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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대자보 화제 "하 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

스카이뷰2 2013. 12. 13. 11:11

 

 

 

고려대생이 직접 써붙인 대자보.

대자보를 쓴 주현우 학생. (경향신문 정지윤기자사진)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고려대 학생이 손글씨로 써서 붙인 한 장의 대자보가 대학가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하수상한 시절에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되는 이 글은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 군이 쓴 것이다. 10일 오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를 손으로 써 교내에 붙인 이 학생의 글은 온라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취업난으로 한동안 '잠자고 있던 학생운동'에 불씨를 지피고 있는 듯한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이 대자보를 쓴 학생은 좌파 성향의 운동권 학생이 아니라 어수헌한 세상을 걱정하는 '순수 열혈청년'이라는 점에서 더 관심을 모으고 있는 듯하다.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로 시작하는 대자보는 아주 수수한 문체의 평범한 말인데도 '울림'이 큰 문장으로 보인다. 

 

자신을 '88만원 세대'로 규정하고 있는 이 학생은 요즘 한창 우리 사회의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여러가지 정치 사회문제에 대해 소박한 어투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문장의 흐름으로 봐선 어떤 운동권과도 관련 없는 그저 '온순하고 평탄한 스타일'의 삶을 살아온 중산층 대학생같다.

 

이 학생이 쓴 대자보에는 최근 벌어진 민주당 청년비례대표 의원이 밝힌 '대선 부정선거'규탄에 대한 새누리당의 대응에 대해서도 온건한 표현이지만 분명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이다”.

 

이 대자보를 찍은 사진은 페이스북에서 1000회 이상 공유되고 있다. 대자보가 게시된 교내 게시판 옆에는 대자보에 호응하는 다른 학생들이 손글씨로 쓴 ‘안녕하지 못합니다. 불안합니다!’, ‘진심 안녕할 수가 없다!’ 등 응원 게시물이 여러 건 붙어 있다. 말하자면 '대자보 동참'운동인 셈이다.

‘09학번 강훈구’라고 밝힌 학생은 ‘즐거운 일기’라는 글에서 “나는 이 글을 보고서야 내가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입학하던 해 용산에서 6명이 불에 타 죽었지만 교수, 선배, 친구 아무도 그 얘기를 하지 않았다. 다 이렇게 사는가보다 생각했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말하는 사람은 있어도 ‘너는 안녕하냐’ 묻는 이는 없었다”고 쓰고 있다.

고려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대자보 게시물에 댓글이 수십건 달렸다. 한 학생은 “안녕 못합니다. 그렇다고 나갈 용기도 없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함부러 나섰다가 기득권 눈밖에라도 나면 취직도 못하고 목숨줄이 그들에게 있으니 어찌 대항하겠습니까. 용기없는 자라 죄송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자보 학생'은 “온라인과 달리 현실 캠퍼스에서는 개인이 사회 문제에 대해 목소리 내는 게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돼 왔다. 내 스스로 이름을 걸고 말해야겠다는 의미로 자보를 썼다”며 “일반적인 학생운동단체들이 쓰는 글과 표현방식이 좀 다르고 날 것 같아서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밝히고 있다.

한 평범한 대학생의 소박한 '사회 비판'이 연말 '핫 이슈'로 떠오는 것 같다.

 

 

*아래는 고려대생 주현우의 대자보 전문.

 

 

<안녕들 하십니까?>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