인트 떨어진 45.7%로 나왔다고 3일 밝혔다. 지난달 29일 한국갤럽이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전주(11월22일 발표)에 견줘 4%포인트 하락한 53%로 나왔다. 부정적인 평가는 2%포인트 올랐다. 부정적 평가 이유 가운데 ‘독선·독단·자기중심’을 꼽는 응답이 13%로 전주의 4%와 견줘 1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박 대통령의 잇따른 강경 발언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여론조사뿐 아니라 SNS에서도 확인되고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2일 김진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어떤 경우라도 헌법을 부인하거나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 이것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해 그런 생각은 엄두도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무서운 대통령'이미지가 여론의 등을 돌리게 한 것 같다. 국민은 대통령이 화를 내면 등을 돌린다는 걸 대통령과 그 주변인사들은 알아야 할 듯하다.
대한민국 국민처럼 정치 이슈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는 국민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오죽하면 백여년 전 구한말 선교사로 온 미국인 목사는 "조선사람처럼 정치에 관심 많은 국민은 없다"는 말을 했겠는가. 그런 '전통'이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정치인들 특히 최고 권력자에 대해서도 예리한 비판을 사양하지 않는다.
지금 저렇게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흐르는 건 아무래도 자애롭고 온화한 이미지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문재인 의원의 지적처럼 '무서운 대통령'으로 변신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평등의식'이 무척 강한 우리 국민은 대통령이 '무서운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모습을 보이면 대번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은 모친인 육영수여사의 자애로운 이미지로 국민에게 다가가 진정성 있고 '따스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자세를 보여줘야만 하락하고 있는 지지율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1970년대 '박정희 유신시대'의 무섭고 강한 권력자의 모습은 원치 않는 다는 걸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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