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쿠니는 반성하지 않는다
92세의 일본도 장인 카리야 할아버지.
<아래 글은 몇 년전 본 영화'야스쿠니는 반성하지 않는다'에대해 제가 쓴 글입니다.>
1945년 8월15일은 우리에겐 ‘8·15 해방’이지만 대일본제국을 꿈꿨던 일본인들에겐 전쟁패망의 국치일이다. 히로히토 일왕이 떨리는 ‘옥음’으로 ‘항복’을 선언하면서 제국주의 일본의 꿈은 일단 사라졌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해마다 8·15 무렵엔 일본 도쿄에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일본 총리가 참배하네, 안하네로 시끄러워지곤 했다. 그만큼 한,중,일 3국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도 드물 정도가 된 것같다.
2001년 이후 집권한 ‘사무라이 풍’의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참배를 ‘공약’으로까지 내걸기도 했다. 취임공약에 까지 내걸어야 할 정도면 아무래도 일본국민들에게도 큰 관심사 중에 하나인 듯하다. 그런 고이즈미는 5년여의 재임기간동안 무려 6차례나 야스쿠니에 참배했고, 2006년 8월15일엔 아예 ‘연미복’차림으로 정식참배 모습을 보임으로써 한국, 중국의 정부와 시민단체로부터 격한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막무가내, 오불관언의 자세로 밀고 나갔다. 안하무인이라고나 해야할지.,,
‘야스쿠니’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해마다 악순환처럼 한·중·일 3국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일까. 중국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리잉은 10년의 ‘정밀 취재’ 끝에 우리에게 ‘야스쿠니’를 필름으로 선보였다. ‘각고의 노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92세 노인이 날카로운 ‘니폰도(日本刀)’로 검도 동작을 취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나이보다 20년은 젊어 보이는 ‘일본도 제작의 장인(匠人)’ 카리야 할아버지는 일본이 ‘대동아공영권과 대 일본제국의 꿈’을 으스대던 시절부터 칼을 만들어 나라에 헌납해 왔다.보기에도 섬뜩한 그 칼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흉기라는 건 그에겐 별 의미가 없다. 그냥 묵묵히 자기 일을 해왔을 뿐이다. 노인은 지금도 정정한 현역으로 오로지 칼 만드는 일에만 혼신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의 한 축은 그의 칼 만드는 모습과 인터뷰를 담고 있다. 다른 한 축에는 야스쿠니를 ‘순국선렬의 영령’이 있는 곳이라며 지금도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의 복장을 하고 참배하는 사람들, 일본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항의하는 사람들, 원하지도 않는데 왜 우리 가족의 이름이 여기에 있느냐며 항의하는 한국 사람들, 대만 사람들이 있다. 영화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야스쿠니를 둘러싼 어수선한 현실을 시끌벅적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일본제국’시절의 옛 영화(榮華)를 못 잊는 호호백발 할아버지들은 수 십 년은 족히 되었을 군복을 갖춰 입고 일본도를 빼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야스쿠니 신사로 행진해 나간다. 그들에겐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철벽같은 신념, ‘천황폐하’로 상징되는 대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심이 펄펄하다.
그런 그들이기에 요즘 젊은 애송이들의 한심한 작태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너희들이 대일본제국의 야마토 정신을 아느냐”고 흰 수염 휘날리며 대갈일성 하는 노인들의 목소리엔 제국주의 시절 군인으로서의 기개가 배어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그들은 모른다. 가여운 인생들이다.
오로지 칼 만드는 일밖에 모르며 살아온 90대 노인은 세상일따윈 모르는 듯하지만 말을 안한다 뿐, 나름의 생활철학은 확고하다. 그 역시 ‘천황폐하’에 대한 충성심 하나는 대단하다. 1945년 8월15일 천황폐하의 ‘옥음’을 담은 테이프를 여태까지 ‘취미삼아’ 듣곤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노인은 일견 일본인의 장인정신, 일본의 국민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특정 이데올로기도 편들지 않고 전쟁도 싫어한다. 오직 자신의 일만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든 칼의 용도는 상관없다. 근대 역사에서 천황은 곧 일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는 천황, 국가를 위해 일해왔을 뿐이다.
지금 대부분의 일본 올드세대들의 생각 역시 카리야 할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전쟁의 동기가 중요하고, 일본은 아시아 평화를 위해 전쟁을 했다고 배워왔다.
10년 넘게 일본에 살며 이 다큐멘터리를 준비해온 리잉 감독은 이 할아버지를 방문해 조금은 ‘어눌한 일본어’로 집요하게 야스쿠니와 일본도에 대해 소감을 물어본다.
1933년(소화8년)부터 종전의 해인 1945년까지 8천개가 넘는 ‘야스쿠니 도(刀)’를 만든 이 노인은 자신이 만든 칼의 ‘용도’에 대해선 애써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그는 자신의 ‘일’에 몰두해 ‘오늘’을 살아왔을 뿐 이다. '망백'의 노인이 나이보다 그렇게 훨씬 젊어 보이는 것도 어쩌면 이 ‘몰입의 세계’가 준 특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변하는 세월과 함께 이제 ‘일본도’는 ‘장식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한때의 '정책적 오류'로 빚어진 자국민의 비극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명예로운 장소' 야스쿠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야스쿠니는 일본을 위해 목숨을 ‘헌납’한 240여만 '순국용사들'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국립현충원’과 비슷한 곳이지만, 일본인들은 거의 ‘종교’처럼 받들고 있다. 오죽하면 신사(神社)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일본에 억울하게 끌려온 이웃나라 젊은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선 생각을 못하고 있는듯하다. 전쟁당시에 그랬듯이 그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결국엔 해당국간의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이제 ‘야스쿠니’는 국제적 논쟁의 장으로 일본인의 부도덕함과 옹졸함을 세계에 알리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2차대전 당시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일본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죄없는 외국인들이었다. 그렇기에 그들 후손들은 지금 저렇게 야스쿠니로 달려가 애타도록 절규하며 위패를 그들의 조국으로 모셔가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야스쿠니 신사측에선 그걸 허락지 않는다. 신사 담당자의 황당한 궤변은 어처구니가 없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야스쿠니는 '대일본제국'을 위해 ‘꽃잎처럼’ 산화한 영령들을 위령, 현양하는 곳이기에 타국인들이야 뭐라 하든 말든 ‘신사참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마다 정월초하루면 ‘순진한 일본인’들은 이곳으로 ‘복을 빌러’ 우르르 몰려가곤 한다. 일반인들이야 정치성이 전혀 없는 단순 참배라 그렇다쳐도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의 참배는 차원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일본국 총리의 ‘신사참배’문제는 늘 정치적으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의 위패마저 합사한 이후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전쟁피해 당사국에선 일본총리의 신사참배는 ‘절대불가’라며 목소리를 높여왔었다. 그럴수밖에 없지 않는가. 전범국가로서의 진정한 반성을 한다면 그런식의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도리인 것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라. 너희 아버지가 대만에서 죽었다면 너희는 어떻게 할건가!"라고 절규하는 이 영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피해자의 생각은 하지 않는 일본인의 근시안적 단견은 용서받기 어려운 것이다.
일본의 강제징집으로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타국인의 영혼이 왜 ‘일본인 A급 전범들’과 함께 있어야하는지를 그 유가족들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영화 속 대만인 유가족 여인은 “영혼에도 품격이 있는 법”이라며 그런 전범들 속에 자신의 부친이 누워있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절규한다. 그럼에도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첫해인 2001년 8·15 이틀 전날 전격 참배를 시작으로 급기야는 총리말년인 2006년 8월 15일 ‘연미복’까지 갖춰 입고 당당히 참배하기에 이른다. “너희는 떠들어라 나는 내 길을 가련다”식이라고나 할까.
이런 고이즈미에 대해 일본 지식인이나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진보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에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선 ‘위헌 소송’을 내 재판소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속 고이즈미는 화가 잔뜩 난 사무라이 표정으로 “야스쿠니 신사참배는 마음의 문제이고 정신의 자유의 문제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일부 지식인이나 언론인들을 경멸한다”고 사무라이가 일본도(刀)를 마구 휘두르듯 거침없이 반박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일본 최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총리라는 사람의 천박한 ‘의식 수준’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국민은 물론이고 아무 죄없는 이웃나라의 수많은 사람을 죽인 역사적 사실은 선반에 올려놓은 채 마음의 문제라고만 주장한다는 건 어불성설 아닌가.
실제로 고이즈미는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은 후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모른다”라고 신경질적으로 16차례나 소리를 질러댔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적반하장이라고나 해야할지...그만큼 이 ‘야스쿠니’문제는 일본인들의 ‘성역(聖域)’이라고나 할까.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벌인 침략전쟁 탓에 애꿎게 죽어가야 했던 이웃나라 국민들의 죽음에 대한 ‘사죄’ 보다는 오로지 자국민 전사자들의 혼령에 대해서만 애틋해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단적 국가이기주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영화에선 야스쿠니 신사참배 기념식장에서 정성스레 인사말을 하는 동경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모습도 클로스업해주고 있다. 일본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극우보수인사인 그는 야스쿠니에서 ‘연설하는’ 자체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일본의 ‘올드 세대’들이 왜 야스쿠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지를 아주 극명하게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의 인사말 도중 젊은이 두 명이 ‘신사참배 반대’를 외치며 ‘난동’을 부린다. 극우인사들은 이들을 중국청년으로 단정하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10차례 넘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때리고 쫓아낸다. 경찰에 인계되는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그들은 중국청년이 아니라 일본청년들로 밝혀진다. ‘야스쿠니’를 일종의 ‘국가적 정신병’으로 규정하는 이 다큐멘터리 감독의 눈에 그래도 ‘희망적인 일본최후의 보루’는 일본의 순수한 청년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일본인들에겐 성역이겠지만 세계인의 눈에는 ‘치부’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 ‘야스쿠니’를 영화사상 최초로 정면으로 다룬 이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는 감독이 ‘10년 적공’한 작품답게 ‘야스쿠니의 실체’를 담담하면서도 진지하게 드러내 보여준 수작이다. 123분의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2008년 홍콩국제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탔고, 미국 선댄스 영화제와 베를린 국제영화제 공식초청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작비가 없어 엄청 고생했고, 제작 도중과 다 만든 뒤에도 일본우익단체들로부터 심각한 테러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일본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로선 ‘대박’을 터뜨리며 13만 명이 넘는 관객이 들었다.
'다시보는 읽을 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철수 귓볼 성형의혹 -수술 전과 후 확 변한 안철수의 귀 모양 (0) | 2014.02.11 |
---|---|
영화 ‘간디’와 7대 사회악 (0) | 2014.01.17 |
이석기 모교 외대 용인캠퍼스는 한국의 레닌그라드? 임수경 ,김재연,우위영,등 동문 (0) | 2013.08.29 |
‘부자아빠’ 이건희 회장과 함께 출근한 맏딸 이부진 (0) | 2013.06.24 |
아인슈타인이 첫 부인에게 요구한 굴욕문서 '아내의 조건' (0) | 2013.01.12 |